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깨닫는 아빠 마음
사실은 아빠가 문을 열었을 때 나는 그 사람을 보자마자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언젠가, 왜 인지 모르게.. 엄마가 보고 싶어서 걸어서 엄마 식당을 간 적이 있었다. 어린애 기준으로 집에서 40분? 정도 되는 길이었다.
날 발견한 엄마가 놀라며 ‘위험하니까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혼을 냈지만 이내 꼭 안아주었다.
여하튼, 그날 그 삼촌이 밥을 먹고 있었는데, 혼이 나는 날 보며 그래도 혼자 찾아온 내가 대견하다고 많이 혼내지 말라고 했었다.
그 남자는 엄마 성씨가 흔하지 않은 성인데, 그 남자도 똑같이 그 성씨라며 따지고 보면 친척이라고 얘기를 건넸다. 그리곤 본인을 삼촌이라 부르라고 했다.
그 이후에도 삼촌이 사준 거라며 커다란 미니 마우스 인형을 엄마가 받아와 나에게 주었다. 어린아이한테 강렬한 인상을 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 기억 때문에 그 삼촌이란 남자는 잊히지 않았다.
그렇게 그 남자가 나를 아는 척 하자, 아빠가 나한테 물었다.
“너 저 사람 정말 아는 사람이니?”
11살. 빗소리가 모든 소리를 잡아먹은 거 같던 그날. 피 묻은 그 삼촌이 나를 쳐다보던 눈. 그리고 질문을 하던 아빠의 눈.
너무 무서웠고 혼란스러웠다.
‘내가 안다고 해서 문을 열면 어쩌지?
그래서 무슨 일이 나면 어쩌지?‘
어린애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운 문제였고, 그래서 모른다고 대답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이따금씩 그날을 회상할 때면,
‘그때 내가 안다고 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그 남자가 우리에게 말하려던 건 무엇이었을까.. 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내가 모른다고 대답하자 아빠는 미련 없이 문을 닫아버렸다.
그 남자는 몇십 분을 집 앞 계단에 앉아있다가, 끝내 사라졌다. 비가 오니 오히려 그 남자가 내려가는 계단 소리가 더 잘 들려서, 그 남자가 갔다는 걸 아빠도 나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엄마는 사라졌다.
밤이 깊도록 엄마가 집에 돌아오지 않자, 아빠는 새벽에 식당으로 갔다.
도착한 식당은 엉망진창이었고, 아빠는 놀라 경찰에 바로 신고했다. 그리고 옆가게에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아빠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전에 강도를 만나 얼굴에 멍이 들었던 그다음 날 주변 사람들이 얼굴이 왜 그러냐 물었더니 “남편이 때렸다”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단다.
아빠는 하루아침에 아내가 사라진 것도 모자라서 가정폭력범까지 된 상황을 마주해야 했던 거다…
나중에 경찰이 와서 조사한 내용에 대해 듣게 되었는데, 그날 그 식당에선 싸움이 일어났고, 왜 싸움이 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싸움으로 인해 소주병이 깨졌고 엄마도 그 남자처럼 다쳤다고 했다. 그래서 인근 병원에서 엄마가 상처를 봉합한 기록이 남아있다고 이야기했다.
아빠는 언제나처럼 가출한 엄마를 찾아 나섰다. 이번엔 사건까지 연루되어 있으니 더 다급하게 찾았지만 끝끝내 엄마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 날이 늘어나며, 우리 집 우체통으로 날아든 고지서들과 마주해야 했다.
엄마가 아빠이름으로 받은 대출내역들이었다. 아빠나이 41살에 닥쳤던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