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나로 살아본 적 있나요?
말 잘 듣는 자식, 착한 친구, 하라는 대로 하는 성실한 학생. 그렇게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살았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특출 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남들에게 성실하고 착한 모범생으로 보이는 것으로 충분했다. 실제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노력해서 잘하는 것이 아닌 그냥 잘하는 척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실속도 없고, 무엇인가 몰두해서 이룬 경험도 없고 그냥 그렇게 무난하게 자랐다. 그러다가 누군가에게 혼나고 잘못을 지적받으면 하루 종일 움츠려 들고 한 없이 스스로를 비난했다. 그 행동이 정말 잘못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칭찬만 듣던 나에게 그런 부정적인 말 한마디는 있을 수 없는 말이었기에 "내가 혼났다" 이 생각은 나를 절망으로 빠뜨렸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철저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시키는 것은 잘 해냈지만 스스로 나서서 자발적으로 이룬 경험은 없다. 괜히 나섰다가 실패했을 때의 책임은 오로지 나의 몫이니까.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게 학창 시절에는 먹혔다. 가만히 시키는 것만 잘해도 반이상은 했고 졸업도 할 수 있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적어도 부정적으로 기억되진 않을 테니까...
하지만 사회는 가만히 시키는 것만 하는 자는 반기지 않았다. 그게 현실이었다. 집과 학교에서는 너무 눈에 띄지 않으면서 말은 잘 듣고 성실하게 공부하는 학생이 모범생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사회에서는 좀 못하더라도 능동적이고,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인정받고 추앙받았다. 그리고 사람들도 응당 그런 사람을 좋아했다. 이제 나의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때 아닌 방황을 했다.
내가 과거에 혼나고 실패하더라도 좀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살았다면 나는 좀 더 남들에게 인정 받고 좋은 사람이 되었을까? 그렇게 나는 또다시 나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었다.
그렇게 자기비난으로 나를 좀먹고 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나는 나로 살아본 적이 있나?
세상에 온전히 나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부모, 자식, 학생, 직원, 사장. 시기와 상황, 환경에 따라 우리의 역할은 다르고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오로지 내가 원하는 것, 나만을 위한 인생을 살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정말 내가 나로 살지 못하는 것이 상황과 환경 때문인가?
아니다.
내가 나로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어떤한 것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자식이니까 부모의 말을 듣고,
학생이니까 공부를 해야 하고,
미래를 위해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대학을 졸업했으니까 취직을 해야 하고,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했으니 아이를 낳고,
부모니까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부모가 연로하니까 부양해야 하고.
여기에 '나'는 없다.
나라서,
나를 위해,
내가 원하니까,
내가 좋아하니까,
내가 하고 싶으니까.
그런 이유는 없다.
그래서 나는 나로 살고 싶었다. 부모님이 원하는 좋은 직장, 돈 많이 버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며 살아보기로 했다. 배부른 소리 같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조금 철이 없지만 그저 나로,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