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칼 May 18. 2024

오늘만 개장한 물놀이장

엄마와 초등 아들이 떠난 동상이몽 자전거 여행 - 춘천 편

한강 자전거길을 벗어나니 식당 찾는 게 일이 되어 버렸다. 밥 먹을 곳이 없을까 봐 숙소 옆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먹고 출발했다. 팔당대교를 넘으니, 자전거길 옆으로 식당이 많았다.

“에이, 도시락 괜히 먹고 왔네.”

“엄마, 다음엔 여기서 아침 먹자.”

‘다음이란 얘기는 또 오자는 얘긴데…. 어제 달려보니 괜찮았구나!’

      

자전거길로 춘천을 향하다 보면 ‘발 가는 데로 마음 가는 데로 양평 여행’이라는 글이 적힌 다리가 나온다. 그 다리를 건너면 남한강 국토 종주 길로, 건너지 않고 옆으로 내려가면 북한강 국토 종주 길로 이어진다.

 

바람을 만끽하며 달리는데 저 앞에 자전거 동호회로 보이는 알록달록 사이클 복장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이지?”

도착해 보니 자전거 도로 옆의 산에서 쓸려 내려온 토사와 물이 길을 뒤덮었다. 원래부터 시냇물이 흐르던 곳이란 듯 물은 산줄기를 타고 자전거길을 가로질러 흘러내렸다. 라이더들은 신발과 양말을 벗고 자전거를 끌고 건너와 발을 말리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빠른 물살은 아니어서 우리도 신발 벗고 건널 준비를 했다.

     

“자기야, 우리 이왕 신발 벗은 김에 좋은 일 좀 하고 갈까?”

신발을 벗는 내 옆에서 발을 말리고 있던 중년의 부인이 남편한테 말했다. 부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환이에게 인사했다.

“꼬마야, 안녕?”

인사를 하자마자 남편은 환이를 번쩍 안고, 부인은 아이의 자전거를 끌고 반대쪽을 향했다. 두 사람은 환이와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바로 행동에 옮겼다. ‘뭐지? 이 추진력?’. 아이를 반대쪽에 옮겨놓고, 돌아오는 길에 나와 눈이 마주친 부인은 이야기했다.

“아이와 자전거 타는 모습 보기 좋아요. 안전하게 타세요.”

처음 보는 부부였지만 넘치는 에너지를 자전거 타는 데 쓰는 걸 보니, 왠지 건강한 삶을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부탁하지 않았는데, 선뜻 도움을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날로 기억하게 만든다.

     

이때만 해도 희망적이었다. 여기만 건너면 춘천까지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10분쯤 달렸다. 전보다 더 넓은 물길이 우리 앞을 막고 있었다.

“아들, 갈 수 있지?”

우리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자전거를 끌고 물길을 건넜다. 옆 산에서부터 내려온 물줄기는 한여름에도 시원했다. 뜨거운 햇살 아래 시원한 족욕을 하니 기분이 상쾌했다. 건너와 바닥에 앉았다. 햇살과 바람에 발이 금세 말랐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인적이 거의 없는 자전거길을 따라 쉬지 않고 달렸다.

     

청평댐에 도착했다. 청평댐에서 방류하는 물은 거대한 악마의 목구멍처럼 모든 걸 집어삼킬 듯 우리를 압도했다. 52일 동안 내린 엄청난 비의 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기상관측 이래 최장기간 비가 내렸다는 사실이 몸으로 느껴졌다. ‘기후 위기의 시대’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청평댐을 뒤로하고 달렸다.     

“또?”


자전거길을 가로질러 생긴 넓은 개울이 우리 앞을 막았다. 지나온 두 번의 물길과는 차원이 달랐다. 개울 너머로 작은 굴삭기가 흘러 내려온 돌과 나뭇가지를 치우며 가고 있었다. 반대쪽에서 오던 사람들은 우리가 걱정스러웠는지 이야기했다.

“더 가는 건 무리예요. 저희도 앞에 길이 끊겨서 돌아가는 중이에요. 돌아가세요.”

자전거길을 완전히 덮친 산에서 흘러 내려온 물은 바닥에 있는 돌과 흙까지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맑았다. 위 산기슭에 텐트를 친 가족은 튜브를 타며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더 가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은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아들, 아쉽지? 일단 놀자.”

우리는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물에서 댐도 쌓아보고 빈 물통에 물고기도 잡으며 한참을 있었다. 코로나19로 가지 못했던 물놀이를 자전거길에서 즐겼다. 운동화에서 해방된 발과 안장에서 탈출한 엉덩이도 기뻐했다. 놀고 나니 가 보지 못한 길에 아쉬움이 남았다.


“우리 자전거길이 끊긴 곳까지 가 볼까?”

환이와 나는 길이 끊긴 데까지 달려보기로 했다. 자전거길에 떨어진 나뭇가지와 토사를 치우는 굴삭기를 몇 대 지나니 청평댐 상류에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데가 보였다. 모두 물에 잠겨있었다. TV로 보던 것보다 심각했다.

“엄마, 다음엔 여기서 모터보트나 땅콩 보트 한 번 타자.” 

“응. 꼭 오자.”



이전 05화 엄마, 우리 어디서 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