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사라지는 사람들

현장 가는 길의 우연한 만남

by 흑곰아제

오후 1시 30분.

미쓰리는 현장으로 향했다. 회사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 건설 현장이었다.

평소 같으면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탔겠지만, 오늘은 날씨도 좋고 시간도 충분해서 걸어가기로 했다.

"오늘 정말 날씨 좋네."

햇살이 따뜻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 한 점 없었다.

거리에는 점심을 마친 직장인들과 쇼핑을 나온 주부들이 여유롭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카페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유로워 보였다.


미쓰리도 평소보다 천천히 걸으며 주변 풍경을 감상했다.

길가에 핀 꽃들도 예뻤고, 나무들의 잎사귀가 바람에 살랑거리는 모습도 좋았다.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도 오전에 모든 일을 끝내놓았기 때문이었다.

"역시 오전 집중이 최고야."

미쓰리는 스스로 만족하며 웃었다.


다른 사람들이 오후에 바쁘게 일할 때 자신은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다니.

현장에 가까워질수록 공사 소음이 커졌다. 굴삭기 소리, 작업자들의 외치는 소리,

트럭이 지나가는 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평화로운 주택가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어서 완공되었으면 좋겠네."

미쓰리는 높이 올라가고 있는 아파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아파트가 완공되기 전에 새로운 계약을 해야할텐데, 뭐 그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현장 입구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미쓰리는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현장 출입구 쪽에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서 있었는데, 그 차 앞에서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현장 작업자 노근수씨였다.

노근수는 40대 후반의 베테랑 철근공으로, 이 현장에서 가장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작업자 중 한 명이었다.

평소에는 작업복을 입고 안전모를 쓴 모습만 봤는데, 지금은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다.

뭔가 어색해 보였다. 미쓰리는 호기심에 좀 더 자세히 살펴봤다.


검은 세단의 뒷좌석 유리창이 살짝 내려와 있었고, 그 안에서 누군가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차 안의 인물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정장을 입은 중년 남성인 것 같았다.

노근수는 차 쪽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 모습이 마치 상급자에게 보고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화는 길지 않았다. 노근수가 다시 한 번 깊게 고개를 숙이더니, 검은 세단을 타고는 조용히 현장을 떠났다.


'이상하네... 노근수씨가 왜 정장을 입고 있지? 그리고 저 차는 뭐지?'

미쓰리는 궁금했지만, 남의 사생활에 깊이 개입할 생각은 없었다.

아마도 개인적인 일이겠거니 생각하며 현장 입구로 향했다.


현장 입구에 도착하자 경비원이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미쓰리 씨!"

"안녕하세요!"

미쓰리는 밝게 인사하며 안전모를 챙겨 썼다.

건설 현장에 들어갈 때는 항상 안전모를 써야 한다는 것이 규칙이었다.

처음에는 머리가 눌려서 싫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현장 안으로 들어서자 여러 작업자들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철근을 나르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콘크리트를 붓고 있었다.

모두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었다.


"김반장님 계세요?"

현장 사무소에 들어가자 젊은 작업자가 고개를 들었다.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아, 미쓰리 누나! 김반장님은 3공구 쪽에 계실 거예요."

"고마워요!"

미쓰리는 서류 가방을 든 채 3공구로 향했다. 콘크리트 덩어리들과 자재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3공구 쪽으로 가면서 여러 작업자들을 만났다. 모두 미쓰리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이 현장이 착공한 지 벌써 1년이 넘었으니까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안면이 있었다.

"미쓰리 씨! 오늘은 무슨 일로?"

"김반장님께 서류 전달해드리려고요!"

그런데 3공구에 가까워지면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반장의 목소리였는데 뭔가 걱정스러워하는 톤이었다.

"왜 자꾸 사람들이 없어지는 거야..."

혼잣말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미쓰리는 궁금해져서 발걸음을 늦췄다.

김반장님이 무슨 걱정을 하고 계신 걸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김반장이 혼자 서 있으면서 뭔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평소에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항상 활기차고 명랑했던 김반장님이 이렇게 근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뭔가 심각한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미쓰리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김반장님, 안녕하세요."

김반장은 깜짝 놀란 듯 돌아봤다. 그의 얼굴에는 평소의 밝은 표정 대신 깊은 걱정이 서려 있었다.


"아, 미쓰리! 언제 왔어?"

"방금 도착했습니다. 이달 급여명세표 전달 드리려구요."

미쓰리는 서류봉투를 건네며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그런데 무슨 걱정 있으세요? 표정이 좋지 않으시네요."

김반장은 잠시 망설이더니 한숨을 깊게 쉬었다.

"아... 별거 아니야. 그냥 요즘 현장 분위기가 좀 이상해서."

"어떻게 이상하다는 건가요?"


김반장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최근 들어서 몇 명의 작업자들이 갑자기 그만둔다고 하더라고요.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말이에요.

어제도 박기사가 갑자기 사표를 냈어요. 10년 넘게 이 일을 해온 베테랑인데 말이죠."


미쓰리의 머릿속에 아까 본 노근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검은 세단과 정장을 입고 누군가와 만나는 모습. 혹시 그것과 관련이 있을까?


"다른 이유는 없을까요? 더 좋은 조건의 일자리를 찾았다거나..."

"그렇게 생각했지. 처음에는. 하지만 이상한 게, 그만둔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르더라고.

보통은 '어디 현장으로 간다'거나 '다른 회사로 간다'고 하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개인적인 사정'이라고만 하더라고." 김반장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더 이상한 건, 그만둔다고 한 사람들이 마지막 날 모두 똑같은 행동을 한다는 거야. 정장을 입고 현장 밖에서 누군가와 만나더라고. 오늘도... 노근수가..."

"노근수씨요?"


미쓰리는 깜짝 놀라며 물어봤다. 역시 자신이 본 것이 맞았다.

"그래, 노근수도 오늘 오후에 그만둔다고 하더라고. 아침까지만 해도 평소와 다름없이 일했는데, 점심시간 이후에 갑자기 사표를 내더라고. 그리고는 정장으로 갈아입고 현장 밖으로 나갔어. 아마 지금쯤은..."

"혹시 검은 세단을 타고 갔나요?"


김반장은 승신을 놀란 듯 쳐다봤다.

"어? 미쓰리 씨가 어떻게 알아?"

"오다가 우연히 봤거든요. 노근수씨가 정장을 입고 검은 차 앞에서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모습을요."

김반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항상 그 차가 와. 번호판도 제대로 안 보이게 가려져 있고... 뭔가 수상해."


승신은 점점 흥미로워졌다. 이것은 단순한 이직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치 어떤 조직이 계획적으로 작업자들을 빼가는 것 같았다.


"그만둔 사람들과는 연락이 되나요?"

"그게 또 이상한 점이야. 연락이 안 돼. 전화해봐도 통화 중이거나 아예 받지 않아. 집에 찾아가 봐도 이미 이사를 떠났다고 하더라고. 마치 증발해버린 것처럼..."

김반장의 목소리에 불안감이 묻어났다.


"혹시 경찰에는 신고해보셨나요?"

"뭘 신고해? 사람들이 자의로 그만둔다는데... 게다가 범죄가 일어난 것도 아니고... 경찰이 해줄 수 있는게 있겠어?"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자발적으로 퇴사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경찰도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그 사람들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나요? 나이대라든가, 기술 수준이라든가..."

김반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 그거 말씀하니까 생각나네. 그만둔 사람들 모두 이 분야에서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베테랑들이야. 그리고... 모두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지. 특히 어린 자녀가 있는..."

이 말을 듣자 승신의 등에 소름이 돋았다.

베테랑 기술자들을 골라서 데려간다는 것은 분명히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도 우연일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들이 그만두기 전에 특별한 변화가 있었나요? 행동이나 말투라든가..."

"음... 생각해보니까 있었어. 그만두기 며칠 전부터 모두 좀 초조해하더라고. 뭔가 걱정하는 것 같았고... 그리고 가끔씩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조용히 통화하는 모습을 봤어. 평소에는 현장에서 개인 통화를 거의 안 하는 사람들인데 말이야."


다년간 CSI나, NCIS 같은 미드로 숙련된 미쓰리의 추리력에 점점 확신이 들었다.

이것은 단순한 이직 사건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이 현장의 숙련 기술자들을 빼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협박이나 강압이 아닌, 뭔가 그들이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 같았다.


"김반장님, 혹시 최근에 이 현장에서 특별한 일이 있었나요? 새로운 프로젝트라든가, 중요한 기술이 도입됐다든가..."

김반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특별한 것이라... 아, 최근에 새로운 공법을 도입했어. 일본에서 들여온 최신 철근 결속 기술인데. 아직 국내에서는 우리 3공구 현장에서만 시범적으로 사용하고 있는...2공구는 이제 마무리 단계라 승인이 안나고 3공구에서 승인이 났더라고"

"그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겠네요?"

"그렇지. 특별한 교육을 받아야 하거든. 그러고보니 우리 현장에서는 그만둔 사람들이 모두 그 교육을 받았었어..."

이제 퍼즐의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이 새로운 기술을 아는 숙련된 기술자들을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왜? 그리고 누가?


미쓰리의 본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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