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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Feb 17. 2022

배움; 김동식의 꾸준함과 좋은 태도

맛있는 떡에서 떨어진 콩고물은 아까워서 손가락 끝으로 야무지게 꼭꼭 찍어서 끝까지 쓸어 먹게 됩니다. 책을 읽다보면 문장 하나 하나를 꼭꼭 쓸어담아서 야무지게 마음 속에 담고 싶은 맛있는 글이 있습니다.


브런치에서 읽는 작가님들의 글 가운데 그런 글을 만날 때면 어떤 재료를 넣어 그리 맛난 글을 쓰셨는지 읽고 맛보며 감탄하고 시샘하고 흉내내고 포기하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게 됩니다.


좋은 글은 다시 좋은 글을 부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글이 이끄는 대로 좇아가다 보면 작가가 쓴 책에 등장한 다른 작가의 이야기도 만나고 작가가 보았다던 영화도 만나게 됩니다. 역시 맛있는 글을 쓴 작가들이 남긴 콩고물은 참 맛있습니다.


김민섭 작가 덕분에 김동식 작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서점에서 선 채로 김동식 작가의 '회색인간'을 단숨에 읽었습니다. 정말 세상은 넓고 탁월한 이야기꾼은 많음을 다시 느꼈습니다. 김동식 작가의 상상력과 리듬감 있는 필체에 매료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김동식 작가를 검색했습니다. 저에게 맛있는 콩고물을 안겨준 작가 가운데 한 명인 오은 작가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김동식 편이 있었습니다.



꾸준함과 좋은 태도


김동식 작가가 강연을 가게 되면 늘 하는 이야기가 "꾸준함과 좋은 태도"라고 합니다. 자신을 작가로 만들어 준 것도 바로 이 두 가지라고 합니다. 뜨거운 아연을 주물틀에 붓는 반복적인 일을 하며 머릿속으로는 이야기를 상상하고 집으로 돌아와 그 이야기가 사라지기 전에 글을 썼다고 합니다. 사흘에 한 번씩 꾸준히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지적하고 비판하는 댓글에도 '수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좋은 태도로 자신의 글의 다듬어 갔다고 합니다. 첫 책이 나올 당시까지 읽은 책이 10권도 되지 않았지만 네이버에 '글을 쓰는 방법'을 검색하며 글을 썼다고 합니다.


꾸준함과 좋은 태도.  참 정갈한 말입니다. 단순하지만 명쾌합니다. 더 설명할 필요 없이 그대로 온전하고 완전합니다. 단단하고 아름답습니다. 이 말에서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이 말이 김동식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전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색 인간>이라는 짧은 소설을 읽었지만 그 속에 그의 삶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공 뒤에도 여전히 꾸준함과 좋은 태도를 보여주며 자신의 글쓰기를 고민하고 '주제 의식'을 말하는 모습이 참 정갈합니다.


하얗고 여백이 많은 접시에 담김 자체가 하나의 예술인 듯 보이는 멋진 음식이지만 막상 내가 먹는 과정은 아름답지 못할 것 같아서 손이 가지 않는 음식들이 있습니다. 제 경험입니다.


맛있고 엄선된 재료들을 각각 맛있게 조리하여 예쁘게 쌓아 올려 기다란 꼬챙이를 꽂아서 내오는 수제 햄버거 가게에 간 적이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꽤 소개가 되어 너도 나도 사진을 찍기 바빴습니다. 음식을 내오는 점원이 '사진 다 찍으셨어요?'를 확인하고 나서 기다란 꼬챙이를 빼면 형형색색 예쁘게 쌓아 올린 재료의 탑이 조금씩 무너지고 저는 그 무너진 조각들에서 최상의 조합을 찾아내어 다시 작게 잘라 입에 넣었습니다. 먹는 과정이 전혀 아름답지 않은 음식이었습니다.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먹기 전의 예쁨에 비해서 먹는 중의 너저분함이 싫어져 다시 가지 않았습니다.


김동식 작가의 글 '회색 인간'은 여백이 없이 딱 1인분에 맞는 접시에 보이는 그대로 끝까지 먹을 수 있는 한 그릇 음식 같습니다. 딱 1인분의 음식을 먹을 만큼의 시간 동안 읽을 수 있는 길이의 글에 기승전결의 리듬감이 있고 수저를 놓았을 때 오늘 먹은 음식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주제 의식'까지 놓치지 않는 완벽한 한 끼의 글이었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며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어떤 글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분명히 누군가가 읽게 될 글을 쓰게 되며 혼자 글을 쓰는 순간에도 글을 읽을 '나' 밖에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김동식작가처럼 알맞은 한 접시의 글을 쓰지는 못하겠지만 누군가가 시간을 들여 읽게 될 글에 '좋은 태도'를 닮은 '마음'을 담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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