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였다.
근 한 달간 브런치에 글쓰기를 중단했었다. 유튜브를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편집을 공부하고 영상 찍는 것에 매진하다 보니 글을 쓰는 것에 소홀했다.
30분이라도 매일 조깅하는 것처럼, 50번이라도 매일 팔 굽혀 펴기를 하는 것처럼 글쓰기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서두를 쓰는 것이 어려워졌다.
글을 쓰는 것은 글을 쓰는 근육을 단련시키는 것과 같다. 매일 단련하듯 꾸준히 글을 써야만 ‘쓰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안동을 다녀왔다.
‘휴가’라고 하기엔 거창하고 장인, 장모님을 뵙기 위해가는 것이었다. 어른들과는 저녁약속을 했고 우리는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했다. 안동에 가는 길에 있는 단양에 들러 계곡에서 놀다가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마침 방학이라 시간이 여유 있던 아내의 조카에게 동행을 제안했다. 올해 스물둘인 조카는 어릴 적부터 우리 부부와 여행도 종종 함께 했고 이제는 술도 한잔씩 하는 사이다.
그 친구가 5학년일 때 처음 만났으니 나도 그 친구의 성장과정을 함께 본 셈이다. 게다가 우리는 집도 가까웠으니 여느 조카, 이모부 사이보다는 친한 사이라 자부한다.
월요일 아침 일곱 시에 떠난 우리는 열 시가 다 돼 단양 남천계곡에 도착했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길 가에 주차할 공간도 넉넉했고 그늘에 돗자리를 깔 수 있는 공간도 꽤 남아 있었다. 아마도 주말에는 자리를 차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계곡이 잘 정비되어 있었고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도 깨끗한 편이라 한번 와 본 사람들은 자주 올만한 곳이었다. 다만 계곡의 깊이가 평균적으로 성인 허리춤에 오는 정도라 물놀이를 하기에는 조금 심심했다. 아이들과 함께 휴가를 온 가족들이 놀기에 더 좋은 곳이었다.
그래도 올여름 첫 물놀이라 나름 만족했다. 수경을 쓰고 물에 머리를 담가본 게 얼마만인가. 아내와 조카는 그나마 더 깊은 곳에 온몸을 담가 물놀이를 했다. 나는 몸만 적시고 나와 그늘에서 책을 읽었다. 분명 땡볕이 기승인 날인데 시원했다. 에어컨 없이도 시원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자연의 온도.
‘피서’였다.
오후 3시가 넘어 옷만 갈아입고 안동으로 향했다. 별로 한 것 없이 물에만 들락날락했는데 시간이 금방 갔다.
처갓집에 들러 간단히 물샤워만 하고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지인이 운영한다는 식당에서 불고기를 먹고 산책도 할 겸 월영교로 향했다.
식구들과 멀리 돌아다니는 것을 반기지 않는 장인어른은 조카가 담당했다. 누구의 얘기도 쉽게 듣지 않는 어른이지만 외손녀의 부탁에는 어쩔 수가 없다.
처갓집에 올 때마다 종종 월영교를 걷곤 했다. 사실 그리 좋아하는 곳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물 위에 나무로 만든 긴 다리가 하나 놓여있을 뿐이지 별 게 없다.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번에는 새삼 달랐다. 일단 월영교를 걸으며 걷는 밤바람이 굉장히 시원했다. 밤 기온이 내려간 것을 보니 이제 여름이 가는 구나라고 느껴졌을 정도….(시내로 돌아오니 다시 습하고 더운 공기가 느껴졌다.)
곳곳에 장식해 둔 청사초롱도 예뻤다. 별 것 아닌데 그날의 월영교는 그동안의 느낌보다 훨씬 좋았다.
오래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장인어른은 월영교의 입구에서 식구들에게 다녀오라는 말을 하고 입구 근처에서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오래 걷고 싶었던 우리는 결국 멀리 가지 못하고 장인어른이 앉아 있는 곳으로 빠르게 돌아왔다.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작은 말다툼이 있었다. 다른 곳도 더 둘러보고 가자는 장모님과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는 장인어른의 의견차가 드러난 것. 가족들의 언쟁은 늘 그렇다. 고집이 더 센 사람의 의견을 나머지 가족이 들어주고 만다.
우리는 모두 집으로 향했다. 주차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려다 장인어른을 먼저 들어가시라 하고 장모님과 동네 산책을 했다. 못내 아쉬워하시는 장모님의 마음을 풀어주고 싶었다.
안동 번화가라고 할 수 있는 옥동을 걸었다. 월영교는 시원했는데 확실히 시내는 더웠다. 등줄기에 땀이 조금씩 흘렀다. 장모님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세계맥주 전문점으로 갔다. 집에서 맥주나 막걸리는 한 잔씩 주고받은 적은 있어도 밖에 나와 장모님과 술을 마신 것은 처음이었다. 오백 한 잔을 다 드시기엔 벅차실 것 같아 생맥주 핏쳐를 시켜 맥주잔에 한 잔씩 따랐다.
조카의 건배 제의에 머뭇거리던 장모님이 잔을 부딪혔다. 거품이 적당하게 올라온 맥주가 장모님의 입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 아! 시원타.
우리는 모두 동시에 빵 터져 웃었다. 맥주가 더 맛있었다. 다음에 또 오자고. 오늘부터 이곳을 장모님 단골가게로 부르자고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스티커사진샵이 눈에 띄었다. 망성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도 남기기가 쉽지 않을 역대급 사진을 남겼다.
다음날, 늦게까지 자느라 장인, 장모님과 아침식사를 함께 하지 못했다. (아침 6~7시 사이에 식사를 하시는 어르신들과 식사를 함께 하지 못한 건 사실 꽤 오래됐다. 결혼한 후 첫 해에는 어른들만 드시게 하는 게 죄송해서 몇 번 함께 하긴 했지만 이제는 꾀가 나서 일어나도 화장실도 가지 않고 자는 척을 한다.)
오후가 되기 전에 처갓집에서 나섰다. 안동까지 왔으니 서울로 바로 가기엔 아쉬웠다. 원래는 영덕에 있는 대진해수욕장을 가려고 했는데 동해 전역으로 퍼진 ‘해파리’때문에 바다로 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제천은 서울로 올라오는 길목에 있기도 하니 조금 쉬다 가기에도 괜찮은 동선이었다.
계곡을 찾았다. ‘능강계곡’이 괜찮아 보였다. 안동에 새로 생긴 맥도널드로 가서 점심을 포장했다.
제천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지대가 높은 곳에 있는 능강계곡은 인근에 ‘자드락길’이 있어 등산객들에게도 잘 알려진 곳이다. 도착했을 땐 주차장이 관광버스로 가득했다. 전국에서 등산객들이 계곡 산행을 위해 찾아온 것 같았다. 구석에 겨우 주차를 하고 계곡을 보니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관광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은 산행을 위해 모두 흩어진 것 같았다.
물놀이를 하기에 좋은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능강계곡은 깊이가 어른의 어깨가 잠기는 곳이 있었다. 계곡이 흐르는 상류가 아니라 바닥이 보일 정도로 깨끗하진 않았지만 수영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취사가 용인되는 곳이다 보니 곳곳에 음식쓰레기가 눈에 띄었다. 게다가 몇몇 사람들은 물 바로 옆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모양.
다들 고기를 못 구워 먹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장소를 불문하고 여기저기서 구워댄다. 자연을 훼손하면서 까지 그러는 게 과연 낭만일까? 이럴 바엔 법적으로 강하게 전면 취사 금지를 시행하는 편이 낫다. 서로가 감시자가 돼서 지켜봐야 하는데 서로의 편의를 위해 용인하는 분위기로 흘러가니 그게 문제다.
점심때가 지나니 사람들이 고기를 굽는 걸 멈추었다. 그나마 조금 자연의 계곡다워졌다.
서너 시간을 계곡에 있다가 주차장으로 올라왔다. 몇 시간 동안 계곡의 그늘에서 있다 보니 더운 줄 몰랐는데 확실히 뜨거운 날이었다. 시동을 걸고 에어컨을 틀어 열기를 식히기 전까지 차에 도저히 오를 수가 없었다.
-이렇게 더운데 이렇게 시원하게 있었구나.
‘피서’였다.
운전하며 오는 길에 뒤에서 졸고 있는 조카를 봤다. 저 녀석이 언제 저렇게 컸나 싶다. 나는 그만큼 나이를 먹었고. 그 녀석에게 친구같은 어른이 돼주고 싶었다. 그마음은 여전하다.
전화기 앨범을 거슬러 보며 조카와의 여행 사진을 다시 한번 보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다만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