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몰래 4년.
오래 두고 봐도 모르는 게 '사람'이다.
나와 남편은 23년 전 대학에서 만났다.
오랜 시간 가까이서 봐 온 사람이라 그 사람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우리 부부에 대해 물을 때에도
나는 이 사람에 대해 오래 동안 봐 왔다는 점을 강조해서 이야기했다.
우리는 서로 모르고 지낸 세월보다 알고 지낸 세월이 더 많은 관계라고...
그것은 서로에 대해 잘 안다는 것도 있지만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을 자신도 있다는 의미였다.
5년 전에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5년 전 남편은 소위 '오픈카톡방'을 통해
여러 여성들과 연인 관계에서나 할 법한 대화를 주고받은 게 들켰다.
어떤 여성과는 밀회도 즐겼다고 한다.
너무 충격적이라 손이 벌벌 떨리고 남편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기도 힘들었다.
들킨 것을 안 남편은 날 볼 면목이 없다며 집을 나갔다.
나는 지리산을 올랐다.
하루 종일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걸까. 내가 문제였던 걸까'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혼할 수 있을까. 용서할 수 있을까'
나는 긴 문답 끝에 남편을 용서하기로 했다.
우리는 치킨집에 마주 앉아 울면서 이야기했다.
4년의 결혼 생활 내내 룸펜의 삶을 살던 남편은
그 일을 계기로 제대로 살겠다며 직장을 구했다.
"나는 그때 네가 날 버렸다고 생각했어!"
남편은 지인이 소개해 준 직장이라며 타지로 일하러 갔다.
우리는 주말 부부가 되었다.
그 틈에서 놀랍게도 아이가 생겼다.
아이는 부부가 큰 고비를 넘겼으니 앞으로는 서로 의지하고 잘 살라는 신의 선물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나와 아이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 했던 남편은
그곳에서 직장 동료와 바람이 난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4년이나 지난 올해 2월에서야 알았다.
나는 물었다.
"5년 전 그 사건을 겪고도 내가 널 용서했고
너는 앞으로 나를 위해 살겠다 약속했지 않느냐
그런데도 어떻게 반년도 안 지나서 거기서 여자와 바람이 날 수가 있냐"
남편이 답했다.
"나는 그때 네가 날 버렸다고 생각했어!"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남편한테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충격적이고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그것은 본인의 외도를 합리화하기 위한 사실왜곡이다!
어떤 부분과 맥락에서 그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가!
이때, 나는 이 사람의 뇌구조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 사람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남녀의 행동이 수상했다.
내가 임신 5개월일 때 바람이 난 남편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남녀의 행동이 수상했다.
휴가를 내 남편이 살던 지역을 방문했을 때 그 여자와 인사를 나눴었다.
남편은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했다.
남편은 냉소적이라 주변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후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 남편은 그 여자에 대해서는 안쓰럽다느니 노력하는데 주변에서 몰라준다느니
자기가 도와주고 있다느니 하는 말을 했다.
나는 남편이 직장생활을 하더니 없던 사회성이 새로 생겼나 생각했다.
출산 후 백일된 아기를 데리고 남편 원룸에 잠깐 살았을 때
그 여자가 밤 11시에 찾아왔다.
일이 늦게 끝났는데 그래도 인사를 해야겠다며 기저귀 같은 걸 사들고 찾아왔다.
이상했다. 저건 정상적인 행동이 아니다.
그 뒤 그 여자가 다른 지역으로 발령받아 이사했다고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 근처였다.
남편도 그즈음 타지에서의 일을 줄이고 집에 자주 왔다.
아기가 생겨 육아를 함께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출근했을 때 둘이서 대낮 밀회를 즐기고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다.
남편은 정말 그 여자를 사랑했을까?
그 여자가 이혼을 했는지 사별을 했는지 모르지만 아이 셋을 홀로 키운다고 들었다.
그 여자의 삶도 참 고단하고 외로웠겠다.
그 여자의 행동을 용서하지는 못해도 이해하기로 했다.
그러면 남편은 그 여자를 정말 사랑했을까?
남편에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내가 우리 부부의 관계를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데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이 스스로 그 여자를 사랑했다 한들
나는 남편이 그 여자를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