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사라진 사람들

오전 업무 정리왕, 미쓰리.

by 흑곰아제

미쓰리의 하루는 언제나 오전 7시 30분에 시작된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뜨는 것은 십 년 넘게 몸에 밴 습관이었다.

세수를 하고 간단한 아침을 먹는 동안에도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오늘 처리해야 할 업무들이

정리되고 있었다.


"오늘은 2공구 자재비 정산하고, 김반장님께 급여명세서 전달하고,

은행에서 대출 관련 서류 받아와야 하고..."


중소 건설업체 삼우건설의 경리 담당 이승신.

그녀가 일하는 삼우건설은 자동차 정비소가 즐비한 공장단지 안에 1층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다.

도로 포장공사, 철콘, 토공 요즘은 상하수도 공사도 하는 작은 규모의 전문건설업을 영위하는 건설회사다.

사무실에는 50대 김부장과 단둘이 있고, 가끔 사장과 부사장님 들러 염장을 질러주는 것만 빼면

사무실은 조용한 공간이다.


현장 인부들까지 합치면 스무 명 남짓한 이 회사에서 그녀는 유일한 여직원이자 살림꾼이었다.

사장부터 현장 막내까지 모두가 '미쓰리'라고 부르는 그녀 없이는 회사가 하루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공통된 생각이었다.


미쓰리는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정확히 12시까지 3시간 동안 하루 업무의 80%를 끝내는

신기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미쓰리는 오전에 컴퓨터랑 합체하나?"라고 김부장이 놀릴 정도로

그녀의 오전 집중력은 전설적이었다.


"어, 미쓰리 왔네! 오늘도 광속 업무 처리 모드 온?" 김부장이 커피를 마시며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50대 중반의 김부장은 모든 업무를 총괄하지만 실질적인 경리와 총무업무는 모두 미쓰리의 몫이었다.


“넵. 당연하죠. 빨리하고 사장님 안계실 때 놀아야지요. 부장님도 업무 지시 할 것 있으면

미리미리 알려주세요!!” 승신은 아침인사를 건네며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그녀의 키보드 소리만이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클릭, 클릭, 탭탭탭.

키보드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미쓰리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듯 움직일 때면,

복잡하게 얽힌 숫자들이 적힌 서류가 마치 마법처럼 정리되어 갔다.

매출 정산, 비용 처리, 세금 계산, 급여 관리까지. 다른 경리 직원이라면 하루 종일 걸릴 일들을

그녀는 오전 안에 척척 해치웠다.


"2공구 철근 구매비 3,450만 원, 콘크리트 타설비 1,200만 원, 인건비는..."

중얼거리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미쓰리의 모습은 진지했다. 평소 덜렁대는 모습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숫자 앞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정확하고 치밀했다.


오전 11시.

미쓰리는 김반장에게 전달할 급여명세서를 출력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20년 넘게 일한 김반장은 회사의 든든한 기둥 같은 존재였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정이 깊고, 신입 직원들을 잘 챙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김반장님도 벌써 60이 넘으셨는데 아직도 현장에서 뛰어다니시네."


미쓰리는 프린터에서 나온 서류를 정리하며 혼잣말을 했다.

요즘 김반장의 얼굴에 피로가 많이 쌓인 것 같아 걱정이었다.

현장 관리가 쉬운 일이 아닌데다, 최근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문도 들었다.


"미쓰리! 오늘 은행 가는 거 맞지? 대출 서류 받아오는 거?"

김부장이 필요한 서류를 정리하며 물었다. 승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점심 먹고 다녀올게요!"


오전 11시 50분.

승신은 마지막 업무인 세금계산서 발행을 마무리했다.

정확히 12시에 맞춰 모든 오전 업무가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오후의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역시 미쓰리! 난 아직도 네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하는지 모르겠어." 김부장이 감탄하며 말했다.

미쓰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뭐, 이 정도는 기본이죠!"

하지만 속으로는 뿌듯했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업무 처리는 그녀의 자존심이었다.


35살의 미혼 여성이 이 험한 건설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능력 때문이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미쓰리는 가방을 챙겼다.

오후에는 은행에 가서 대출 관련 서류를 받아오고, 김반장에게 급여명세서도 전달해야 했다.

"현장에 한 번 들르고 은행 가야겠네."

미쓰리는 서류 뭉치를 가방에 넣으며 일어났다. 오전의 완벽한 업무 처리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미쓰리는 아직 몰랐다.

오늘 오후, 미쓰리의 평범했던 일상에 예상치 못한 미스터리가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때마침, 근처 식당에서 점심 배달이 왔다.

1인분에 7,000원.

작은 그릇의 반찬 6개와 메인 반찬으로 미쓰리가 좋아하는 제육볶음이 나왔다.

"부장님 식사하세요!"

미쓰리는 숟가락을 놓으며 김부장에게 소리쳤다.

조용한 사무실 밖은 점심을 먹으러 가는 직장인들의 웅성거림에 시끄러웠다.


가끔은 조용한 사무실에서 벗어나 식당에가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식당가와는 뚝 떨어진 쌩뚱맞은 공장들이 줄지어 선 현실에선 식당에 가려면 차로 30분이다.

왕복 1시간, 밥먹는 시간까지 하면 에휴~.

미쓰리의 오후시간이 먼지처럼 훅 사라져버릴 것이다.


오늘도 솜씨 좋은 하루방식당의 사장님표 제육볶음은 미쓰리의 손을 바쁘게 만든다.

35살이라고는 안 믿기는 동안 얼굴은 그녀의 통통한 체격 덕분이고,

이 체격은 뭐든 가리지 않는 그녀의 식성덕분이다.

반면, 입이 짧은 김부장은 어느새 그녀의 손위에 놓은 상추를 보며 같이 온

콩나물국으로 입가심을 하고 있다.


“아~ 잘 먹었다. 오늘도 한끼 때웠네. 미쓰리는 언제봐도 참 복스럽게 먹는다. 다이어트 안해?”

“부장님!! 왜 먹는데 다이어트 말씀하세요?”

미쓰리의 빽거림에 김부장은 머슥해하며 자리고 간다.

동그란 안경 뒤에 숨겨긴 미쓰리의 눈이 작아지며 김부장의 뒷통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에잇! 입맛 떨어졌어!’

속으로 말하며 손에 든 제육볶음이 가득한 상추를 입에 밀어넣는다.

'아~ 하루방 사장님, 정말 제육 넘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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