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지혜롭다
내가 사랑을 미련하다 말하는 이유는 아마 내가 지혜롭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지 못하고 한쪽만 아파하는 사랑을 사랑이라 말할 수 없었던 건 아직 사랑을 이해하지 못해서. 사랑은 나의 작은 마음에 담기지 않을 정도로 흐르고 넘쳐나서 나의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사랑은 너무나도 위대해서 한쪽의 사랑이 없어도 계속 이어진다. 부모님의 사랑이 그러하며 또 누군가의 사랑도 그러하다.
이해가 안 된다. 굳이 상처입을 걸 알면서도 사랑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혹은 어쩌면 그들은 상처를 입지 않는 걸까? 사랑이 많으면 상처도 입지 않는 걸 지도 모른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는 건 사랑이 없기 때문에 혹은 부족하기 때문에 쉽게 상처를 입고 상처를 주는 걸까.
우리가 태어나서 가장 처음 형성하는 관계는 부모 혹은 보호자와의 관계다. 모든 상황에 똑같이 적용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있어서 관계 형성의 첫 단계는 보호자와의 신뢰 구축이 우선이다. 사랑 이전에 신뢰가 바탕이 되어 관계를 형성하고 그 후에 사랑이 시작된다. 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사랑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아이를 향한 말로 불가항력적인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감정을 신뢰 삼아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부모에게도 자식에게도 사랑을 하는 것은 아픈 일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이어도 자식의 마음을 모르고 아무리 존경하고 사랑하는 부모님이어도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신뢰를 바탕으로 쌓아간 사랑이지만 여물지 않으면 사랑이 상처가 된다. 어떻게 서로를 사랑하는 게 상처가 되는 걸까.
그래서 모든 사랑 이전에는 아픔과 슬픔이 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쌓아간 사랑은 시간이 지나며 여물고 또 그만큼의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이 여물고 열매를 맺기까지 아파하고 슬퍼한다. 이렇게 사랑해서 아프고 사랑해서 억울하고 사랑해서 슬픈 이유는 나를 받아들이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 아프고 억울하고 슬프기 때문이다. 이제껏 인정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을 인정해야 하고 상대방의 모든 부분을 받아들여야 하니까. 그래서 사랑이 고통스러운가 보다. 애써 외면해 왔던 자신을 직면해야 하니까. 그리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니까.
나는 미련한 사랑도 사랑이라고 말한다. 상처 입고 고통스러운 사랑이 참으로 미련해 보이지만 그렇기에 어쩌면 사랑은 미련하기보다 지혜로운 걸 지도 모른다. 나를 인정하고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롭지 않다면 도대체 무엇이 지혜로운 걸까. 누군가를 알아가기까지 그만큼의 고뇌와 고통이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거다. 사랑해서 상처가 생기지만 그만큼 나를 알아가고 고통스럽지만 그만큼 누군가를 인정해 간다면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