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쉬운 카페; '만일'

일상 수집가- 캠핑 의자

by 연꽃 바람

늦여름 태풍에 먼지도, 늦더위도 다 날아간 것 같은 말간 하늘이 반갑습니다.


하교 시간 놀이터는 조잘조잘 웃음소리가 가득합니다. 길 하나 건넜을 뿐인데 길 건너 학교와는 전혀 다른 에너지가 가득합니다. 같은 얼굴, 같은 옷을 입은 아이일진대 길 하나 건너 놀이터에 발을 내디딘 순간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나 전혀 다른 아이가 됩니다.


단단한 두 다리로 땅을 디디고, 반짝 거리는 두 눈으로 사마귀를 좇고, 거침없이 손을 뻗어 재빠르게 사마귀의 몸통을 잡습니다. 어른에게 묻지 않고 누구에도 허락을 구하지 않고 가고 싶은 곳으로 달려가 어디든 성큼성큼 올라섭니다.


이름을 몰라도 나이를 몰라도 모여든 누구든 친구가 되어 함께 나뭇가지를 모아 사마귀를 위한 사파리를 만듭니다. 너나 없이 사마귀의 식사를 위해 놀이터를 누비며 귀뚜라미, 섬서구 메뚜기를 잡고 채집통 안에 잡은 곤충들을 넣습니다. 하나 둘 모여든 아이들까지 먹이 사냥에 나서 사마귀의 식탁은 화려해집니다.


온전히 아이가 결정하고 진행하는 한바탕 놀이가 놀이터를 생생한 에너지로 가득 채웁니다. 마법 같은 시간입니다. 마법도 잠시, 12시 종소리를 들은 신데렐라처럼 어느 순간 아이들은 학원으로 흩어집니다. 마음 속에 쓸쓸함을 애써 감추며 담담하게 "안녕" "잘 가" "내일 또 놀자"라는 인사를 끝으로 시끌벅적한 소란 대신 어색한 침묵이 자리합니다.


"이제 우리도 미술학원 가자. 친구들도 다 갔어."


하지만 이미 청명한 가을날 놀이터의 기운을 너무 많이 받은 탓인지 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 가는 미술 학원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그 선언에 담긴 어린 아이의 쓸쓸함과 결연함, 그리고 파란 하늘이 눈이 부셔서 그냥 그러자고 했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떠나 버린 텅 빈 놀이터에서 먼 곳에 시선을 두고 친구들을 찾다가 가장자리를 맴돌다 걸음은 점점 느려집니다.

놀이터 근처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에 과자 하나를 삽니다. 자동차 트렁크의 짐들을 모두 치우고 "만일"을 기약하며 넣어두었던 캠핑 의자를 꺼낼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꽃이 예쁘게 그려진 놀이터 빨간 벤치에 의자 두 개를 펼쳐 놓습니다.


바람은 솔솔 불고, 그늘도 적당한 곳에 아이와 앉아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먹습니다. 가방에 넣어둔 책도 꺼내고 텀블러에 챙겨 온 커피도 마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카페; 만약이 문을 열었습니다.


멋진 가을날의 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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