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성과 무령왕릉에서 백제 시간 여행을 마치고 동학사로 이동했다. 공영주차장에선 선불 요금 4천 원을 받는데, 이게 싫으면 입구에 늘어선 식당들 중 한 곳에 세우고 식사를 하면 될 일이다. 반갑게, 그러나 강압 없이 호객하는 식당 이모님들께 배가 너무 불러 죄송하다고 연신 손을 내저으며 서로 웃는다.
그 영험하다는 계룡산의 계곡길을 따라 천천히 산책을 한다. '영험함', '신비로움'같은 감흥이 어디에서 오는가 생각해 본다. 흔해빠진 것에서 멀찍이 벗어난 비일상성, 압도당할 만큼의 공포감이나 불편함 등에 기인하는 심리적 현상 아닐까. 생김새만으로 심오한 설악산에도, 케이블카가 놓인 자리는 신비감을 상실한다.
계룡산 동학사 계곡은 맨손, 맨발로 쉽게 접근할 수 없다. 그건 그저 사람의 행위로 막아두었을 뿐이다. 그러나 계곡물이 서로 뒤섞이는 소리, 바람으로 자라는 연둣빛 가득한 잎들이 엉기는 소리에 포근함이 감돈다.
동학사로 오르는 길은 내내 계곡을 끼고 눈앞을 휘청거린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햇살의 각도, 그림자의 깊이, 바람 따라오는 풀 내음이 변화무쌍하다. 사진 찍으며 멈추었다 다시 걷기를 반복하는 동안 마음속 풍경도 모양을 바꾼다. 복잡하던 생각이 드나들고, 떠오르는 얼굴은 짙었다 희미해졌다 아름답게 반짝인다.
나를 찾는 길이라기보다는 나를 만들어 가는 길이어야지. 자아는 숨바꼭질하듯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저 계곡처럼 휘청이며 이야기를 쌓아서 매 순간 형성해 가는 것이다.
어느새 일주문을 지난다. 여길 지나면 한 꺼풀 더 벗겨내라는 권유가 들리는 것 같다.
동학사는 계곡 앞 산비탈의 ㄴ자 땅에 빽빽하게 지어져 보통의 경내 풍경에서 느낄 수 있는 호젓함은 없는 편인데,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웠을 때라 연등으로 더욱 분주하다. 그러고 보니 동학사는 저 거대한 나무 위에 의탁한 모양새이다.
30분 정도 더 걸으면 은선폭포에 닿는다는 표지판을 보고 좀 더 가보기로 한다. 돌계단이 등장하기 시작해 발목이 피로해진다. 준비하지 않은 경로에 들어서 더 그렇다.
이런, 계곡 따라 은선폭포로 바로 가는 길이 통제되고 있어 계단길을 걸어서 돌아가야 한다. 잠시 망설이다 '얼마 안 되니 가보자' 결심하고 나무계단을 오른다. 몇 백 개의 계단을 올라도 끝이 없는 걸 보니 잠시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봉우리를 올랐다 다시 폭포로 내려가야 하는구나 싶다.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가파른 계단길이 벽을 따라 이어져 있어 잠시 아찔하다.
늦은 오후, 홀로 오르는 산에선 과욕이 가장 위험하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걸 허용하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오만이 아닌가. 이럴 땐 코미디 같은 핑계라도 찾아야 한다.
마실 물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핑계부터 시작해, 봉우리를 올랐다 폭포로 내려간다는 건 그 길을 다시 오르고 내려와야 한다는 부담, 트레킹화도 아닌 허술한 운동화를 신고 온 탓에 부상의 우려도 있다는 자각, 심지어 얼마 남지 않은 핸드폰 배터리 잔량까지 끌어다 댔다. 벌써 인적이 드물어 위기 대처가 곤란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걱정까지 더했다. 폭포 하나를 보고 못 보는 게 그리 중요한가 싶기도 했고, 어차피 계룡산을 모두 다 담아 갈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위안도 삼았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물러나면 계룡산, 그 영험함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다소 황당한 결론까지 내렸다. 그렇게 내려가기로 결정하기에 충분한 핑계를 중얼중얼 나열하고 여기에서 돌아선다.
누구 부럽지 않던 하체 근육이 이젠 이런 가벼운 포기에 열렬히 반색하며 얼른 내려가자 한다. 사흘째 매일 만 오천 보 이상을 걸었으니 충분하다고. 백 킬로미터 행군을 밥 먹듯이 하던 땅 위의 용사는 이제 없다.
하산길 다시 만나는 홀가분한 오후 풍경이 끝없이 싱그럽다. 계곡물의 방향을 거슬러 올랐으나 이제 우린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
물병이 완전히 비었다. 호객 행위 없는 카페에 들러 과일 들어간 음료 한잔할까 하다 결국 물 한 병 샀다. 이거면 된다. 짧은 공주 여행의 마지막은 물 몇 모금과 깊은숨으로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