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의 개인적 우화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켜보면 학생들이 하는 행동이나 언행 등의 겉모습을 보고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나는 점쟁이가 아니다. 이것은 누구나 다 노스트라다무스가 될 수 있는 매우 쉬운 예언이다.
예언
공부를 안 하면 시험을 망치고 원하는 대학을 못 가게 될 것이고, 오토바이를 탄다면 다칠 위험이 높고, 불법 도박을 한다면 생활은 엉망이 되고, 빚을 크게 지게 될 것이다. 집을 나가면 개고생을 할 것이고, 다른 친구를 배려하지 않고 행동하면 따돌림을 당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당연해서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상담장면에서 예언처럼 말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나에게 걱정을 하지 말라는 투로 말한다.
"에이. 전 괜찮아요. ", "그건 저한테 해당되지 않아요. ", "전 운동신경이 좋으니까요. 안 다쳐요.", "저는 두 시간이면 가능해요." , "저한테는 너무 쉬운 일이에요.", "제가 마음만 먹으면 장난 아닙니다." , "저 밖에 못하는 거예요.",
마치 자신은 강철 갑옷이라도 입은 것처럼 들리는 이런 대답은 보통 상대적으로 불안 수준이 낮은 남학생들에게 많이 듣는다.. 남학생들은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다. 근자감을 뛰어넘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사조로 변신하기도 한다. 자신이 마치 슈퍼맨이나 아이언맨쯤으로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다. 특히 도파민이 뿜뿜 나오는 고등학교 시기에는 이것이 심해진다. 고등학교 남자 학생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이건 그냥 허세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짜, 정말, 당연하게 그렇게 믿는 것이다.
나는 그런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헐~"이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내가 위험한 이론적 근거와 사례를 들어 논문을 한편 적을 수 있을 정도로 설명을 해도 그 아이들에게는 남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자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과 같은 진리인 것이다. 내가 설득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자신만만해지는 그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럼 여학생들은 괜찮을까? 당연히 괜찮지 않다. 남학생들이 슈퍼 히어로라면 여학생들은 비운의 주인공이다. 비운의 주인공은 남학생들에게도 해당되기도 하지만 자신의 경험이 특별하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에게만 이런 불행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은 남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비운의 주인공의 마음은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이 주인공의 시련은 너무나 크고 특별해서 나만 알 수 있는 고통이다. 부모님들은 "뭘 그런 것 가지고 힘들어하냐? 힘내! 할 수 있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격려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엄마가 뭘 안다고 그래!"라는 짜증 섞인 말 뿐이다. 다른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종말을 만난 것이다. 어른들이 봤을 때는 겨우 작은 가시에 찔려 소독만 해도 되는 정도로 보이지만 사춘기 아이들에겐 가시에 찔려 펑 터져버린 풍선같이 이제 끝이 난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어른들은 사춘기 아이들 하는 일상적인 고민을 이해할 수가 없다. 가시에 찔린 것 같아 그냥 밴드하나면 붙일 것 같은데, 아이들은 절망 속에 빠져드는 것을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하다.
청소년기는 자신이 주인공이다. 현실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므로 주인공이 죽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얘들아 요즘은 영화에서 영웅들도 많이 죽고 다치더라.) 만약 자신이 슈퍼맨이라고 생각하고 목에 빨간 보자기 하나를 두르고 건물에서 뛰어내린다면 사람들이 모두 그 사람을 보고 '미쳤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기 아이들은 그렇게 자신이 불사신인 것 마냥 행동하고, 자신의 문제가 너무 커서 이 세상이 곧 끝날 것처럼 느끼고 아무도 나를 몰라주는 현실에 억울하고 답답하기도 한다. 근거 없는 능력주의자로 변신하여 근거 없이 자신은 남다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빌게이츠처럼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기도 하고, 치킨집을 하나 차려도 대박 날 것이라고 생각하며, 굳이 열심히 살지 않아도 로또에 당첨되는 행운은 자신에게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을 당연하게 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아상을 확립하는 시기이므로 이런 기복을 거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파도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도 하다가 부정적인 생각도 하다가 그런 파도를 한없이 타야지만 자아상이 확립되는 것 같다. 사실 어른들도 제대로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춘기를 끝내지 못한 어른들도 많이 봤다. 한참 사춘기를 겪으며, 발달과제가 자아개념을 확립해야 되는 청소년기에는 얼마나 더 많은 갈등을 겪을까? 많은 파도들이 왔다 갔다 하며 모난 돌을 깎아가는 것처럼 자아상을 만들어 간다.
자기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었다가 비운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가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나중에 나중에 내 사춘기를 떠올리면 너무 부끄러워 이불킥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