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연휴, 부모님께 이혼 이야기를 꺼낸 사연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 그 사람이랑 갈라서려고"
5월. 마음먹고 친정으로 향했다.
부모님은 연휴가 3일이나 되는데 남편과 함께 오지 그랬냐고 물었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 그 사람이랑 갈라서려고"
이번에는 친정 가서 말을 꼭 하고 와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며칠 후가 어버이날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차를 타고 오는 두 시간 내내 고민했는데 비교적 쉽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이혼이라는 충격적인 단어를 차마 꺼낼 수 없어서 '갈라 서겠다'라고 했다.
'갈라 서겠다'나 '이혼'이나 그게 그거지만 '이혼'이라는 단어를 꺼내놓고 보면
내가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부모의 충격도 걱정이었으나 부모님께 내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일까 봐 그게 더 걱정이었다.
절대로 우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부모가 반대한 결혼이었다.
첫 번째 반대에 남편과 나는 잠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고 1년 뒤 두 번째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부모님은 마지못해 허락했다.
그때 내 나이가 서른셋이었으니 부모님은 더 이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네가 반대한 결혼을 하더니 결국...'이라고 한다면 나는 눈물이 나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았다.
나는 신기하게도 잘 해냈다.
나는 남 이야기 하듯 내가 이혼결심에 이르게 된 상황을 약간 흥분해서 떠들었다.
우연히 본 남편의 카톡에서 내연녀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남편은 내가 임신한 때부터 3년 동안 그 년이랑 불륜을 지속해 왔으며
들킨 남편은 용서해 달라고 빌고 있으나 숙려기간이 지나면 6월 말에 결국 이혼을 할 생각이다.
라는 말을 분명 신나서 떠들었다.
평소 남편에 대해 일절 말씀이 없던 아빠는
남편이 함께 술 마셔도 남의 술잔 채울 줄도 모르는 놈이었다느니, 명절 때 와도 데면데면하며 살갑게 굴지 않았는데 속으로 딴생각이 있으니 그런 행동이 나왔던 거라느니 생전 안 하던 이야기를 쏟아냈다.
아빠는 괘씸한 놈이니 절대 마음 약해지지 마라고 했다.
혼자서 속 편하게 사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너 혼자 벌어도 애 하나 정도는 키울 수 있지 않겠냐 했다.
엄마는 그놈이 살만하니 추접한 짓을 했다며 홀어머니 고생하는데 열심히 살 생각은 안 하고 어떻게 그러냐 하면서 뒷 말로 너는 3년이나 될 동안 그것도 몰랐으니 어쩜 그렇게 둔하냐고 했다.
아... 이 대목에서 울 뻔했다.
'엄마, 열 사람이 지켜도 한 도둑 못 막는다는 말이 있잖아. 그놈이 속이려드는데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리고 평소에 얼마나 착실했다고... 그러니 나는 아무런 눈치도 못 챘지'라고 둘러댔지만 실은 나는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께 말은 못 했지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결국 엄마가 먼저 휴지를 뽑았다.
그리고 내가 바통을 이어받았고 마지막으로 아빠마저 눈가를 훔쳤다.
그렇다고 우리는 감정적으로 격해지지 않았다. 울음바다가 되지도 않았고 서로를 비난하지도 않았다.
나는 '결국 이렇게 돼버려서 미안해'라고 했고 아빠는 '절대로 마음 약해지지 마라'라고 다시 당부했고
엄마는 아빠가 들리지 않게 작은 소리로 '그래도 아들 생각해서 다시 생각해 봐라'라고 했다.
초저녁 잠을 자다가 깬 5살 아들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우리에게 '싸우지 마~'라고 했고
그렇게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그 뒤로 3일 연휴 동안 부모님은 별다른 말씀이 없었다. 다시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다만, 둘째 날 오전에 부모님이 아빠 친구 딸이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나에게 '골라도 어디 그런 놈을 골라가지고 에휴...'라는 말을 했고 나는 침묵으로 모른 체했을 뿐이다.
부모님을 만나고 돌아온 다음 날 나는 미뤄왔던 일을 처리했다.
법원에 상간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장을 접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