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휴대폰이 나를 부른다.
올해 1월
왜 그날이었을까.
신이 지켜보다 못해 "이 바보 미련퉁이야! 니 남편 휴대폰 좀 한번 봐봐라" 하며 내 머리라도 때린 건가.
저녁에 반주 삼아 먹었던 술이 과했는지 남편은 술에 취해 쓰러져 잠이 들었고
나는 식탁 위에 올려진 남편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카톡을 열었다.
진실의 상자가 열렸다.
우리의 이혼이 시작되었다.
남편은 별칭을 사용하는 어떤 여성과 잘 지내냐 다음 주에 보자고 했다.
남편은 지난겨울 대학 짝사랑녀와 고급 고깃집에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새벽까지 노래방에서 놀았다.
(물론 나에게는 일하러 간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 남자의 사생활이 매우 매우 수상하다.
그때까지는 그냥 그 정도라고 생각했다.
별칭을 사용하는 그 여성은 그냥 아는 여자일 수도 있고
사는 게 힘들고 지쳐 나 몰래 대학 동창 정도는 만날 수 있으니 넘어가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 신경이 쓰였다.
핸드폰 메모장에 있던 어떤 여성을 향한 구구절절한 구애의 글이 말이다!
그 대상은 별칭을 사용하는 그 여성도 아니고
이루어지지 않았던 20년 전 첫사랑에 대한 것도 아니었다.
2월 어느 주말
금요일에 타 지역으로 일하러 갔다가 월요일에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은
그날따라 스케줄이 취소되었다며 일요일에 돌아왔다.
나는 아기를 데리고 친정에 갔다가 일요일 저녁에 집으로 왔고
우리는 친정 엄마가 싸주신 반찬을 꺼내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패턴에 벗어난 그 주말의 행동이 수상하다.
남편 핸드폰 카톡을 열었다.
남편은 토요일에 집에 왔고 어떤 여성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고 여자는 거절했다.
남편은 그 여자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구애의 글을 보냈다.
짧게 오간 대화 만으로도 그 둘이 가벼운 관계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 여자다!
그렇다. 마음이 가라앉았다. 머릿속에 차가운 바람이 지나갔다.
나와 남편은 완전히 분리되었다.
에네르기파 장풍을 쏘면 장풍을 맞은 상대가 순식간에 공중에 붕 떠서 저 멀리 날아가듯이
남편은 나에게서 떨어져 저 멀리 날아갔다.
'허... 이 XX 봐라'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이렇게 담담할 수 있었던 것은 이게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용서했지만 두 번은 용서할 수 없다!
냉정하게 증거를 모으고 그 남자에게서 자백을 받고
친권, 양육권, 양육비, 위자료에 합의하여 이혼을 밀어붙이고 했던 것들이
이번이 두 번째였기 때문에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그렇기도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진즉부터 이 남자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조금은 쉽게 그 남자를 저 멀리 보내버릴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