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도 외부에서 걸려오는 많은 전화를 받지만, 대표적인 곳이 고등학생 및 학부모가 입학 관련 문의를 하는 입학처가 있고, 재학생들이 장학금 관련으로 문의를 하는 곳이 있다.
장학부서는 돈을 주는 곳이라 어려움이 있겠냐 생각하시겠지만 장학금 담당부서에서 5년을 근무하면서
나는 전화벨이 울리면이 깜짝깜짝 놀라고, 나중에는 전화벨 트라우마까지 생길 정도였다.
왜 그런 일이 생기는 걸까?
2015년 황우여부총리가 반값등록금을 얘기하며 시작된 국가장학금제도가 생기기 전까지는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주는 성적우수장학금과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주는 생활장학금이
장학담당부서의 주요 업무였고, 사실 큰 이슈도 없고 전화받을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국가장학금제도가 생기면서 장학금 업무는 기존의 장학에 정부의 장학이 더해지면서 선발조건은 더 많아지고 복잡해졌고 수혜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민원이 많이 발생하는 부서가 되었고, 자연스레 학교 내 기피부서 1순위가 되었다.
그럼 왜 선발조건은 많아지고 복잡해졌을까?
국가장학금을 받으려면 학생이 정해진 기간에 국가장학금을 신청해야 하고, 부모가 가구정보제공 동의를 하면 정부에서 세대의 재산을 파악하여 주식, 대출, 부동산까지 모두 포함하여 소득분위를 결정하게 된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듯이 국가에서 장학금을 주겠다고 해도, 그놈의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가정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부모의 정보제공 동의가 꼭 필요한 것이다.
대학생의 신청이 꼭 필요하고, 신청해도 일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저축, 대출, 부동산, 주식, 자동차까지 다 파악하려니 소득분위 결정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결과가 나오는 시점도 먼저 신청한 사람이 먼저 나오는 구조가 아니어서 개인별로 천차만별이었다.
그렇다 보니, 한 학기에 평균 4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마련해서 납부하기보다는 장학금을 받아서 감면을 우선 받고, 내야 되는 차액이 있을 때 그것만 등록금으로 내려는 가정이 많다 보니, 감면 결과를 기다리는 학부모와 대학생이 많았다.
정부에서는 소득분위를 동시에 내려주지 않고 매일매일 조금씩 내려주고, 국가장학금 사이트에서는 소득분위가 나오고, 관련된 장학금을 학교로 지급했다고 안내하고 있었던 것이 큰 오류였다.
갑자기 생긴 제도로 대학 전산실에서는 그것을 따라가는 시스템이 받쳐주지 못하고, 뒤늦게 결정되어 소득분위가 결정되는 사람은 담당자가 수작업으로 한 명씩 등록금을 수정하는 일을 하다 보니 감면을 받지 못한 학생과 다양한 사유로 등록금 납부기간에는 아침부터 전화가 빗발친다.
정부의 국가장학금 사이트에서 소득분위가 결정되고, 대학에 돈을 주었다는데 왜 등록금 고지서에는 반영이 되어 있지 않냐부터 다양한 민원의 전화가 많이 왔다.
아버지, 어머니, 학생 심지어는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전화 오시고 돈 관련이다 보니 민감하여 차분하게 문의하는 분보다 화가 난 상태에서 전화를 하시는 분이 많았다.
돈과 관련된 예민한 부분이다 보니, 담당자들도 꼼꼼하게 처리를 해야 했고, 개개인별로 소득분위, 학자금 대출 등과 연계되어 일일이 따져보고 감면처리를 해줘야 해서, 화를 진정시키고 원인을 파악해서 감면까지 최소 10분이 걸리는 전화부터 기초생활수급자로의 애환과 서러움까지 다 쏟아내시고 위로와 절차 설명까지 전화 한 통이 마무리되는데 30분씩 걸리기도 했다.
개인별로 교내장학, 교외장학, 국가장학까지 다양한 장학금이 등록금 범위 내에서 움직이다가 보니,
많이 받는 학생은 1학기에 6종류의 장학금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 1개~2개 정도는 장학금을
받다 보니 늦게 결정되는 장학금을 우선순위에 맞추어 넣고 차순위 학생에게 주는 조정작업까지 하면 정신이 없고, 향후에 전산시스템으로 여러 번 크로스 체크를 하지 않으면 등록금 범위를 넘기는 경우도 발생하여꼭 조정 후에는 전산으로 체크를 해야 했다.
전화벨이 울리면 깜짝깜짝 놀라는 것이, 대부분 화를 내시고, 하지 않았던 말을 오해해서 학생들이나 학부모님들이 편한 방향으로 해석하여 나중에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었기에, 몇 번 그런 일들을 겪은 후에는 모든 부서의 전화기에 녹음기를 설치해서 모든 전화통화는 날짜별로 녹음이 되어 저장되도록 하기도 하였다.
나중에 한가할 때 내가 하루에 전화를 몇 통이나 받았지라며 저장된 컴퓨터의 녹음 파일을 헤아려보니 100통이 넘어서 내가 하루에 전화를 100통씩 받는구나라고 알게 되었고, 한동안 전화벨 트라우마에 시달릴 정도로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전화가 걸려온 여학생의 어려움이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데 신청기간을 놓쳐서 감면을 못 받아서, 지금은 목돈을 마련하여 등록금을 내야 되는데, 어머니께도 죄송해서 제대로 말씀도 못 드리겠다는 힘든 상황이었다.
원칙은 정부의 소득분위 결정 후 연동되어 지급을 해야 되는 것이었다.
먼저 개인돈으로 등록금을 내고 난 뒤에 소득분위가 결정되면 나중에 개인통장으로 해당 금액을 지급받아야 하지만 당장 목돈이 없는 것이다.
학생의 딱한 처지에 내가 아이디어를 내었다. 기초생활수급자도 정부에서 정해주는 것이니, 최근 발행된 증명서를 제출하면 그것을 근거로 선감면을 하자는 것이었다.
다행히 아이디어가 반영되었고 그 학생은 등록금을 어렵게 마련하지 않고도 전액을 감면받고 해당학기를 등록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이후로 대학 내 제도가 개선되어 기초생활수급자는 깜빡하고 국가장학금을 신청하지 않더라도, 증명서만 제출하면 우선 감면할 수 있게 되어 유사 학생들도 동일한 어려움에서 해방되었다.
벌써 7~8년 전도 전 얘기라서 지금은 전산시스템과 업무가 많이 개선되어 그렇게 많이 민원전화도 받지 않고, 지금은 마음 편하게 얘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부서 전체가 스트레스가 많았고, 다른 대학 장학담당부서에서는 퇴사도 많았다도 들었다.
심지어 어떤 학교는 장학금을 오류로 지급한 것에 대하여 학생이 반납하지 않으니, 실수한 직원에게 개인의 돈으로 반납하게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대학이라고 그렇게 편하게만 직장 생활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요즘 콜센터에 전화하면 감정노동자라는 얘기와 함께 가족처럼 대하자는 안내멘트를 들을 때마다 그때의기억이 소환되어 정말 내 가족처럼 통화를 하려 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막말을 하는 사람, 악플을 함부로 다는 사람 모두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공감(共感)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
나만을 생각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은 공감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나도 더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