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퇴하겠습니다.
코로나가 어느 정도 지나간 올해는 자퇴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작년대비 정말 폭발적인 인원수이다. 작년에도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하는 학생들은 있었지만 여러 가지 심사숙고 끝에 결국은 학교를 잘 다니기로 한 학생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올해는 무조건 자퇴를 하겠다고 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았다. 자퇴를 원하는 학생들이 많아질수록 내 업무는 늘어가고 나는 고민이 깊어진다. 학교에서 내가 하고 있는 업무 중 하나는 학업중단을 예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학업중단(학교를 그만둔다고 학업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지만)이 많다고 해서 나에게 직접적이 손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학생의 인생에서는 중요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 보던 인생극장에서 "그래 결심했어!"라고 한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바꾸는 것처럼 자퇴도 어쩌면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결정이기에 학생들이 순간의 감정이나 충동에 의해서 자퇴하지 않기를 바란다.
옛날에 비행청소년이어서 자퇴나 퇴학 후 사고를 치고 다니거나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학생들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비행청소년 부류에 들어가는 학생들 보다는 학교에서 하는 공부가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유형들이 훨씬 더 많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가 쓸모없다고 여기는 학생들의 첫 번째 유형으로는 1학년 1학기 1차 고사를 망친경우이다. 1학년 1학기 1차 고사를 치고는 수시입학의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면, 학교에서 불필요한 수업을 들을 시간에 수능공부에 올일해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두 번째 유형으로는 예체능을 하는 하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자신에게 불필요한 공부를 하는 시간에 실기에 매진하고 싶다고 말한다. 두 유형 모두 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가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세 번째는 학교에서 하는 수업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며, 그 시간에 잠만 자는 것보다 아르바이트를 하여 돈을 버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유형이다. 실제로 알바를 하거나 유튜브, 프로게이머가 되어 자퇴를 하는 학생들도 있다. 세 번째 유형도 나는 꽤 많이 만났다. 네 번째는 전문계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자신의 적성과 자기 전공이 맞지 않아서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1학년 때 진로변경으로 인문계고등학교 전학이 가능하긴 하지만 2학년이 되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퇴가 많다고 한다.
또, 학교 수업이 필요가 없거나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친구문제로 자퇴하는 학생들도 많다. 어른들이 생각할 때는 고작 친구문제로 자퇴를 하냐, 중고등학교 친구는 아무것도 아니다. 대학 가서 좋은 친구 사귀면 되지. 등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청소년기 학생들에게 대인관계에서 친구관계의 지분은 너무 크다. 사춘기 때는 친구가 전부다. 그래서 친구관계가 조금만 틀어지면 세상이 끝난 것 같이 느끼기도 한다. 친구랑 싸울 일도 없을 만큼 친구랑 자주 안 만나는 현재의 나로서는 친구관계 때문에 자퇴를 하는 것이 제일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어도 이해를 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본다. 나도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이 있었고, 그때 친구가 중요했던 것 같긴 한데... 그렇지만 그 정도로 중요했을까? 이렇게 이해 못 하는 마음은 완전 내 개인적인 주관이다. 그 사람이 되어 보지 않으면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지막 유형으로 아주 드물긴 하지만 나는 평범한 길을 갈 수 없는 특출 난 사람이기 때문에 자퇴를 하면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형이 있다. 수많은 자퇴 희망학생을 상담한 상담자로 청소년들은 모두 다 이러한 허세를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 자퇴를 할 때 대부분 다 굉장히 호기롭기 때문이다. 자신만만한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자퇴를 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처럼...
"요즘 애들은 너무 나약해!", "요즘 아이들은 너무 빨리 포기하는 경향이 있어.", "공부를 잘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학교만 다니라는 건데 그것도 못하면 아무것도 못해."라고 너무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말하기에는 내 직업은 상담교사이다. 나는 학교 다닐 때 나름 모범생이었다. 지각, 결석, 조퇴를 한 번도 해본 적도 없고, 학교를 단 1분이라도 늦으면 하늘이라도 무너지는 줄 알고 있었다. 대학 때도 마찬가지로 수업을 빼먹은 적이 거의 없었다. 순종적인 모범생이 체질인 내가 그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하기 위해 최대한 학생들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냥 학교를 다니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지는 학생들도 있다. 나 같아도 자퇴를 하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학생도 있다. 미래보다 현재의 편안함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도 존중해주고 싶다. 한참을 기다렸다가 마시멜로를 2개 먹는 것보다 지금 여기에서 마시멜로 하나를 먹는 게 더 행복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얼마나 힘들면, 오죽했으면 그럴까라고 그렇게 생각을 해봐야 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줘도 나는 알아줘야 한다. 지각도 많이 하고, 결석도 많이 하는 저 학생이 사실은 죽을힘을 다해서 학교에 나오고 있다는 것을... 각자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하는 선택이 가장 옳은 것일 수 있기 때문에 존중해 주고 싶다.
하지만 내가 학생들을 자퇴시키고 싶지 않은 이유는 너무 많다. 자퇴를 하면 정말 다른 세상이 열릴 것 같지만 막상 소속감이 없어지고, 생각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 실망을 많이 한다. 자퇴한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급식이 먹고 싶어요."와 "교복이 입고 싶어요."이다.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싫어하던 일들이 막상 자퇴를 하면 그리운 일이 되어 버리고 만다. 지금 이 시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시간이 엄청 많아져서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은 원래 바쁠 때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나도 이번 방학에는 운동도 하루에 몇 시간 하고 책도 하루에 한 권씩 읽어야지라며 야무지게 포부를 밝히지만 막상 방학이 시작되면 평소에 하던 운동이나 독서를 더 못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 다니는 시간이 아깝다고 하는 말은 맞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학교에 다녀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방과 후 시간과 주말, 방학이 있다. 이러한 내 말에 반박하기 위해서 학생들은 세상에 자퇴를 해서 성공한 사람이 많다고 말한다. 연예인이나 주변에 훌륭하신 분들 중에서도 고등학교를 자퇴를 하신 분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장담할 수 있다. 그분들은 자퇴를 하지 않았어도 성공했을 것이다.
나는 학생들이 단순히 중. 고등학교를 대학 입시를 위한 단계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으로 고등학교를 생각하고, 고등학교에서는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기관이라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학교에서는 학습 외에 배울 것이 너무나 많다. 세상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일들도 많이 일어나고, 특별하거나 특이한 사람도 많다.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나는 한정된 내 친구들과 가족들만 만나게 되지만, 학교에 오면 몇백 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수십 명의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사람들과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의사소통을 통해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 '그럴 수도 있겠다.', '저런 상황에서 나라면 이렇게 할 것 같아.',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야.', '억울하고 분하지만 해결방법이 있을 거야.' 하루에도 수천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 별의 별일을 다 겪으면서 수만 가지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어렵고 힘든 일을 겪으면서 문제해결능력도 키울 수 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잘하는 것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을 보면서 나를 더 잘 알아갈 수 있다. 나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즐겁고 신나는 일도 있고, 슬프고 괴로운 일도 겪고, 억울하고 화나는 일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경험이 학생들을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고백한다. "샘이 뭘 알겠냐? 샘은 그동안 학교만 다녔는데,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만나는 사람도 다 선생님과 학생들 뿐인데 샘이 뭘 알겠냐?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정답이 아니다. 뭐가 맞고 틀린 지, 너에게 뭐가 좋은지 나쁜지 아무도 몰라. 자퇴를 해서 더 성공할 수 있을지, 학교를 다녀서 더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뭐가 되든 간에 너는 너를 포기하지 마라. 너는 너에게 가장 좋은 길을 찾을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