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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희 시인 Aug 10. 2024

어딘가에 살고 있을 y... 그리고 詩 적인(寂人)

生과 死 한 끗 차이라는데 그 차이를 이길 수 없어서 눈을 감고 말아.

적인(寂人)

                   이은희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이가 산다.

마음 아주 깊은 그 골짜기

밥은 먹고 있는지

어느 해 쉬이 피우지 못한 하얀 난 꽃,

이제는 피는 것에 미소 짓는지

선선한 바람에 나부끼는 머릿결은 가지런히 빗어 넘기는지

비누내음인지 로션향이었는지 끝내 묻지 않아

알 수 없던 그 청량함은 여전한 건지

기울어진 소주잔에 쓴 입술을 맞추는지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지루하지 않던

그 긴 길을 아직도 걷고 있을까?

두 번은 들은 이 없다던 봉인된 메아리가 살고 있는

너도밤나무숲 가는 길이 담긴 지도는 아직도 찾는 중일까?


밤이 깊고, 별 하나 빼꼼 새벽이 오고, 쨍한 태양 가지 꼭대기에 걸리다 다시 바람이 별을 스치고, 밤이 깊고, 현기증이 나고, 숨이 차고, 목이 마르고, 다시 또 걷고……


차라리 눈을 먼저 감는 버릇이 생겼지

신기하게도 그러면 가슴이 두근거려

눈을 감으면 자꾸만 가슴이 야릇하게 아려와

生과 死 한 끗 차이라는데

그 차이를 이길 수 없어서

나는 눈을 감고 말아.



- 2024년 2월 22일 목요일, 밤 9시경 초고 씀.


2024년 2월 13일 아침, 유후인의 긴린호수와 주변 풍경...
후쿠오카 유후인의 '긴린호수'






올해 2024년 2월 아직 봄이 오지 않았을 때 조금 따뜻한 곳을 택해서 가게 된 일본 후쿠오카로의 가족여행, 특히 유후인의 긴린호수와 그곳의 풍경은 지금으로선 평생토록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내게 영감과 큰 감동을 선물했다.

그곳이 나에게 그런 특별함으로 다가온 이유는 나만의 특유한 호기심과 공상이 한몫을 했을 것이리라.  

어쩌면 전설 하나쯤은 분명히 품고 있을 것이라 상상하게 만들었던 '긴린호수'에 피어오르던 하얀 물안개와 호수를 둘러싼 겨울숲 그리고 마치 호수에 떠 있는 듯한 그 너머의 작은 촌락의 풍경...




이제는 아주아주 오래전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나는 같은 유치원 동급생이며 먼 친척뻘 되는 s의 전도로 일곱 살 처음으로 B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그리고 이곳에 이사를 오기 전까지도 B교회를 떠난 적은 없었다. 나의 유년과 학창 시절을 보낸 B교회를 여전히 우리 부모님께서는 아직도 다니고 계신다.    


내가 스무 살이 갓 넘었을 무렵 교회 담임 목사님의 조카였던 y 외국에서 살다가 잠시 한국에 들어왔고, 우리 교회에 당분간 출석하게 됐다면서 청년회에 인사를 했다.

그러고 보니 이젠 3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희한하게 나는 y의 이름이 아직까지 정확히 기억난다. 어제 일도 종종 잊고 마는 요즘의 나로서는 분명 희한한 일이기는 하다.

y는 나보다 살이 어렸고 그때 몸이 엄청 비대했다. 키도 크고, 덩치도 엄청 크고, 피부는 하얀데 얼굴엔 아직도 사춘기를 지나는 소년 마냥 붉은 꽃이 피어 있었고...


청년예배가 끝나고 여러 번 y는 우리 집까지 함께 걸어와주곤 했었다. 사실 나는 그때 걷는 것을 무척 좋아했었고 몸도 말라깽이여서 가벼운 몸으로 걸음도 매우 빨랐었다. 어지간한 남자애들보다 걸음이 빨랐으니까...

함께 걸을 때면 y의 얼굴에선 여름도 아닌데 땀이 늘 흐르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 y는 걷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겠다는 확신이 든다. 나를 바래다주고 나면 다시 버스를 타고 교회 근처의 목사님 사택으로 가야 했는데 한 시간가량 걸어야 했던 그 길을 y는 마다하지 않고 걸었다. 함께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면 금세 우리 동네까지 도착하곤 했었다. 그때 y와 함께 걸었던 그 길의 가로수도 건물들도 바람도 향기도 어렴풋하지만 내 기억의 저장고 속에는 분명하게 남아있었던가 보다.


유후인을 다녀오고 꼭 1주일이 지났을 무렵, 2024년 2월 22일 목요일 저녁을 비켜 막 밤이 켜지는 그 순간에 갑자기 눈물이 나도록 슬픈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그때 y에게 오랜 지병이 있었다는...


긴린호수에 피어오르던 몽환적인 물안개와 겹쳐서 오래 잊고 지낸 y가 갑자기 너무 궁금했다.

그리고 나만의 전설 하나쯤 간직하고픈 마음을 담아 이 詩 <적인>의 초고를 그 밤 썼다.


분명 어딘가에서 아직도 잘 살고 있을 y에게 걷고 또 걸어도 지루하지 않았던 그 길에 얽힌  마음의 전설 같은 詩 띄우며...





추신.

2024년 2월 13일 화요일 아침, 후쿠오카 유후인의 긴린호수에서...


추신 2. 이은희 시인의 연재브런치북


추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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