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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Dec 23. 2022

빨리 망해야 하는 곳


 야학의 최종 목표는 야학을 없애는 것이다. 이것은 오래된 생각이다. 배우고 싶었지만 사정상 그러지 못한 사람이 더 이상은 나오지 않아야 다. 바야흐로 고등학교 의무교육 시대다. 우리나라의 교육 수준은 급격하게 높아졌다. 다행히 우리 세대에서는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러니까 배움의 한을 가진 분들을 얼른 검정고시를 합격시켜서 없애드려야 하고, 모쪼록 이곳은 하루빨리 망해야 한다.


 현재 내가 활동하는 야학은 1989년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우리뿐만 아니라 이 시절에는 야학이 무척 많이 생겼다. 서울 강동구만 해도 6개의 야학이 있었다. 지금은 그 야학들 중에서 여기 한 곳만 남아있다. 어떤 이유로 야학들이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야학이 점차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시간이 흐르면서 야학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공중전화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듯, 야학이 필요 없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 간혹 내 글에 '요즘도 야학이 있네요'라고 의아해하는 분들도 계신다. 하긴. 서울 올림픽을 열면서 눈물 흘리는 쌍팔년도가 아니라, 선진국 대접을 받는 2022년에 야학은 조금 어색하긴 하다. 과거의 유물 보듯이 야학을 쳐다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실제 내가 대학생 때 활동하던 야학은 문을 닫은 지 5년이 넘었다.

 하지만 여전히 야학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신기하게도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학생수가 줄어들지 않는다. 홍보라고는 구청 소식지를 통한 광고와 학생들의 입소문 밖에 없는데도. 한글에 익숙지 못한 분들도 계시고,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분은 셀 수 없이 많다. 카톡 메시지를 보낼 때 맞춤법이 틀릴까 봐 조마조마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우리들에게 분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분들이 굳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한글을 모르던 학생분이 은행에 갈 때 손에 붕대를 감고 가신건 유명한 일화다. 손이 다쳤다고 하면 은행 직원이 대신 글을 써줄 테니깐. 당신이 글을 쓸 줄 모른다는 것을 남에게 알리는 것이 너무도 싫으셔서 손을 다쳤다고 거짓말을 하셨단다. 그러니 내 또래들은 야학을 다닐 학생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언제쯤 야학이 망할 수 있을까. 몇 해 뒤에는 야학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올까. 배움의 한을 가지신 분들의 물리적 나이를 본다면 그리 먼 얘기는 아닐 것 같다. 어쩌면 지금이 야학을 경험하는 마지막 세대일 수도 있겠다.


 나는 야학이 조속히 망하길 바라지만, 웃기게도 내가 활동하는 시기 동안은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손으로 야학 문을 닫고 싶진 않다. 더 이상 찾는 사람이 없는 적막한 야학을 보면서 착잡하고 싶진 않다. 34년 흔적이 남아있는 사진과 문서들을 버릴 생각을 하니 죄짓는 느낌이다. 어떤 선생님은 야학이 없어지면 기쁨의 건배를 한다고 하셨는데, 난 마냥 기쁘지 못할 것 같다. 쿨하지 못해 미안해. 부모들이 흔히들 '자식이 그만 컸으면 좋겠어요'라고 하던데, 비슷한 느낌이려나. 적어도 내가 있을 때는 교실이 북적북적했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학생들끼리 투닥거리는 소리도 듣고, 선생님들끼리 수업관으로 싸움도 했으면 좋겠다. 내 선에서 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운영을 더 열심히 해서 학생을 많이 모아야겠다. 그러다 보면 더 빨리 어르신들이 배움의 한을 풀 테지. 역설적으로 야학이 망하는 순간은 더 빨리 올지도 모르겠다.


 곧 있으면 학생 모집 기간이다. 많은 분들이 얼른 오셔서 배움을 성취하시고, 야학은 한 해라도 빨리 문을 닫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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