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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

#아모르파티

by 또랑쎄 Mar 0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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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이사를 마치고 남편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자주 던지는 말이 있다. “부동산이 망하더라도 우리 서로를 원망하지 말고 잘 살아보자?” 아직 좀 기다려보자는 남편과 달리 집을 사자고 주장했었던 나는 지금 그 말을 현실로 이루어 평온하고 안락한 집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두려움이 저렇게 남편에게 던져보는 농담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나는 제법 나의 일을 대담하게 결정해 왔던 것 같다. 그리고 항상 그 결정에 대한 결과가 좋게 이어지도록 만들어내고, 그 결과에 만족하며 역시 내 결정이 옳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왔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미 일어난 일, 그것이 이어져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억누르며, 내가 맞다고 생각하려는 이성과 노력으로 이겨오면서 지내온 듯하다. 나 자신을 믿었다기보다는 틀리게 되어 버리면 안 된다는 강박이 나의 선택을 즐기지 못하고 그저 견디게 만들었던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느 하나 잘못되었을지라도 지금 내 삶과 행복도가 많이 바뀌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 겪어보지 않아서 이렇게 생각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고, 집이 있고, 안정적인 직장이 있고, 진심으로 나를 위해주는 친구들과 동료들이 있는 것이 나의 행복의 척도라고 했을 때, 그 시점과 장소 등이 달랐을지 언정 어떤 것이 그리 크게 영향이 있었을까 싶다. 나의 결정이 어떤 것이던 하나라도 예상을 깬 결과를 불러오더라도 그 선택을 한 나 자체가 불행할 이유는 찾아보면 딱히 발견할 수 없다.


아모르파티 (Amor Fati).


우리에게 대중가요로 넓게 퍼진 이 말은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즐거운 학문(1882)에 최초로 실린 문장이다. 흔히 필연적인 운명을 즐기고 사랑하라는 의미로 알고 있는 이 문장 속에는 내가 살아왔던 방식과 태도를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처방이 담겨 있었다. 필연적인 것이라 하면 보통 이미 일어난 일을 생각하지만, 여기에는 이뿐만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까지 모두 포함된다. 아모르파티는 내가 하는 모든 결정과 그에 따라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해 사랑하는 긍정적인 태도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것은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체념하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숙명론과는 다르다. 실패를 받아들이라는게 아닌 그게 뭐든지 극복할 수 있는 잠재력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전제로 내가 선택하는 모든 것을 믿는 자세인 것이다.


항상 듣던 익숙한 저 문장의 정체를 알게 된 지금, 마음속 무거운 의문과 숙제를 끝낸 시원한 느낌이 든다. 내가 가는 그 길 자체를 행복하게 즐기면 된다는 어쩌면 단순한 그 말이 그 어떤 것보다 달콤하고 속 시원히 느껴진다. 내가 한 모든 결정 그 하나하나가 무거운 마음의 짐으로만 여겨졌던 지금까지와 다르게, 앞으로는 그 결정과 그에 따라 일어날 모든 일을 즐기는 것 그게 나의 인생 숙제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남편에게 혹시 잘못돼도라는 농담은 안 하기로 해본다.


#아모르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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