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특별전 <미래긍정 : 노먼 포스터 + 파트너스>
아픔이 불행이 되지 않으려면 아픔이 곧 불행이라는 믿음을 접어야 한다. 아픔과 질병은 우리 삶의 일시정지가 아니다. 아픔은 계속되는 삶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아프더라도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가기 때문에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우리 시대의 건축은 무엇일까. 어떤 건물이든 부동산으로 가치를 매기는 한국. 어떻게 하면 더 큰 아파트로 대출을 받아 갈 수 있을지만 고민하는 사회. 그런 흐름에 휩쓸리다가도 잠시 멈춰서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어떤 공간에서 살고 싶은 걸까? 영끌과 신축 아파트의 신화가 아니라, 정말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 공간은 대체 무엇일까.
아직도 그 답을 찾아가고 있지만, 그 고민의 시작에는 노먼 포스터 전시가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대기업 본사, 공항, 도시계획, 미술관 등 다양한 공간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예상했던 그런 건축들이 아닌, 전혀 몰랐던 어떤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노먼 포스터의 건축 중 가장 나의 마음을 끌었던 것은 애플 본사 '애플파크'도, 달 기지도 아닌 병원이었다.
병원이라고? 병원이 무슨 특별한 건축이 될 수 있나 싶지 않은가. 원래 병원은 우리에게 어떤 공간인가. 한창 아프셨던 할아버지 일로 병원에 자주 갔던 아버지는 "병원은 가기만 해도 기운이 죽죽 빨린다"라고 말했다. 하얗고 경직된 공간이자 아픈 사람들이 있는 공간.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병원의 이미지다.
전시를 보기 직전에 본 뉴스에서, 입원 생활이 환자에게도 힘들지만, 부모를 비롯한 보호자들에게도 큰 고통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그 당시에는 안타까웠지만 아픈 환자를 가족으로 둔 이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보호자의 '신체적, 정서적 희생'은 당연하다고 여겼던 걸까? 특히 아픈 아이를 둔 부모라고 하면, 머리가 헝클어진 채 기운 없이 아이 옆에 하루종일 앉아있는 (특히 여성) 부모의 모습이 떠오른다. 스스로도 병원은 일상적이거나 정상적인 공간이 아니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했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노먼 포스터가 기획한 아동 병원 시설을 보고 나서야 병원이라는 공간의 의미, 그리고 아픔의 의미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병원이라는 공간을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병원이라는 공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의학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의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최근의 우리 사회를 바라보자니 의학은 기득권층의 이익다툼, 사교육 입시와 인생의 성공을 위해 존재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의학은 기본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이를 살리기 위해 존재한다. 결국 병원 또한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더 나은 삶을 위한 공간이다. 그럼에도 병원은 아직 '들어가기만 해도 힘이 빠지는 공간'으로 남아있다.
노먼 포스터가 기획한 매기 센터, 스테드 가족 어린이 병원은 기계적인 치료를 넘어 인간의 치유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그의 병원은 아늑하고 편안한, 마치 고향 같은 공간이다. 앞서 이야기한 의학의 존재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병원을 천연 목재로 짓고 식물로 가득 채우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금의 병원에서 아이들이 두꺼운 벽과 커튼에 가려진 채 병과 싸우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면 이제야 문제를 의식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환자들이 질병으로 고통받고, 보호자 또한 정서적인 괴로움에 시달린다면, 그들의 삶의 존엄과 행복을 지키는 것이 의학의 역할이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복지 정책이나 지원금 차원의 문제도 있겠으나,) 병원이라는 환경,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사실 공간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박물관과 미술관이 더 이상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학습의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평생직장'도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선 언제든지 떠나는 곳이 되었다. 결국 공간이 자아를 존중하고 소통하는 장소가 될 때, 비로소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된다. 병원은 불행의 공간이 아닌, 아픔을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존재들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이제 당연하게 여겼던 공간의 의미를 넘어 새로운 공간을 상상하자. 어린 환자들이 나이에 맞는 놀이와 교육을 즐기고, 보호자는 가족들과 한데 모여 아이를 위한 파티를 준비하고, 때로는 아이의 병에 더 올바르게 대처하기 위해서 명상 시간을 가질 때. 병원이 식물과 빛으로 가득 차있을 때. 병원은 아픔이라는 '불행'을 알려주는 곳이 아닌 더 나아질 미래를 긍정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아픔이 불행이 되지 않으려면 아픔이 곧 불행이라는 믿음을 접어야 한다. 아픔과 질병은 우리 삶의 일시정지가 아니다. 아픔은 계속되는 삶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아프더라도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가기 때문에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아픔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치유의 공간이 존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