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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연 Sep 07. 2024

북한의 예술가

헬렌엔제이 갤러리 전시 프로그램, <잔존하는 ㅁ에 관하여>

 ㅁ은 무엇인가? 나에게 ㅁ은 그동안 내가 북한이라는 세계를 바라본
네모낳고 까만 블랙박스였다.
나는 북한을 정의하는 평면적인 시선,
개인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외부인의 한두마디만이 덧붙여지는
ㅁ이라는 '블랙박스'가 결국 내 안에 잔존해 있음을 깨달았다.



  일산 고양시 대화동. 나는 3호선의 종점이자 우스갯소리로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곳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파주가 많이 개발되었지만, 예전까지만 해도 대화역 너머엔 뭐가있냐는 말에, ‘북한이 있지’라고 답했다. 자유로를 타고 파주로 놀러갈 때면 임진강을 바라보며 저 너머가 북한인가? 그런 상상을 했다. 초등학교 시절엔 친구들과 ‘전쟁나면 우리 먼저 죽겠다’, 그런 농담도 했다. 몇년 전에는 뉴스에 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만나는 장면을 보며 진짜 전쟁이 끝나는게 아니냐라는 행복한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단절되고 악화된 지금은 북한에 대한 무관심만이 남아버렸다. 가장 최근의 기억은 어릴 적 매일 놀던 놀이터에 오물 풍선이 떨어진 것. 그리고 가끔 유튜브에 뜨지만 보지않는 탈북민 인터뷰. 


  이것이 내가 생각해온 북한, 나에게 잔존하는 ㅁ이다. 


  ㅁ은 무엇인가? 그리고 당신과 나에게 잔존하는 ㅁ은 무엇인가?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ㅁ은 각자의 내면에 있으며, 스스로 해체하고, 재정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2024년의 가을이 찾아올 무렵 헬렌엔제이 갤러리에 모인 사람들 각자에게, ㅁ의 의미는 비슷하면서도 다양했다. 그들에게 ㅁ은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 미지의 세계에 대한 빈칸과 같았다. 나에게 ㅁ은 그동안 내가 북한이라는 세계를 바라본 네모낳고 까만 블랙박스였다. 헬렌엔제이 갤러리에서 마주한 탈북민의 이야기는, 내가 지금까지 뉴스나 유튜브라는 블랙박스를 통해 봐왔던 '충격적인 북한의 정체'같은 다큐멘터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얼마 전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공개처형을 당한 젊은 북한 사람들. 우리는 보통 끔찍한 북한 정부의 만행에 치를 떨고, 그런 강렬한 감정은 자극적인 썸네일로서 소비된다. 처형당한 북한 사람들 하나하나의 개별성과 목소리는 북한이라는 이미지에 뭍혀버린다. 나는 북한을 정의하는 평면적인 시선, 개인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외부인의 한두마디만이 덧붙여지는 ㅁ이라는 '블랙박스'가 결국 내 안에 잔존해 있음을 깨달았다. 북한이라는 현실의 공간, 실제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억압적인 국가권력을 포함한 복잡하고도 미묘한 상호작용을 무시한 채, 우리는 평면의 화면으로서 북한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왜 나를 남한으로,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는 땅으로 떠나게 한 겁니까. 왜 내가 국가의 반역자가 되어야 합니까.”


  SaWe의 작품 <어둠은 중력을 지닌다>의 일부였던, 10년 전 탈북한 중년 여성의 간절한 목소리와 동시에 나는 북한이라는 공간을 재정의 할 수 있었다. 남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북한은 비이성적인 공간, 따라서 북한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탈북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당연한 행동이라고, 내 안의 잔존하는 ㅁ은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있을 곳도 없는 타지로 떠나는 것이 당연할 수 있을까? 그녀에게 북한이라는 공간은 억압 아래 평생을 애써서 살아남은 한 인간, 자식들을 키워낸 어머니로서의 공간, 즉 삶의 공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탈북민의 정체성은 탈북이 전부가 아니다. 그들은 탈북 전에도, 그 후에도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동시대의 인간이다. SaWe팀이 작품을 위해 진행한 인터뷰에서 한 탈북민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탈북이 제 인생에서 그렇게까지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탈북은 제 인생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일 뿐입니다." 결국 탈북은 금단의 공간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기억보다는 그들의 새로운 삶, 기회, 그리고 북한의 반인도적 인권침해의 시선에서 조망되어야 한다. 탈북이라는 키워드는 자극적인 뉴스를 벗어나 우리가 '때때로 생각하는' 문제가 될 수 있을까.




  

  전시 <잔존하는 ㅁ의 관하여>의 기획을 주도한 NKDB 북한인권정보센터는 탈북민의 증언을 기록하고 '반인도범죄'로 평가된 북한의 인권 상황을 탐색해왔다. 생생한 기록과 북한의 현실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국제사회의 깨달음과 북한 관계의 정상화는 이제 옛말이 된 것일까. 북한은 우리에게 고립과 배제의 공간이 되었으며 탈북민이라는 존재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는 '블랙박스 안의 사람'이 되었다. NKDB는 어쩌다 한번, 강렬하게 북한을 의식하는 게 아니라 작지만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기획된 이번 전시와 프로그램은 박심정훈, 이정, SaWe, 그리고 탈북민 작가 안충국으로 하여금 자신이 인식하는 북한을 되돌아보고 재정의하는 기회가 되었다. 물론 나를 포함한 일반인 관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깨달음의 시간이었다. 


  이 책의 이름을 <당신과 나의 감각>으로 짓고(앞으로 수정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또 다른 감각을 이야기하려고 노력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서로 단절된 이야기처럼 보이는 이 책의 각 챕터는, 책을 이어나갈 수록 보편적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듯 하다. 결국 보이기를 기다리는 것 보다, 스스로 익숙함을 벗어서 또다른 감각을 찾아나서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는 어쩌다가 한번 강하게 일어나는, 센세이션한 사건이 아니라, 얕더라도 긴 관심이어야 한다. 우리가 어쩌다 마주치고 넘겨버린 북한과 탈북민의 이야기, 그리고 소외된 모든 이들의 이야기가 그저 세상을 블랙박스의 한 장면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내재된 블랙박스, 내재된 ㅁ을 꺼내 해체하고, 재정의하고, 다시 마음 한켠에 두자. 그렇게 잔존하던 ㅁ은 이제 잔존하는 인간으로서의 이해심과 연대, 희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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