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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야시장의 환상

- 대만사람들과 충청도 사람들은 닮았다?

by 조명찬

단수이에서 지하철을 타고 스린으로 돌아갔다. 오전에는 국립고궁박물관을 가기 위해, 밤에는 스린야시장을 가기 위해 스린역에 내렸다. 제법 익숙해진 기분이다. 스린역에서 야시장까지는 10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스린 야시장이 워낙 크다고 들어서 가는 길에도 야시장의 느낌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밤 여덟 시, 스린역은 고요했다. 야시장이 오늘 닫았나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사람들의 퇴근 시간이 지난 중심지 외곽의 전철역 같다. 큰길을 걷다가 작은 길로 들어섰다. 거리에 빛이 점점 환해지고 있었다. 다들 어디서 숨어 있다 왔는지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났다. 골목골목에서 사람들이 나와 합쳐졌다가 다시 골목으로 줄지어 흩어졌다. 스린 야시장 메인 골목엔 다양한 먹거리가 줄지어 있었다. 하지만 우린 이미 단수이에서 저녁을 먹고 난 후라 크게 당기는 게 없었다.


고구마볼이 보였다. 유튜브에서 본 것이다. 줄이 길었지만 금세 줄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고구마볼이 담긴 종이봉투를 받을 수 있었다. 받자마자 후후 불며 한입을 먹었다.


음.


그냥 고구마 맛 도넛!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사람들은 이 게 진짜 그렇게 맛있던 것일까? 나는 계속 궁금하다. 진짜 맛있는 건지, 유튜브를 찍어야 하니까 맛있었다고 하는 건지....


무조건 먹어야 한다는 후추빵도 먹었다.


음.


맛있다. 천 원이 조금 넘는 가격으로 이 정도 맛을 낸다는 건 훌륭하다. 그런데 또 의문이 든다. 이게 정말 대만에 와서 꼭 먹고 가야 하는 음식인 건지....


후추빵의 맛은 평범했다.


스린야시장 끝에서 끝까지 걸었다. 특별한 볼거리보다 다양한 간식이 있는 곳이다. 친구들끼리 우르르 몰려와서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한 집씩 돌아다니며 맥주 한 모금, 야식 한 젓가락씩 하며 돌아다니면 신날 것이다. 나도 그런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은 다들 애 아빠가 돼서 1년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들다. 뭐든 마찬가지지만 여행 역시 때가 있다. 나는 친구들과 그런 여행을 또 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이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이 너무 공고해졌다.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쉽게 불평한다. 남의 말을 잘 듣지 못하고 자기의 말은 잘 들어주길 바란다. 네다섯 명이 모일 때면 서로 얘기하느라 바쁘다.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목소리가 쉽게 커진다. 옆 테이블의 사람들만 아저씨들의 재미없는 얘기를 불편하게 들을 뿐이다. 종종 친구들이 나보고 여행 계획을 세우라며 모두 함께 해외여행을 가자고 제안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언제 한 번 그러자'라고 대답하고 마음속으론 'X'를 그린다.


누군가와 여행을 하는 것은 서로를 인정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나와 아내는 연애 기간까지 합치면 13년을 함께 여행했다. 13년 동안 서로를 천천히 이해했다. 내가 설레어하면 아내가 설레고 아내가 싫어하면 나도 싫다. 그렇게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그러니 나의 가장 편안한 여행 메이트는 아내다. 그 자리는 누구도 넘보지 못한다. 우리는 함께 여행하면서도 각자의 시간을 존중한다. 대부분을 함께 하지만 모든 것을 함께 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일상을 살고 있다. 싫어해도 억지로 해야 하는 것들 투성이다. 일을 해야 하고 빨래를 해야 하고 빨래를 개야 하고 청소를 해야 하고 설거지를 해야 하고 컨디션을 위해 억지로 잠을 자야 한다.

결국, 우리가 여행지에서 자유로운 수 있는 건 일상이 잠시 지워지기 때문이다.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지에서만큼은 서로를 강요하지 않는다.


야시장 투어를 함께 하기로 한 토비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에 있어요?


-우리 스린야시장!


-아. 스린. 거기 계속 있을 거예요?


-어. 우리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야시장 함께 돌아보기로 했잖아.


-아니! 스린보다는 닝샤가 더 좋거든요.


-엥? 닝샤는 또 어디야? 여기서 가까워?


-지하철 타고 네 정거장인데 거기 계속 있으실 거면 제가 스린으로 가도 돼요.


전화를 끊고 조금 혼란스러웠다. 우리는 어제부터 저녁에 스린야시장을 갈 계획이라고 토비에게 말했었다. 자기가 추천할 만한 야시장이 있다면 미리 얘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야 얘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전에 토비와 대만 사람들의 성향에 대해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대만 사람들은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걸 꺼려한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직접적으로 말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은 적이 많았으며 자기를 배려하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생활을 해보니 서로의 의견을 정확하게 말하는 게 합리적이고 편하다고 느껴졌고 이제는 대만에 가서 친구들과 얘기를 하면 '넌 왜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고 했다.


그랬다. 토비 딴에는 우리를 배려했던 것이다. 스린야시장은 볼 거 없다고 현지인들은 닝샤야시장에 간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우리가 '스린야시장'에 갈 것이라고 확고하게 말하니 말을 아꼈던 것.


하지만 말을 아낀 것뿐이지 마음속엔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던 것이다. '닝샤로 가요. 거기가 진짜예요.'라고 말하면 되는 걸 빙빙 돌려 말하니 답답했다. 대만 사람들은 한국으로 치면 충청도의 성향을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 토비와의 대화를 충청도 화법으로 생각해 보니 제법 닮은 구석이 많다.


토비 : 나는 아무 데나 괜찮아요. 그런데 대만 현지인들은 스린은 안 가요.


충청도 : 괜찮아유. 아무 데서나 만나면 어때유. 우리가 만나는 게 중요한 거지 뭐. 근데 스린 뭐 볼 거 있남유?


충청도 사람들이 대만에 정착하면, 대만 사람이 충청도에 정착하면 다른 곳에 비해 적응하기 편할까? 몹시도 궁금하다.


-스린으로 올래? 아니다. 닝샤에서 보자. 지하철역에서 만나!


결국 우린 닝샤야시장으로 향했다. 두루뭉술하긴 하지만 토비의 추천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스린야시장이 먹거리 말고는 특별히 재미난 게 없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배가 불렀기 때문에 더 이상 길거리 간식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스린역으로 갈 때는 왔던 길로 가지 않고 조금 더 돌아서 갔다.


닝샤야시장으로 가는 게 내키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또다시 토비의 계획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라 묘하게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토비를 다시 볼 수 있는 건 당연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를 끝까지 케어해야겠다는 토비의 부담감이 느껴졌기 때문에 불편했다. 대만에서의 토비는 한국에서의 토비와 사뭇 달랐다. 잘 웃지 않고 때때로 피곤해 보였다. 가끔씩은 '이 아이도 이 시간을 즐기고 있긴 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나는 토비가 우리를 부담스럽게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말로만 듣던 대만사람들의 손님대접 문화가 이런 것인가 싶었다. 대만 사람들이 호스트 역할을 자처하는 경우엔 손님들에게 빈 시간을 주는 걸 미안해하거나 자신이 잘 챙겨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토비 역시 그랬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동안 토비에게서 연락이 자주 왔다. 어디에 있는지 물었고 어디에 있다고 대답하면 추천하는 맛집 목록을 몇 개씩 보내주었다. 지하철을 잘 탔는지, 버스는 잘 탔는지 걱정했다. 마치 노령의 부모가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을 했는데 헤맬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자식처럼 느껴져서 조금 웃기기도 했다. 일 때문에 온 일정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던 것인데 고맙긴 하지만 그런 마음이 우리에겐 조금 과하게 느껴졌다.


솽롄역에 도착하니, 토비가 역 벽면에 붙어 있는 콘센트에 휴대폰을 충전하며 앉아 있었다. 아직 우리가 도착한 지 모른 채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었다. 위로 머리를 질끈 묶고 바닥에 아무렇지 않게 눌러앉아 있는 게 아이 같았다. 서른이 됐지만 여전히 천진난만하게 웃는 아이. 토비.


우리는 토비를 좋아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만큼은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걱정할 거 없다. 이번이 토비와는 첫 여행이었으니까. 서로를 좋아하는 만큼 조금씩 맞춰지게 될 것이다.

토비를 부르자 우리를 보고 웃었다. 이내 아내한테 안긴다. 나도 토비를 어깨를 두어 번 다독였다. 오늘도 수고했다는 의미다.


-우린 저녁 먹었어. 넌?


-나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어.


하루 종일! 먹지 않았다니 한숨부터 났다. 우리와 야시장을 즐기기 위해 저녁을 먹지 않았던 것일까? 그걸 생각하지 못하고 우리끼리 먼저 밥을 먹어 버린 것일까? 그렇다고 토비의 일이 끝나는 저녁 9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기다릴 수는 없다. 토비는 야시장을 함께 즐기려고 했던 건데 서운할까? 여러모로 다시 생각이 많아졌다. 말을 하지 않으니 알 수가 없다.


닝샤야시장은 샹롄역에서 걸어서 오분 거리에 있었다. 낮에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인데 일정 시간이 되면 가판대가 차려지며 시장을 형성하는 모양이다. 오로지 먹거리에 집중된 시장이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는데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저녁을 먹기 위해 자주 찾는 것 같다. 사람이 두 세 사람 나란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를 두고 양 옆에 먹거리 가판대가 길게 이어졌으며 각각의 가판대 뒤로는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돼 있어 편하게 앉아서 음식을 먹을 수도 있었다.


닝샤 야시장


-우리는 배가 부르니까 일단 네가 먹고 싶은 거 먹어. 보다가 먹고 싶은 거 있음 우리도 고를게.


토비는 한 건물을 가리키며 자기가 다니던 초등학교라고 말했다.


-지금 가는 식당은 제가 초등학교 때도 있었어요. 어릴 때 학교 끝나고 나면 거기서 밥을 먹고 가곤 했거든요.


토비는 어릴 때 추억을 말했다.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어제도 중산역 근처의 츠펑제 거리를 걸으며 어릴 적 살았던 집과 동생과 놀았던 거리를 소개해주었다. 나는 토비가 한국에서는 보여줄 수 없었던 그녀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토비의 단골식당에 도착했다. 매일 가판을 펼치는 식당이다.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이 더 많았다. 토비는 밥 두 개와 국 하나를 시켰다. 토비의 저녁 식사였다. 우리는 그중에 밥 하나만 나눠 먹기로 했다. 흰쌀밥에 닭가슴살을 얹어낸 심플한 덮밥이 나왔다. 살살 비벼 먹어 보니 담백한 맛이다. 배가 부르지 않았어도 그렇게 인상적인 맛은 아니었을 듯하다. 토비는 맛있게 먹고 있었다. 배가 고파서 먹는 것도 있겠지만 어릴 때부터 계속 먹어온 편안한 맛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추억의 맛을 공유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이번 대만 여행에서 우리는 확실히 알았다. 토비와 입맛이 꽤 다르다는 것을....

입맛이 잘 맞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한국에서의 토비였다. 그렇다면 토비 역시 꽤 많은 음식을 억지로 먹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토비가 국도 한번 먹어보라고 권했다. 맑은 국물에 생선 내장 같은 흰 덩이가 떠 있었는데 국물과 함께 한 술 떴다. 역시 싱겁다. 흰 덩이는 부드럽지만 특별한 맛은 없었다. 동태탕에 들어 있는 고니와 생긴 것도 맛도 비슷했는데 알고 보니 '돼지 뇌'였다. 잡내가 없어 특별한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처음 먹어 보는 것이라 신기하긴 했지만 숟가락이 다시 가진 않았다. 한국에서 토비와 밥을 먹을 땐, 나름 토비의 입맛을 신경 써서 식당을 골랐다. 토비도 잘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맛을 찾는 게 첫 번째 조건이었다.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돼지뇌탕


토비는 나에게 대만의 닭고환 요리와 돼지 뇌 요리를 소개해주었다. 다음에 토비가 한국에 온다면 나는 꼭 그녀에게 잘 익힌 홍어회를 소개해줄 것이다. 홍어회를 먹어 봤다고 얘기하면 홍어찜을 먹어봐야지. 홍어회 우습게 봤다가 홍어찜에서 손사래를 치며 도망가는 사람을 나는 여럿 봤다.


밥을 먹고 나온 토비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배가 고프지 않은 상태로 먹거리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음식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토비가 추천하는 족발덮밥을 먹어 보긴 했는데 그날만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돼지 잡내가 심해 결국 반 이상을 남겼다. 아내는 한 번 먹고는 시도조차 못했다. 추천 음식을 남기니까 토비도 신경이 쓰이는 듯했다. 이래저래 닝샤야시장에서의 시간은 즐겁지 않았다.


잡내가 심했던 족발덮밥


여행의 마지막 밤이었다.


-내일은 어쩔 거예요?


토비가 물었다.


-우리 내일 가는 거니깐 특별한 계획은 없지 뭐.


-그럼 내일 아침에 여는 시장에 가서 같이 아침 먹을래요?


나는 이번 여행 최초로 토비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니. 내일 천천히 일어나서 '딘타이펑'가보려고. 한 번도 안 가봤으니까. 그래도 한번 먹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요. 편할 대로 하세요. 담에 여행 오면 내가 아침에 자주 가는 식당을 소개해 줄게요.


-그래. 그러자.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호텔 앞에서 헤어지려다가 우린 토비를 집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토비는 매일 다니는 거리겠지만 밤이 늦었기 때문에 우리가 데려다주는 게 맘 편했다. 지하철에서 10분 정도 걸어 토비의 집 앞에 도착했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셋이 꼭 끌어안았다.

토비가 말했다.


-언니 울어?


나는 잘 안다. 언니는 울고 있지 않다. 토비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또 언제 볼지 기약이 없으니까 울컥한 마음을 언니에게 투영했는지, 아니면 집 앞에 있던 가로등 불빛이 언니의 눈을 비추며 실제로 반짝였는지 모를 일이다. 나이를 먹으면 일상의 일에는 쉬이 울지 않는다. 잘 참고 잘 견딘다. 대신 드라마나 다큐를 보면 그렇게 운다. 내 일에는 쉽게 울지 않고 남의 일에는 쉽게 운다. 그게 그렇게 된다.


토비가 위로 올라가는 뒷모습을 끝까지 보고 돌아섰다. 마지막 밤이라고 해서 늦게 까지 문을 연 맥주집을 찾지 않았다. 하루가 참 길었다. 숙소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들렀다. 편의점 내에 있는 테이블에선 중년의 남녀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얼핏 봐도 대 여섯 캔은 비운 것 같다. 대만의 편의점 내부에선 술을 마시는 게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는 허용되는 모양이다. 새벽에 편의점 앞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이 그 안에서 술을 마시는 모습을 작잖게 본 것 같다. 우리도 한 캔 마시고 가려했다가 앉아 있던 남녀의 분위기가 조금 험악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 숙소에 가서 마시기로 했다.


침대에 앉으니 '아이고'소리가 절로 나왔다. 만보기 앱을 확인하니 2 만보가 훌쩍 넘어 있었다. 맥주 한 캔을 따서 아내에게 건네고 나도 맥주를 땄다. 아내의 싱글침대와 나의 싱글침대에 따로 앉아 서로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상하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내가 먼저 말했다.


-담부턴 싱글침대는 하지 말자. 너무 노년의 부부 같잖아.


-그러니깐. 이번 여행 좋았는데 우리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네. 이 숙소만 해도 그래. 굳이 여기를 예약할 필요가 없잖아. 토비가 아침 식사를 같이 하려고 이 숙소를 잡으라고 한 모양인데 결국 아침도 함께 못 먹고 말이야. 아침 함께 못 먹어서 서운했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침에 시간을 또 정해두고 움직이는 건 도저히 못하겠더라. 내일 그냥 푹 자고 천천히 일어나서 딘타이펑에 가자.


-응. 그러자. 담에 대만에 오면 확실히 기준을 가지고 움직여야겠어. 조금 피곤했네. 결혼기념일도 있었는데 이게 뭐냐?


푸념 섞인 아내의 말을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맞는 말이었다. 기준이 없으니 끌려다녔고 끌려다니다 보니 남는 게 없었다. 토비는 휴가까지 내면서 우리에게 대만을 소개해주려 노력했다. 그걸 피곤하게 느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우리의 잘못이 크다. 처음부터 가보고 싶은 곳이나 먹고 싶은 게 확실했으면 지금처럼 헛헛한 기분은 아닐 것이다. 처음 와 본 대만이었다. 천천히 둘러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많이 먹고 많이 마시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쉽기만 한 마지막 밤이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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