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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래미 빵티셸 Jun 06. 2024

#8 엄마가 집을 나간 이유(6)

뒤늦게 깨닫는 아빠 마음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게 정말 엄마였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 기억 속 엄마는 마음도 여리고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론 전화기 너머로 우는 전화는 한통도 오지 않았다.


아빠는 쏟아져 나오는 많은 문제 중 가장 골치 아픈 돈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식당을 처분하려 했으나, 엄마 명의로 되어있는 탓에 보증금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건물주는 우리 상황을 다 알았음에도 보증금을 돌려주기 싫어서 끝까지 당사자가 아니란 이유로 돌려주지 않았다. 경찰이 상황 설명을 해줬는데도 강제할 수 없었다.


그저 명의자인 엄마가 전화 한 통만 해줬어도 받을 수 있었던 600만 원은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본인이 받지도 못한 거 같았다..)


돈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기에, 아빠는 이혼을 진행했다. 엄마가 아빠 모르게 아빠 이름으로 받은 카드며 대출을 명의 도용으로 엮어 이혼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엄마가 사라졌다. 어떠한 인사도 연락도 없이 한순간에 증발해 버린 것이다.


처음 한 달은 기다렸다. 다시 올 거라 아빠가 다시 찾아오진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하기도 했다.


엄마의존도가 가장 컸던 오빠의 충격은 엄청났다. 오빠를 위해 늘 헌신하고 사랑했던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는 것에 분노하고 절망했다.


아빠는 매일같이 퇴근하고 와서 술을 마셨다. 우리를 앉혀놓고 엄마욕을 하거나, 아빠가 너희를 고아원에 안 버리는 걸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때는 저 말이 마음에 두고두고 남아 아빠를 원망하기도 했다. 언제고 마음이 바뀌면 우리를 고아원에 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협박처럼 들리곤 했었다.


좀 어른이 돼서는 조금 이해가 됐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어서 그냥 덮어두기로 했다.


상처를 주긴 했지만, 아빠는 평생을 자신의 인생으로 우리를 받쳐주고 있었기에 저 말 하나로 아빠를 미워할 수 없었다.


그 이후 들은 엄마 소식이라곤, 주소지 변경을 위해 동사무소에 왔었던 것을 동네 사람들에게 들은 것뿐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엄마를 만났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이 동네까지 와서도 엄마는 우리를 보지 않고 그냥 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어보며 엄마의 재혼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재혼 후 딸을 낳았다.


아빠에게 소식을 알리니, 일주일간 식사도 거의 못하시고 허탈해하셨다.


나는 엄마가 재혼한 사실 보다 엄마가 딸을 낳았다는 사실이 더 슬프게 다가왔다. 엄마는 그 여자아이를 키우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 생각을 해주진 않았을까? 얼굴도 모르는 이복동생의 얼굴이 문득 궁금해졌었다. 엄마를 닮았다면 나와도 닮았을까.. 그런 덧없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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