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남과 멈춤 사이, 쉼 이틀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10시가 넘어서야 눈이 겨우 떠졌다. 꿈조차 없이 아주 푹 잘도 잤다. 아침엔 비가 내렸다.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뒹굴다 보니 창밖은 점차 햇빛으로 바뀌어갔다. 날씨가 다 뭐람, 뭐가 됐건 마음이 편했다. '걷고-쉬고-먹고-자고'에서 '걷기'만 잠시 빠졌다. 여유롭도록 폭신한 그 촉감에 행복감마저 느꼈다.
‘깔리’는 아침 일찍 이미 포르투(Porto)로 떠났다. ‘무초’는 오늘 늦오후가 되어서야 포르투로 떠난다고 한다. 산티아고순례길 여정을 마친 대부분이 포르투 아니면 바르셀로나로 간다고 했다. 나도 아마 피스테라(Fisterra)와 무시아(Muxía) 여정이 끝나면 포르투로 갈 확률이 가장 높았다.
'무초'와는 시간이 맞아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늑장을 부리다 그만 약속 시간에 조금 늦고 말았다. 산티아고의 가장 유명한 한식당인 NuMaru에는 한국인들로 가득했다. 그중에는 얼굴이 낯익은 분들도 몇 계셨다. 모처럼의 한식. 제육과 김치찌개가 진짜 맛있다. 곁들여진 튀김이 특히 정성스러운 감동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 '무초'와는 곧 헤어졌고, 홀로 근처를 산책하며 기념품샵 구경을 더러 즐겼다. 간단한 장을 봐 숙소로 돌아왔다. 아직 환한 대낮이었다. 이제 더 이상 바깥을 떠돌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혼자 보내는 시간은 이토록 빨리 지나간다. 어라, 그러다 보니 벌써 밤이 되었다.
아직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해 이러쿵저러쿵, 당장 며칠 간의 걸음만을 우선 정해 둔다. 일단 4일을 걸어 피스테라(Fisterra)까지는 가보기로 했다. 그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해 보기로. 사실 궁금하긴 무시아(Muxía)도 마찬가지였다. 무시아까지 하루를 더 걸어갈지 아님 버스라도 타고 갈지, 거기까진 차마 결정을 하지 못하겠다. 그저 몸과 마음이 허락하길 바랐다. '다시' 걸으며 흐트러진 상태를 다 잡아야 한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 광장을 오늘도 두 번이나 지나다녔다. 역시나 도착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생생히 거기 있었다. 축하하는 마음이 부푼다. 내면으로 함께 환호하고 또 포옹해 주었다. 그냥 한 달쯤을 여기 눌러앉아 그 표정들만을 담은 사진 작업을 해 보고도 싶었다. 그러게, 이미 산티아고 순례길에 잔뜩 물이 들었다. 이따금 심드렁해지곤 하지만 이 길을 무척 좋아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긴 웃으면 끝난 거다. 확실히 그리 느껴졌다.
그나저나 하루를 더 쉬길 참 잘했다. 어제 미사가 끝난 뒤 느꼈던 마무리감이, 하나의 챕터가 되어 그제야 다음장으로 넘어간 것 같았다. 그래. 이제 다시 걸을 수 있겠다. 피스테라까지 약 90km, 만약 무시아까지라면 28km 정도를 더 간다. 그동안에 비하면 아주 짧은 길이겠지만, 어디 '세상의 끝'까지 한번 걸어나 가보자.
얼마간 더 걷는다. 내일부터 길은 다시금 시작된다.
2024.11.05.
마감과 멈춤 사이, 쉼 이틀
오늘 하루 11,460보(8.2km)
*이 여정을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이 마음에 닿았다면, 구독과 라이킷으로 따뜻한 발자국을 남겨 주세요. 큰 힘이 됩니다. 작가나 브런치북을 구독하시면 새 글 소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비수기 3편, 산티아고순례길-프랑스길b」는 월/수/금 오전 8시마다 업로드됩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