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중등)부 동상 - 김다은
큰오빠 잘 지내고 있지? 지금쯤 오빠는 아픈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겠지? 돌이켜보면 오빠는 어렸을 때부터 늘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난 예전부터 타인을 돕는 자원봉사 단체에서 일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만큼 오빠는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했기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하루 종일 침울했던 날 위해 나와 함께 숨바꼭질을 해줬단 생각이 드니까 말이야. 숨바꼭질할 때는 늘 오빠가 술래를 한다고 했기 때문에 난 장례식장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숨었고, 오빠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 찾았잖아. 오빠와 숨바꼭질을 계속하다 보니 숨바꼭질에만 집중하게 되고 정말 재밌었어. 그러다 보니 할아버지에 관한 슬픈 감정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던 것 같아. 하지만 나중에 보니 우리한테는 씩씩하고 괜찮은 척해놓고 화장실에서 훌쩍이던 오빠가 어느새 군대에 가서 생활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 오빠가 군대에 군의관으로 들어가자마자 코로나19가 터져서 큰엄마 큰아빠께서 엄청 걱정하고 계셨어. 대구에 의료진이 부족했기에 그 가운데에서 오빠는 스스로 지원해서 대구 병원에 들어가게 됐다는 걸 할머니께 들었어. 오빠가 대구에 있는 한 병원에 지원했다고 큰엄마 큰아빠께 말했던 날, 큰엄마 큰아빠는 할머니께 전화를 해 정말 걱정된다고 한숨도 못 잘 것 같다고 말씀하신 것도 기억나. 난 이 말을 듣고 굳이 병원에 갔어야 했나? 남보단 가족이 훨씬 중요한 거 아니야? 대체 왜 가는 거지? 코로나에 걸릴지도 모르는데? 큰엄마 큰아빠 생각은 안 하는 건가?라는 원망 섞인 생각들이 많이 들었어.
며칠 후, 뉴스를 틀어보니 오빠처럼 스스로 지원해서 병원에 간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 다른 사람들을 볼 땐 나라를 위해 힘쓰러 가신다는 것이 너무 멋졌고 감사했지만 큰 오빠를 봤을 때는 안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게 내로남불이라는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지.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일주일 후쯤에 뉴스에서 의료진분들이 끼니를 도시락이나 햇반 같은 조촐한 음식을 먹는단 걸 보았어. 방역복을 입기 때문에 얼굴에 붙은 반창고와 계속 뛰어다녀 지친 기색, 손 소독제를 너무 자주 발라 튼 손, 오빠도 저렇게 했겠지 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고 그럴수록 착잡해졌던 것 같아. 또 오빠는 몰랐겠지만 뉴스에 의료진 소식이 나올 때마다 큰 엄마, 큰 아빠는 할머니께 전화를 걸어서 속상한 심정을 매일 말씀하셨어. 오빠를 포함한 많은 의료진분들이 자원봉사로 병원에 간 것도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나고 있을 때 우리 한국은 방역에 성공을 한 추세였고 진단키트도 발명이 됐잖아. 우리 한국이 세계적으로 방역에 성공한 나라라는 것을 인정받으면서 난 오빠가 코로나 방역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어. 물론 처음에는 자원해서 지옥에 들어간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걱정도 됐고, 원망도 했어. 하지만, 오빠와 같은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위해 앞장섰고, 이걸 만드는 데 있어서 오빠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자랑스러웠어.
오빠와 같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한국이 더욱더 견고해지고 단단해지는 거 같아서 내가 오빠보다 더 기쁘고 보람이 있었던 것 같아.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나와 같은 사람들은 현재의 일상생활이 가능했던 것이고, 그렇기에 아직 많은 사람들이 힘들지만 웃을 수 있는 것 같아. 한 명의 의료진이 100~1000명 이상의 사람의 무게를 지고 있어 줘서 감사하고, 내가 이런 분들이랑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게 기쁘기도 해.
오빠가 군대에 가고 난 뒤 코로나로 인해 휴가를 쉽게 나올 수 없는 게 정말 아쉽지만, 오늘도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와 싸우시는 분들을 위해 힘을 내려고 노력해볼게. 오빠 나중에 보자!
-사촌동생, 다은이가-
2020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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