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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녁에는 Jul 13. 2023

이혼을 안 할 이유가 없다

오직 아이 외에는...

알아도 고통, 몰라도 고통


남편은 순한 사람이다.

남편과 나를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남편에 대해 바른 사람이라고 평한다.

남편과 나를 아는 지인은 우리가 애를 갖지 않자 '이렇게 똑똑하고 성격도 좋은 사람들이 왜 애를 안가져. 이런 사람들이 애를 낳아야지. 애도 행복하게 잘 키울거야'라고 했다. 또 어떤 지인은 '언니랑 형부 보면 결혼하고 싶어져'라고 했다.


남편은 다정다감한 성격에 아기 양육에도 적극적이었다. 연락이 안되어 속을 썩이거나 술을 많이 마셔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다. 5년 전부터는 룸펜 생활을 청산하고 생활비도 꼬박꼬박 가져다줬다.


그래서 내가 알 게 된 것이 '4년의 외도'로 끝났다면 내 남편이 잠시 동안 뜨거운 사랑을 했었구나 하고 지나갈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 남녀의 관계는 끝이 났고 지금 남편은 나와 아이 옆에 있으니까 흘러가는 바람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외도의 꼬리를 좇다보니 감당할 수 없는 남편의 실체와 마주하고 말았다.


남편은 5년 전 나에게 발각이 되어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했음에도 여전히 오픈채팅방으로 여자들과 대화하고 있었다. 이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여 그 여자들과 아이의 사진까지 공유했다.(경악스럽다) 아기와 시댁에 다녀온다고 해놓고 본인은 시댁에 아기를 맡기고 여자를 만나러 갔다.


몇몇 여자들과 숙박업소를 드나들었으며 그 중 한 여자는 나와 결혼하기 전부터 만났던 유부녀(심지어 초등교사)였다. 성매매를 한 듯한 정황도 있었다. 나 모르는 대출 이자도 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이 사람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건가?

내가 미련한 것인가 이 사람이 철저하게 가면을 썼던 것인가?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남편을 "무책임하고 의리없고 신뢰할 수 없는 인간"으로 정의하고 이해와 용서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이해와 용서를 하지 않는다면 그 다음은?


이혼할 것인가하는 문제에 부딪쳤다.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문제에 있어서 이혼은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아기가 없다면 이혼결정에 따른 부담은 오로지 나 혼자 지면 되는데 아기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이혼에 대해 불편한 시선이 있고 어떤 이유에서 이혼을 했건 이혼한 사람을 하자 있는 사람 취급하며 이혼 가정의 자녀에 대안쓰러움과 불편함을 표현하는 분위기가 있다. 속에서 나와 아이는 해낼 수 있을까.


이혼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남편과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지낼 수 있을까

아이가 독립하려면 적어도 15년. 남편이 언제 또 내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의심을 가지고도 아이 앞에서는 행복한 부부처럼 연기할 수 있을까

그랬을 때 나는? 나의 행복과 인생은?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그래서 몇날며칠을 인터넷 카페에 이혼상담글을 읽고 수기를 읽고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고민하며 밤을 보냈다.


더 깊은 수렁 속에 빠지기 전에 내 인생을 꺼내올려야 해


이혼하기로 했다.

결론의 논리적 도출은 어려워 포기했다.

이혼을 선택했을 때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어떤 상황이든 나는 잘 해낼 용기와 능력이 있다.

결혼을 유지했을 때 겉으로는 보기 좋더라도 내 마음은 병들고 황폐해질 것임을 알 수 있다.

이혼과 결혼 중에 어느 쪽에서 아이가 더 행복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므로 나는 좀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5년 전 내가 이혼을 망설였던 것은 내가 심사숙고해서 고른 상대가, 부모의 반대에도 밀어붙였던 나의 결혼이 실패로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제는 인정해야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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