모든 것은 고쳐지지 않고 잊혀진다

by 김영


쿤데라와의 인터뷰(가상현실에 잘 오셨습니다. 환영합니다. 단지, 색다르게 서평을 쓰고 싶어서 시도해 봅니다.)는 그의 작업실에서 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신을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쿤데라는 베레모를 쓰고 어깨가 헐렁한 진회색 플란넬 양복을 입고 작업실에 들어섰다. 그는 주저주저 머뭇거리며 걷고, 마치 수맥을 찾는 것처럼 더듬더듬 지팡이를 사용했다. 이목구비는 노화와 창백한 피부로 윤곽이 흐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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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 영광입니다. 먼저, 출생과 젊은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요?

저는 1929년에 체코에서 한 음악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피아니스트인 아버지 덕에 음악적 감수성을 이어받아 음악예술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그때까지는 문학보다는 음악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1968년 체코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것이 빌미가 되어 직장에서 쫓겨나고 더 이상 작품 활동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결국 1979년 체코 정부가 시민권을 박탈하여 프랑스로 망명하여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농담』의 시대적 배경을 말씀해 주시고, 그 사건을 어떻게 느끼셨고, 이 글을 쓰려는 결심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소설의 배경은 1948년 즈음의 체코입니다. 체코는 2차 세계대전의 결과, 독일의 오랜 지배하에서 독립을 하고, 공산당이 정권을 잡는데요. 실제로 저는 1948년 무렵 공산당에 가입해서 활동을 했는데, '반(反) 공산당'활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공산당에서 추방을 당했습니다. 내가 어떤 '반 (反) 공산당' 행동을 했다는 건지 잘 이해는 안 가지만요. 소설 속 주인공인 '루드비크'와 비슷한 처지였던 거죠. 저의 체험적 얘기가 『농담』일 수 있지요.


그럼 독자를 위해서 제가 간단하게나마 줄거리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인생의 의외성

어쩌면 우리 삶 전체가 지독한 농담일지 모른다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는 독일 나치에서 해방된 후 소련의 체제를 따라 공산국가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엄중한 대변혁의 시기였다. 공산 정권은 부르주아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국고로 귀속하고, 공적기관이나 대학에서는 공산당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가려내어 축출시키는 엄중하고 무거운 사회 분위기였다. 진지한 말 한마디가 그 무게를 갖는 시대, 이런 분위기에서 농담은 허용되지 않는다.


대학에 다니는 '루드비크'는 자기가 가진 것보다 근사하게 보이려고 남들한테 우쭐해보기도 하고, 무모한 행동으로 객기를 부리기도 한 평범한 스무 살 청년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나'와 '내면의 나' 사이의 갈등을 겪기도 한다. 그는 스무 살의 여대생 '마르게타'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그녀는 연애의 관심보다는 공산당 위원회 일에 몰두하였다. 어찌 보면 순진한 학생이다. 사회에 잘 순응하는, '되어야만 하는 나'가 이미 되어버린 그런 학생이었다. 루드비크는 방학에 거창한 계획이 있었다. 그녀와 데이트도 하고 기회를 엿보아 고백을 하려고 했었지만 그녀가 당의 교육연수에 참가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는 자신 혼자만 애가 타는 것 같아 자존심도 상하고 그녀가 괘씸하였다. 사랑에는 관심이 없는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충격을 주고 혼란에 빠지게 하려고 편지를 보낸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분위기는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스무 살, 서툴고 이유 없는 반발심, 치기 어린 행동으로 그녀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낙관주의는 공산주의를 비꼰 말이다. 공산주의자들은 낙관주의는 공산주의를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공산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라는 말이다. 당시 체코의 분위기로 이 말은 농담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그 시절은, '트로츠키'가 볼셰비키 혁명의 과격한 양상을 반대하고, 러시아 혼자만의 힘으로 세계혁명을 이끄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유럽 혁명을 지원하여 세계혁명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시절이다.


이 말은 농담으로 읽지 않으면 공산주의를 부정하는 말일 수밖에 없다. 농담조의 그의 편지는 큰 파문을 일으켰다. 공산당 위원회는 인민재판을 열기로 했고,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단순한 농담이었다고 항변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는 고향 친구인 '제마네크'가 새로운 당 위원장을 맡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해 보지만 오히려 그는 루드비크를 당에서 축출시키는 데 앞장을 선다. 이후에는 그의 인생이 가혹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대학에서 쫓겨나고 탄광촌에서 일을 하게 된다. 이념이라는 역사 속에서 개인의 운명이 뒤틀렸다.


루드비크를 인생 최초의 파멸로 이르게 한 것은, 그가 바보 같은 농담이나 즐기는 치명적 성향을 지녔고, 마르케타는 농담을 절대 이해 못 하는 치명적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녀는 모든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여자였다. 그런 면에서는 그 시대의 정신과 놀랍도록 일치했다. 그녀는 해학이나 아이러니를 용인하지 않았다.


절망적인 세월을 보내던 루드비크는 15년이 흐른 후에 농담 한마디로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그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는 여전히 과거에 얽매여 살았다. 자신을 인민재판에 세우고 탄광으로 내쫓는 데에 앞장섰던 제마네크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에 불탄다. 루드비크는 자신을 취재하러 온 기자가 제마네크의 아내임을 알고 그녀를 유혹한다.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의 유혹에 넘어갔다는 사실은, 제마네크에게 큰 상처가 된다는 것이 루드비크의 계산이었다. 그런데, 제마네크에 대한 복수, 그의 아내 헬레나를 유혹하려는 계획은 우스꽝스러운 복수가 되고 만다. 제마네크의 아내 헬레나는 사랑 없는 남편과의 무의미한 결혼 생활을 끝장냈고, 제마네크는 이미 더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애인으로 두고 있었다. 제마네크에게, 루드비크는, 끝내고 싶은 결혼 생활을 쉽게 정리할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존재였다. 15년 만에 자기 의지로 하려던 복수마저도 무의미하게 허무하게 끝난다. 인생은 나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을 만큼 무겁지만 동시에 말 한마디로 바뀔 만큼 가볍기도 하다. 의미 없이 내뱉은 농담으로 험난한 인생을 맞고, 이번에는 능동적으로, 자기 의지로 만든 복수는 농담처럼 끝나게 되는, 농담 같은 그의 인생이다.


시간의 망각, 사랑의 허무

모든 것은 잊히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루드비크는 모든 것은 잊히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느낀다. 루드비크가 제마네크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다면 15년 전 그 인민재판의 현장에서 했어야 했다. 제마네크에게 날려야 하는 따귀는 현장에서만 유효했다.


루드비크가 사랑하는 방식도 이와 비슷했다. 그는 탄광에서 우연히 '루치에'라는 아가씨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의 몸과 마음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 보지만 루치에는 루드비크와 정신적인 사랑만 나눌 뿐 몸은 허락하지 않는다. 끈질긴 구애도 실패로 끝나자, 그는 불같이 화를 내고, 이에 놀라서 그녀는 그를 떠난다. 이후 루드비크의 머릿속에 그녀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순결한 육체를 가진 여성이라는 이미지로 자리 잡는다. 그 이미지는 루드비크의 뇌리에 그대로 화석화되어 있다. 그가 15년 만에 만난 그녀를 잘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억 속에 그녀의 모습과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변한 그녀의 모습은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간은 자기 방식대로 자신을 속여 넘기는 존재이다.


모든 일은 처음과 다르게 끝날 수 있다. 확고하게 갖고 있던 나의 생각이나 견해, 또 그에 따라 했던 모든 행동이 내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 인생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는 사실뿐이다. 그래서 인생은 다채롭게 펼쳐질 수 있다. 삶의 새로운 발견의 연속인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일은 한낱 한때의 농담 정도의 수준이다. 기쁜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크게 기뻐할 것도 없고, 복수를 다짐해야 할 절망적인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증오 속에 살 필요도 없다. 그냥 그저 농담 같은 인생의 먼지들이다. 가라앉아 있다가도 떠오르는 그런 것이다. 인간이 믿고 있는 신념은 어떤가? 그냥 이미지이다. 내가 그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타내는 의지이다. 나름 합리적이고, 실재한다고 믿는, 지각(知覺)이나 표상(表象)을 만드는 것도 나의 의지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내가 그냥 그렇게 남들한테 비치고 싶다는 이미지일 뿐이다. 그리고, 철석같이 믿고 따르는 신념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사회적 관념에 따라 속절없이 변한다.


여기까지가 대체적인 줄거리이다. 이외에도 등장인물이 더 있긴 하다. ' 코스트카'와 '야로슬라프'라는 인물이다. '코스트카'는 루드비크의 대학 친구이다. 그 당시 코스트카의 신앙은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사상이었지만 루드비크가 그를 변호했다. 그는 나름의 계시를 받고 국영농장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비참한 삶을 연명하고 있는 루치에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야로슬로프'는 루드비크의 고향 친구이다. 둘도 없던 친구인 루드비크를 우연히 만나지만 루드비크가 거리감을 두는 것에 동요한다. 루드비크는 야로슬로프가 하는 민속음악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너의 민속 음악은 다 망가져버렸으며, 공산주의 체제를 선전하고 유지하는 데에 이용되는 음악으로 전락해 버렸다"라고 쏘아붙였다. 고향마을에서 전통 민속예술을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야로슬로프는, 전통을 변하지 않은 진리라고만 생각했지만 그 기원이나 의미나 본질에는 관심이 없었다. 전통이 현실을 등한시할 수 없고, 인간은 전통에만 머무를 수 없으며 전통 위에서 실존의 존재로 살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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