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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주 Nov 27. 2023

사춘기

왜 이러는 걸까요?

  나는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17년 차 전문상담교사이다. 학교에서 나의 위치는 상당히 어중간하다. 나는 상담자이면서도 교사이고, 선생님이지만 가르치지 않는다. 졸업생들은 나에게 말투가 고등학생 같다고 말하지만 고등학생들은 내가 항상 "그게 뭐야?"라고 물어볼 수밖에 없는 알 수 없는 신조어만 말한다. 상담교사라서 굉장히 공감을 잘해줄 것 같지만 학생들은 나에게 "선생님 T예요?"를 남발한다. 부모님과 다른 선생님들에게는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해주기도 하고, 학생들에게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입장을 대변해주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붙었다가 선생님들에게 붙었다가 부모님들께 붙었다가 하는 박쥐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어중간한 포지션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꽤 오랜 시간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상담을 하면서 나는 내 직업에 99%로 만족하는 중이다. 상담을 하며 사람에 대해서 알아갈수록 사람이 좋아진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병아리도 아니고 닭도 아닌 그 어중간한 사춘기 아이들을 알게 될수록 더욱더 좋아진다. 물론 나는 현재 고등학교에 있고 사춘기가 극에 도달하는 중학교 시절을 이미 거치고 온학생 들이라서 많이 잔잔해져 있기는 하다. 흔히 말하는 질풍노도가 끝나고 뒤에 오는 약간의 파도라고나 할까. 하지만 고등학생들도 2~3년만 지나면 내가 그때 왜 그랬지? 라며 미래의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한다. 여전히 자신에 대해서 고민하고 고민해도 내가 누군지 모르며, 가족보다 친구들에게 모든 마음의 지분이 쏠려 있다. 어느 정도는 어른스럽게 행동하길 기대하지만 여전히 어리며 미숙하고 혼돈스럽다.


  주변에 사춘기 자녀를 둔 선생님들이나 지인들은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나와의 관계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던 순하던 내 아이가 한순간에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교사들조차도 사춘기가 자신의 자녀의 일이 되면 너무나 당황스럽다. 사춘기 학생들이 그래도 사회적인 동물이라 학교에서는 어느 정도의 사람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집에 있을 때는 모든 가면과 방어를 집어던지고 본연의 자연의 모습을 돌아가 동물과 같은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대뇌피질을 벗어던진, 생각 같은 것은 전혀 하지 못하는 파충류의 모습이 된다고 한다. 나도 예상은 하고 있지만 아마 1~2년 안에, 아니 빠르면 2~3개월 내로 내가 양육하고 있는 남매둥이가 탈피를 통해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게 되면 당황하고, 분노가 느껴지고, 슬펐다가 크는 과정이라며 기뻐했다가 하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짧고 굵게 맛볼 것이다. 이건 내가 아무리 상담교사로서 많은 학생들을 경험했다고 해도 잘 이겨낼 수 없는 관문이 될 수 있다. 미용사가 수백, 수천, 수만 명의 머리를 하는 베테랑이라고 하더라도 자신 스스로의 머리를 잘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 당황하고, 슬프며, 화가 나고, 어려운 일이지만 자세히 보게 된다면, 그 사춘기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조금이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으면 예뻐할 수 있다.  사춘기라고 하는 생애주기는 자연스럽게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생겨나는 과정이니 많은 부모님들이 상처를 적게 받았으면 좋겠다.


  사춘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마치 나는 사춘기를 거치지 않은 사람처럼, 관찰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비칠까 봐 걱정스럽다. 1000명의 학생이 있으면 1000명이 다른 사춘기를 겪는다. 나는 비교적 모범생이어서 사춘기를 힘겹게 보낸 것 같진 않지만, 최대한 내가 사춘기때 했던 생각들을 떠올려보며 사춘기들을 이해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겠지만 절대적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아마 내가 하는 이야기들은 보편적이기도 하고, 보편적이지 않기도 할 것이다. 지극히 사적일 수도 있으며, 사례를 이야기할 때는 여러 가지 기본정보들을 임의적으로 꾸며서 아마 지어낸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오늘도 학교에서는 너무나 성실하고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은 학생들이 와서 가족이 너무 싫다고 말했다. 나는 심리적으로 어른이 되기 위해 독립을 준비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그 학생들에게 말했지만, 막상 내가 나의 자녀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상처를 받을 것 같다.(그 학생들도 집에서 부모님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칭찬을 한다. )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너무 싫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큰 상처일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어른들은 그들의 세계를 영원히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내 옆에 있는 그 이해가 잘 안 되는, 하지만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그 생물체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어쩌면 나의 사춘기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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