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모든 사랑에 이해관계가 필요할까?
사랑은 대단하지 않다. 사랑은 위대하지 않다. 그저 흘러가는 감정일 뿐 특별하게 대단한 사랑은 없다. 사람들은 사랑해서 아프고 사랑해서 상처를 받는다. 사랑하기 때문에 힘들고 사랑하니까 어렵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도 대화에서도 사랑은 모두 다 지치게 만든다.
그러나 사랑이 별 볼일 없다고 말하는 나는 모순적이다. 사랑을 가장 싫어하면서 또 가장 사랑한다. 사랑의 위대함 따위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그래서 사랑이 위대할 수밖에 없다. 사랑은 너무나도 아프지만 또 그만큼 필요하고 사랑 때문에 슬프지만 그래서 행복할 수 있다. 이렇게 양면적인 사랑은 사람을 아프게도 슬프게도 그리고 행복하게도 만든다.
며칠 전 일이었다. 굉장히 화가 나는 일이 있었는데 화를 어떻게 내야 하는지 잘 몰라서 그저 화내기 급급했다. 내가 버럭 화를 내고 후회하는 일이 잦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지만 그럼에도 막상 화가 나면 후의 일들은 생각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렇게 화를 내고 들었던 말은 나에게 사랑이 없다는 말이었다. 사랑해 본 적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 그렇다면 사랑이 없어서 내가 분노하고 있는 걸까. 말의 의미를 찬찬히 생각해 보던 나는 몇 가지를 깨달았다.
사랑이라는 건 있고 없는 게 아니다. 남에게 사랑이 있고 없고는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하면 눈에 보인다는 말이 사랑이 없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과는 전혀 다르다. 그저 누군가 나에게 사랑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사랑이 없다고 말하기에는 사랑이 가지고 있는 위대함을 무시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사랑을 하면 드러난다. 어떤 이유에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사랑을 하지 않을 때에는 사랑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을 하지 않아도 사랑은 분명 그 자리에 존재한다. 마음속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사랑을 줄 대상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 뿐 사랑은 그 자리에 있다. 그렇기에 사랑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랑은 할 때에도 하지 않을 때에도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위대하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라는 존재가 나의 이론을 설명한다. 나도 부모가 되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내가 받았던 사랑을 안다. 생전 사랑이라는 것을 모를 것만 같던 사람들도 부모가 되면서 사랑을 주고자 하는 대상에게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쏟아낸다. 그들에게 사랑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사랑을 줄 대상이 없었던 것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사랑을 줄 대상이 없다는 건 핑계다. 이 세상에는 사랑으로 가득 넘쳐나야 한다. 봉사와 선행과 관심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드러내야 한다. 나는 이 말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사랑을 왜 다른 사람이 정하는 건지 왜 내가 아니라 제삼자가 나의 사랑이 가야 하는 곳을 정해주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다. 나의 감정과 나의 선택을 왜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에 의해서 해야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물론 나도 사랑이 가득한 세상을 꿈꾼다. 하지만 사랑을 받는 입장과 주는 입장이 서로 맞지 않을 때 오히려 사랑보다 아픔과 상처가 더 커지기 마련이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는 입장에서 자녀가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면 부모님의 사랑은 부담과 상처만 된다. 반대로 부모도 자녀를 이해하지 못해서 잘못된 방식으로 사랑한다면 그저 간섭과 억압만 줄 뿐이다. 나는 그래서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하기 전에 그리고 사랑을 받기 전에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부한다면 사랑이 대단할 수밖에 없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랑은 받는 입장에서도 주는 입장에서도 서로에 대한 이해관계에 맞아야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고통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건 서로의 신뢰와 이해관계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을 하기 전에 신뢰가 존재하고 사랑 이전에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랑은 위대하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노력할 때 비로소 사랑이 드러나기 때문에 사랑은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