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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 Y에게

- 너의 아버지가 생각 났어

by 조명찬

그래.

그날 갑자기 아침부터 네 생각이 왜 났는지 모르겠어. 운동을 나가려고 쪼그려 앉아 러닝화를 신다가 네가, 아니 조금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너의 아버지 안부가 궁금해진 거야. 아버지가 우리 친구들 부모님 중에 제일 연세가 많으셨잖아.


혹시 너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내가 모르고 지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 우리가 요즘 연락을 자주 하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경조사는 알릴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는데 혹시나 네가 나에게 알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지.


다행이었어. 아버님이 건강하셔서….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네가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알리지 않았을 리가 없잖아. 그런데도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건 그동안 너를 자주 생각하지 못한 마음의 짐 때문이었을까?


기억나냐?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역삼국민학교 4학년 5반 교실이었어. 나는 전학을 왔고 너는 우리 반의 체육부장이었잖아. 아직 체육복을 준비하지 못한 나에게 다음부터는 체육복을 꼭 챙겨 오라는 네 말이 나는 곱게 들리지 않았던 것 같아. 뭔가 텃세같이 느껴지고 말이야. 그래서 내가 너한테 ‘네가 뭔데 명령이냐고 ‘ 다짜고짜 따졌잖아. 체구도 왜소한 네가 뭐라고 하니깐 만만해 보였던 게지. 기죽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쉬는 시간에 어떤 얘가 나한테 와서 귀띔을 해줬던 것 같아. 너한테 까불지 말라고. 네가 4학년 짱이라고 하면서 말이야. 그 말을 듣고 살짝 위축이 되긴 했지만 나는 그 말을 백 프로 믿진 않았어. 너하고 싸움하고는 정말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학원 옆에 있던 태권도장을 구경하다가 너를 본 거야.

그 작은 체구로 도장을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너를 보고 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날로 내가 엄마를 졸라서 태권도를 시작한 거잖아. 학원 하나를 줄이는 대신 성적을 잘 받기로 약속을 한 후였어.


도장을 다니면서 너와 본격적으로 친해진 것 같아. 학교가 끝나면 도장을 같이 가고 집에까지 같이 왔으니 친해지지 않을 수가 없지. 우리 집과 너네 집이 한 골목에 있었잖아. (너의 첫사랑, J의 집도 우리와 같은 골목에 있었지)


우리는 국민학교 내내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제일 친한 친구였어. 나는 네가 참 좋았어. 호탕하게 웃는 너도 좋았고 태권도 대회만 나가면 트로피를 휩쓸고 돌아오는 너도 좋았고, 집에 놀러 가면 비엔나 소시지에 참기름을 떨어뜨려 구워주는 너도 좋았어.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우린 조금 멀어진 것 같아. 그 사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다른 친구들과 친해져서였을까? 국민학교 내내 붙어 다니던 우리는 함께 지내는 시간이 조금씩 줄었지.


그거 알아? 나는 아직도 그날이 생생해.

중학교 입학 한지 얼마 안 돼서일 거야. H가 너를 소각장으로 불러 낸 것 말이야. 남자 중학교의 학기 초는 서열을 정리하는 시기라고 하지만 그때의 H는 그야말로 넘사벽이었어. 지금 생각하면 고작 열네 살짜리가 조폭 놀이를 하고 있던 거였지.


소각장 한편에 있는 의자에 앉은 H가 너보다 덩치가 큰 놈과 싸움을 붙였고 얘들은 그 주변에 몰려들어 구경하고 있었잖아. H의 무리들은 조폭 새끼들 마냥 H의 뒤에 서서 이죽대고 있었지.


구경하던 얘들 사이에 나도 있었어. 그러니까 나는 네가 맞고 있는 걸 한 순간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고! 당장이라도 얘들 사이를 비 짚고 나가서 너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질 않더라.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파이도록 주먹을 꽉 쥐고 분해하면서도 너를 돕지 못했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날이 생생해. 여전히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 가끔은 꿈도 꾼다니까.

그때부터였을까? 네가 조금 변했다고 느껴졌어. 잘 웃던 너는 웬만하면 웃지 않았지. 나는 죄책감에 쉽게 너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어.

어울리는 친구들이 달라지면서 우린 조금씩 함께 하는 시간이 줄었지만 여전히 친구였어.

네가 중3 때 좀 방황을 했었잖아. 태권도를 그만둔다고 했을 땐, 내가 다 억장이 무너지더라. 너의 태권도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말이야. 나는 네가 체고를 가서 국가대표가 되고 금메달을 딸 걸 상상했었거든. (네가 그때 관두지만 않았다면 충분히 가능했을 거라 봐.)


고등학교를 다른 곳으로 가고 우린 더 이상 고민을 나누는 친구가 아니었지. 그래도 가끔 만나면 편하고 좋았어. 친한 친구가 아니어서 그렇지 여전히 친구였으니까.


제대하고 나서 얘들하고 같이 술을 먹다가 내가 고백한 거 기억나냐? 그때 미안했다고 눈물 질질 짜면서 말이야. 너는 지난 일을 얘기해서 뭐 하냐며 나를 위로했지. 실은 그때 나는 맘이 꽤 가벼워지긴 했어. 오래도록 묵혀뒀던 사과였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나이를 먹고 생각하니까. 그때 또 내가 이기적이었던 건 아니었는지 생각이 든다. 너는 잊고 싶었던 일이었을 텐데 내 마음 편하자고 또 끄집어 내서 얘기를 했으니 말이지.


딸은 잘 크고 있지?

가끔 안부 물을 때마다 딸 나이를 물어보지만 들을 때마다 놀란다. (남의 집 아이는 왜 이렇게 빨리 큰다니!) 제수씨도 잘 지내고? 네가 연애할 땐 이름을 불렀었는데 이제는 같이 본 지가 꽤 됐더니 이름을 막 부르기가 좀 그러네. 확실히 마음의 거리가 느껴지면 '이름'조차도 쉽게 부를 수가 없는 것 같아.


친구야! 너는 나의 여전히 친구야.

우리 아버지가 했던 말 기억나니? 역삼국민학교에서 몰려다니던 놈들을 싸잡아서 '너희들이 나의 관을 들어줄 놈들이구나!'라고 얘기한 것 말이야. 그 말은 주문처럼 우리에게 박혀서 우리는 진짜 그렇게 하고 있잖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그날이 사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너도 알다시피 우리 아버지가 쓰러진 지 2년이 넘었잖아. 많이 좋아지셨지만 나는 요즘 종종 아버지의 마지막을 생각하곤 해.


여전히 나는 태권도하면 네가 생각 나. 너와 대련을 할 때는 그렇게 이기고 싶어도 한 번을 못 이겼지만 단 한 번도 분한 적이 없었어. 너도 알다시피 나는 다른 운동에는 안 그랬거든. 승부욕이 엄청났지. 우리 중에서도 내가 농구, 축구에 젤 진심이었잖아. 그런데 태권도는 너와 함께 하고 있다는 거 자체가 좋았어. 너를 이겨 볼 생각은 아예 못했던 것 같아. 4년에 한 번씩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선수로 참가하는 너를 상상했었어. 요즘은 지도자석에 있는 너를 상상하기도 해. 웃기지?


잘 지내고 있는 거지?

중년의 나이가 다 그렇지. 뭐. 마냥 재미있지는 않잖아. 몸도 슬슬 아파오고 말이야. 각자 잘 견뎌보자.

자주 연락하겠다는 말은 거짓말일 것 같아서 하지 않을 께. 하지만 네 생각이 날 때 재지 않고 바로 연락할 께. 그래도 되지? 우리 그 정도 사이는 되지 않냐? (당연하다며 고개를 세차게 흔드는 네 얼굴이 상상됐다.)


문득, 네 아버지 생각이 나서 너를 하루 종일 생각하게 됐다.

전학을 가서 경계심이 많았던 나와 친구가 돼줘서 고마워. 그때 나의 고민을 많이 들어줘서 고마워. 우리 엄마의 칼국수가 진짜 맛있었다고 기억해 줘서 고마워. 너는 알잖아. 우리 집 참 못 살았던 거.

8 학군으로 전학을 가서 얘들한테 꿇리지 않을 라고 허세도 많이 부렸던 것 같아. 너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내가 부족했던 부분을 잘 채워줬던 것 같아.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


이번에 만나면 다시 한번 고백해 볼까? 이런 닭살 돋는 말로 말이야. 나이가 드니까. 그런 말도 이제 어렵지가 않다. 야! 나는 할 테니 너는 잘 들어주라.


연락할 게. 그냥 한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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