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너의 이름은?

by 연꽃 바람

요즘 아이가 포켓몬스터에 푹 빠졌습니다. 시작은 놀이터였습니다. 놀이터로 모여드는 형들은 저마다 손에 손에 조그마한 앨범을 가지고 모입니다. 주변을 지나다니는 킥보드에도, 날아다니는 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전거를 던지듯 내팽개친 형들의 눈은 반짝입니다. 마치 그동안 학교나 학원에서의 일과는 이 순간을 위해 감내한 시간들이었다는 듯이 소중하게 서로의 앨범을 꺼내며 의식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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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입에서는 낯선 이름들이 흘러나오고 앨범을 펼치자 휘황찬란한 카드들을 자태를 드러냅니다. 그곳은 어느새 소더비가 됩니다. 조심스럽게 내놓은 자신의 예술품들에 탄성을 내지르는 관람객들을 바라보며 의기양양한 형도 있고, 자신이 가진 최고를 내놓았지만 생각보다 야멸찬 비평에 조용히 카드를 집어넣는 형도 있습니다. 그리고 옆에 바싹 붙어서 형들의 은밀한 회동을 눈을 반짝이며 바라본 제 아이가 있습니다.


카드의 세계를 알아버린 아이는 바로 기회가 될 때마다 카드를 사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산타할아버지에게 빌었던 변덕스럽던 선물의 리스트들은 "포켓몬 카드"로 확고해졌습니다. 더불어 저도 포켓몬스터의 세계에 강제로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카드의 세계는 무궁무진했으며, 수많은 유튜버들은 지치지 않고 관련된 영상을 쏟아냈습니다. 아이는 열정적으로 카드와 영상을 탐하며 빠져 들어갔고 그 소용돌이를 저도 피할 수 없었네요.


포켓몬 카드와 유튜브를 조금씩 제한할 무렵, 아이는 뒤늦게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합니다. 카드를 통해서 이름을 익힌 평면의 포켓몬스터들의 움직임과 소리를 확인했습니다. 포켓몬스터 W 시리즈에 이어 포켓몬스터 썬&문까지 섭렵하기에 이릅니다. 함께 영상을 보며 저도 이제 제법 놀이터 형들의 대화에 낄 수 있을 만큼 포켓몬들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습니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더니 저도 포켓몬이 좋아졌습니다.


로켓단의 냐옹을 빼면 포켓몬들은 인간의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닮은 소리를 내며 의사표현을 합니다. 피카츄는 '피카', 이브이는 '이쁘이', 시마사리는 '시마', 염버니는 '버니', 루카리오는 '루카' 이런 식입니다. 그래서 포켓몬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 트레이너들은 언어가 아닌 비언어적인 요소들을 통해서 교감을 해야 합니다. 포켓몬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며 비언어적 요소조차 해석이 되지 않을 때 주인공들은 이런저런 가설과 추론을 하며 포켓몬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이 장면을 보며 '언어'란 참 편리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오해하기 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언어로 표현된 상대방의 생각이나 감정은 '언어'의 해독하는 순간 이미 알고 있다고 섣불리 판단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추론하거나 가설을 새우거나 하며 더 넓은 이해로 나아갈 수 있는 여지를 막아버립니다. 이미 이해된 것에 대해서는 더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럴 때 언어는 상대의 감정과 생각에 대한 나의 사고를 멈추게 하는 걸림돌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포켓몬들은 각자의 '언어'로 말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닮은 소리를 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언어가 곧 '이름'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포켓몬이 자신의 이름을 소개할 언어가 없기 때문에 그들이 내는 소리로 이름을 붙이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사람들도 같은 소리를 내는 것 같지만 각자 다른 의미를 가지 자신만의 언어로 말하는 것은 아닐까요? 어떤 사람은 "괜찮아"라는 소리로 "외로워"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문제 없어"라는 소리로 "도와줘"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에게도 차라리 공통된 언어가 없었다면 더 겸허하고 온전하게 상대방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에서 배가 고픈지, 아픈지, 졸린지, 심심한 것인지를 알아내려고 애쓰는 엄마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상대방의 소리에 집중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마음 깊숙한 곳의 에너지를 끌어올려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추론하고 질문하고 확인하는 마음과 머리가 뜨거운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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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01화참 좋은 여행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