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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칼 May 28. 2024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행복

엄마와 초등 아들이 떠난 동상이몽 자전거 여행 - 춘천 편

2021년 8월.

작년에 시도했던 춘천까지 자전거 여행은 마무리하지 못했다. 자전거 전용도로는 끊겨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도로를 달려야 했다. 아이와 자전거를 탈 땐 전용도로가 아니면 위험하다는 생각에 집으로 왔다.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면 자전거길을 벗어나 달려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지난 일 년 동안 우리는 다음 자전거 여행을 위해 집에서 월미도까지 여러 경로로 도로와 인도를 오가며 연습했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아니더라도 속력을 줄이고 주위를 살피며 달린다면 해볼 만했다.     


“엄마, 내일 춘천 가자.”

“뭐? 이 더위에?”


8월 초.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흘러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이 더위에 괜찮을까?’, ‘집에 가만히 있기보다 바람을 느끼며 자전거 타는 게 나쁘지 않을 수 있어.’, ‘코로나19로 집에만 있어서 체력이 떨어졌을 텐데….’     


막상 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도 머릿속의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하면 복잡하게 느껴진다. 그럴 땐 일단 행동을 하는 게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아들, 오늘 시험 삼아 시화방조제 다녀와 보고 괜찮으면 내일 춘천 가자.”     

우리 집에서 시화방조제 중간에 있는 시화 나래 전망대까지는 편도 25km이다. 지난번 경험을 통해 우리는 하루에 50km는 무리 없이 갈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동네에 있는 삼천리 자전거에서 브레이크를 점검하며 전조등을 찾아봤다. 

“사장님, 저희 야간 라이딩 갈 거예요. 전조등 좋은 걸로 추천해 주세요.”

“두 개가 있어요. 건전지가 들어가는 건 10,000원이고, 충전식은 35,000원이에요. 자전거를 야간에 자주 타면 충전식을 추천해요. 저도 이걸 쓰고 있거든요.”     


어릴 땐 무조건 싸게 사면 좋은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살다 보니 물건에는 돈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후론 무엇을 살 때 가격, 그 물건의 가치와 필요성까지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물건 사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50,000원짜리 중고 자전거에 35,000원 하는 전조등은 사치품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안전을 위한 필수 아이템이기에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아낌없이 70,000원을 투자했다.

“잠깐만요. 후방 등도 교체할 때가 된 거 같은데, 이건 서비스로 드릴게요.”

앞뒤로 등을 교체하니 든든했다.     


우리는 시화방조제를 향했다.

8월에 내리쬐는 땡볕은 나뭇잎이 증산작용을 하듯 몸속의 수분을 공기 중으로 끌어냈다. 열심히 물을 들이켰지만, 빠른 증발속도에 갈증이 가시질 않았다. 이대로 계속 가는 건 무리였다.

“아들, 쉬었다 갈까?”

환이와 나는 시화방조제 시작 부분 다리 밑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작년엔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눕는 게 어색했는데, 이젠 자연스럽다. 무엇이든 처음이 힘든 법이다. 다리 아래로 솔솔 부는 바람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팔이 이상해! 엄마, 팔에 하얀 게 묻었어. 이게 뭐지?”

돗자리에 누워 자기 팔을 보던 환이가 말했다. 하얀 게 뭔지 궁금했던 환이는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몸에서 지우개 똥이 나오는데. 히히”

“… ….”

“엄마 무릎도 하얘. 흐흐~~”

자세히 보니 온몸이 회색빛 소금으로 덮여 있었다. 돗자리에 누워 누가 더 더러운지를 따지며 한참을 웃었다. 쉬고 나니 힘이 솟았다.     


소금기 가득한 얼굴을 선크림으로 재무장한 후 헬멧을 쓰고 페달을 굴렀다. 시화방조제 자전거길은 나란히 이야기하며 자전거를 탈 수 있을 만큼 폭이 넓어 좋지만, 햇볕을 가려줄 가로수가 없는 게 흠이다. 땀이 흐르고 마르는 걸 반복하며 시화 나래 전망대에 도착했다.     


“한여름 땡볕에 자전거 타는 것도 생각보다 괜찮네.”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우고 치킨과 식혜, 커피를 사서 파도 소리 쉼터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바다와 하늘 사이로 ‘코로나야 물러가라’란 글귀가 적혀있는 연, 뫼비우스의 띠가 세 개 겹쳐있는 것처럼 돌아가는 연, 선녀, 오징어, 디즈니 캐릭터 모양의 연까지 장관을 이뤘다. 돗자리에 누워 연을 보며 흐르는 땀을 식혔다.     


“이제 갈까?”

“엄마, 우리도 전망대에 올라가 보자.”


시화 나래 전망대는 360°가 통창이었다. 강화유리로 만들어진 바닥도 있어 75m, 25층 전망대의 높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환이는 유리 바닥 아래로 시화호가 보이는 곳에 누워 내게 이야기했다.

“엄마, 나 배영하는 모습 좀 찍어줘.”

환이는 입은 옷이 반질반질 해지도록 유리 바닥을 열심히 청소하더니 이제는 만족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이제 출발해 볼까?”


무언가를 계획하지 않고 떠나는 여행은 이런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짧게 느껴진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집까지 온 환이는 결심을 굳힌듯했다.


“엄마, 내일 9시에 출발할까? 춘천까지 며칠이면 갈 거 같아?”

“자전거만 타면 이틀, 쉬엄쉬엄 관광하면서 가면 삼일 정도 걸릴 것 같은데….”


집에 도착한 환이는 방에서 거실로 물건들을 날랐다. 속옷, 양말, 바지, 윗옷 모두 두 개씩 챙기고, 좋아하는 음악을 검색해 핸드폰에 저장했다. 나름 치밀하다. 여행용품을 알아서 챙길 만큼 자란 아이를 보니 대견스러웠다. 작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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