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꼬이’ 이야기 1
애견카페의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서 하나둘 손님들이 자리를 떠났다.
직원들은 익숙한 듯 가게를 정리하기 시작했지만, 그날은 뭔가 달랐다고 한다.
아직 남아 있는 강아지가 있었던 거다.
처음엔 보호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줄 알았다.
화장실에 갔을까? 곧 돌아오겠지. 하지만 끝내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한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까 어떤 손님이 ‘이 강아지 키울 사람 없냐’고 물어봤었어요.”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강아지는 버려졌다.
길거리에 버리든, 실내에 두고 떠나든, 강아지 입장에서 다를 게 있을까.
단지, 조금 더 안전한 곳이라는 사실이
버리는 사람의 마음을 덜 불편하게 만들었을 뿐이겠지.
직원 중 한 명이 그 강아지에게 ‘행운이 깃들길 바란다’는 뜻으로 ‘킷쇼’는 이름을 지어주고, 임시 보호를 시작했다.
하지만 오래 돌볼 수 없는 사정이 있어 입양처를 찾게 되었고,
그렇게 나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2kg도 채 되지 않는 깡마른 몸.
하얀 털을 가진 작은 푸들.
이미 남아 있는 치아가 많지 않아, 7세에서 10세 정도로 추정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첫날부터 나에게 모든 것을 의지했다.
팝콘처럼 하얗고 퐁신퐁신한 모습이 귀여워 ‘코니’라고 불렀다.
그러다 부산 사투리가 섞여 결국 ‘꼬이’가 되었다.
꼬이는 다른 강아지 친구들의 냄새를 맡으며 노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꼭 중간중간 나를 확인하러 왔다.
고개를 쭉 빼서 눈을 맞추고 다시 털래털래 뛰어갔다.
(애견카페에 버려졌을 그 순간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체력이 약해 잠이 많았는데,
잠을 잘 때는 신체 어느 부위라도 내 몸에 닿아 있어야 깊게 자는듯했다.
내가 없을 때는 바니 위에 올라가서 잠들곤 했는데,
3번의 파양을 겪은 바니도 꼬이의 기댐을 싫어하지 않는 듯했다.
아니,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는 사이가 되었다.
꼬이의 과거는 알 수 없다.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어떤 행복한 순간이 있었는지, 나는 평생 모를 것이다.
다만, 우리는 함께한 시간 속에서 서로를 깊이 이해했고,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꼬이를 버린 그 옛 주인을 나쁘다고 생각했다. 무책임한 사람이었다고 욕하고 원망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를 만나게 해 줬으니, 어쩌면 나한테는 고마운 일인 건가.”
(하지만, 이 글은 그 사람에게 닿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소한의 죄책감은 가지고 살기를)
꼬이가 나에게 온 날부터, 우리는 서로에게 가족이 되었다.
하늘나라로 떠나고 없는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
반려견은 ‘사지 않고도’ 키울 수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다.
어떤 사정에서는, 그렇게 온 아이들이 더 깊고 진한 사랑을 주기도 한다.
사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다.
우리 사이가 그 증거였다.
꼬이를 보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이가 많아 보여요.”
“오래 키우셨나 봐요.”
그럴 때마다, 나는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면서도,
그냥 웃고 넘기지 않았다.
꼭 이 이야기를 꺼냈다.
“아, 나이가 많을 때 왔어요. 우리는 늦게 만나서 그만큼 더 애틋해요.”
입양견이 어렵지 않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사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꼬이를 통해,
꼬이가 없는 지금도 누군가에게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