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초등 아들이 떠난 동상이몽 자전거 여행 - 춘천 편
오늘은 팔당대교에서 가평까지 60km를 목표로 했다. 오전 9시에 숙소를 나왔다. 팔당대교를 넘어 작년 여행에 눈여겨봐 뒀던 미사리 밀빛초계국숫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를 여행할 땐 설레는 마음과 기대감이 있다면, 한 번 다녀간 곳은 편안한 마음과 익숙함이 있다. 국숫집에 들어가 닭칼국수 한 그릇과 만두 두 종류를 시켰다. 나는 초계국수를 먹고 싶었지만, 환이는 만두와 칼국수를 원했다. 환이는 아직 칼국수 한 그릇을 다 먹지 못한다. 그런 아이와 음식점에서 국수 두 그릇과 만두까지 시키면 반도 못 먹을 듯했다. 음식물 쓰레기가 많아질 거란 생각에 내 초계국수를 포기하기로 했다. 주문하는데 주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님, 제가 추천해 드려도 될까요?”
“……?”
“저희 가게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온 손님께 만두가 서비스로 나가요. 그러니 만두는 그것 드시고, 닭칼국수와 초계국수를 드셔보세요. 후회 안 하실 겁니다. 초계국수가 정말 맛있어요.”
주인이 권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에 주인 추천 음식을 주문했다.
“와~! 우~와~! 대~애~~ 박”
음식이 나오니 환이가 감탄사를 연발했다. 닭칼국수에 들어있는 닭다리 크기가 국수 그릇 삼분의 이를 덮었다.
“엄마, 세상에 이렇게 큰 닭이 있어?”
처음 보는 크기의 닭다리에 환이가 놀라 물었다. 닭을 먹은 환이는 칼국수를 거의 먹지 못했다. 초계국수도 시원하고 상큼했다. 주인이 초계국수를 왜 추천했는지 한 숟갈 뜨자마자 알 수 있었다.
“엄마, 우리 다음에 여기 또 오자.”
든든한 아침 식사에 힘이 솟았다. 이 상태라면 춘천까지도 갈 수 있을 듯했다. 서비스로 나온 만두는 맛도 보지 못했다. 계산하고 나오려는데 주인이 가는 길에 먹으라고 만두를 포장해 주며, 아이랑 이 더위에 자전거 타면 지친다고 꽝꽝 얼린 물 3통을 주셨다. 배려심 많은 주인 덕에 페달이 어제보다 더 힘차게 굴러졌다.
다음 해 여행에서도 우리는 밀빛초계국숫집을 찾았다. 하지만, 이날 이후 큼직한 닭다리는 볼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후에도 몇 번 찾았지만, 결과는 매번 같았다.
능내역 인증센터를 지나 우리는 양수대교에 다다랐다. 양수대교를 넘어가면 남한강 국토 종주 길이 이어진다. 남한강 국토 종주 길은 부산까지 이어진다. 우리가 목표하는 춘천은 북한강을 따라가야 한다. 북한강 종주는 양수대교를 건너기 전 오른쪽 아래 길로 내려가야 한다. 양수대교에 잠시 멈췄는데, 세미원과 두물머리 표지판이 보였다.
“아들, 다리 너머에 세미원 하고 두물머리가 있대. 가 볼까?”
“그게 뭔데?”
“가 보면 알아.”
우리는 양수대교를 넘었다. 금세 두물머리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타고 두물머리를 한 바퀴 돌았다. 그곳에 있는 사람 대부분이 손에 핫도그를 들고 있었다.
“우리도 핫도그 하나 먹어 볼까?”
“배부른데….”
“줄을 서서 먹는 곳 이래. 지금은 바로 살 수 있을 거 같은데! 하나만 사서 나눠 먹을까?”
한 입을 먹은 환이가 이야기했다.
“에~이, 그냥 소시지가 맛있는 거네.”
비싼 소시지 덕에 맛있게 느껴졌구나! 우리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두물머리에 핀 연꽃을 구경하고 다시 양수대교를 넘어 춘천을 향했다.
북한강 옆으로 이어진 자전거길을 달리다 보면 수상스키, 웨이크 보드, 바나나 보트, 땅콩 보트 등 수상 레저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많다. 발바닥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하늘을 나는 아이언 맨처럼 북한강에서 플라이보드를 타는 사람을 보고 환이는 자전거를 멈췄다.
“나도 크면 저런 거 해봐야지. 엄마, 내가 140cm 넘으면 여기 꼭 다시 오자.”
놀이동산에 있는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의 키 제한은 대부분 140cm이다. 환이는 140cm가 넘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참을 달려 청평역 부근 작년에 자전거 여행을 멈춰야 했던 곳에 이르렀다. 물길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자전거 도로가 있었다. 자전거길은 살짝 내리막이었다. 작년에 가지 못했던 길을 가는 동안 나는 미지의 세계를 탐방하는 느낌이 들었다.
땡볕에 계속 자전거를 타면 힘들 만도 한데 환이는 쉬었다 가자는 말 한마디 없이 꾸준히 페달을 굴렀다. 아들의 뒷모습을 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그새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조금만 쉬었다 가자. 너무 힘들다.”
다섯 시쯤 가평에 도착했다. 가평 버스터미널 부근에서 숙소를 찾아봤다. 숙소 건물이 오래돼 보여 묵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핸드폰을 꺼내 숙소를 검색했다. 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에그 하우스라는 게스트하우스가 검색됐다. 홈페이지를 보니 괜찮아 보였다. 자전거를 터미널에 묶어두고 에그 하우스를 찾아갔다. 낡은 건물이라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일단 들어가 보고 결정하자는 마음에 계단을 올랐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다. 전화를 걸었더니 3층에서 주인이 내려왔다.
“한 번 둘러보세요. 예약한 사람이 아직 없네요. 두 분이 4인실을 쓰셔도 됩니다. 화장실은 세 개 있는데 한 군데 골라서 쓰세요. 혹시라도 숙박을 원하는 손님이 또 있다면 다른 화장실로 안내할게요. 코로나 시국이라 따로 쓰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저는 3층에 있으니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올라와서 얘기해 주세요.”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밥을 먹으러 나왔다. 돈가스를 먹고 숙소에 들어오는데 계단 옆으로 아까는 보지 못했던 사진이 보였다. 주인이 다녔던 세계여행 사진이다. 코로나 시국이 아니었다면 세계 각국의 젊은 친구들이 자라섬 축제나 남이섬에 놀러 왔다가 이곳에 묵으며 서로 여행 정보를 공유하고 즐겁게 지냈을 텐데…. 이 넓은 공간을 예약도 하지 않은 우리만 쓰고 있으니 아쉬움과 씁쓸함이 밀려왔다.
“여기서 춘천까지는 40km 정도니까 내일은 충분히 도착하겠다.”
“드디어 레고랜드를 보는 건가요? 두~~ 둥.”
춘천에 도착하는 것보다 레고랜드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떨려서 잠이 오지 않는다는 환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코를 골기 시작했다. 씻고 나왔는데 발등이 간지러웠다. 발등에 땀띠가 났다.
‘발등에 땀띠가 나도록 달렸다니….’
평생 처음 해본 경험이다. 다음번 여행엔 땀띠약을 챙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