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삶을 산 여자들
서양 고전 음악사의 가장 중심에 자리 잡은 고전 시대 Classic period.
선율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유선을 따라 쌓아 올린 미려한 건축물과 같은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 이제는 하나의 조그마한 선율의 씨앗으로 다양한 꽃을 키워내 균형미가 넘치는 단아하고 소담한 꽃꽂이로 만들어내는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이렇게 단아한 균형의 미를 지향한 고전 시대에 탄생한 음악 양식의 탄생으로 후대의 작곡가들은 이 시기의 음악 양식을 기준으로 다양한 자신들만의 씨앗을 오선지라는 화분에 심어 다채롭게 피워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중세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서양의 고전음악 전체를 통틀어 클래식 음악 Classcial music, 즉 고전 시대의 음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고전 시대 이전에는 여자가 음악을 공부한다는 것은 부도덕한 행위였다. 그래서 이 시기의 여자들이 비난을 받지 않고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선천적으로 가문을 타고났어야 했다. 걸출한 음악가들로 구성된 음악가 집안이나 악기 제작자처럼 음악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가문이 아닌 이상 여자들은 음악을 접한다는 자체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게 되었다. 여자들에게 음악으로 향할 수 있는 문이 일부분 열리게 된 것이다. 새로운 시대는 상류 사회의 여자들에게 음악이 하나의 교양의 덕목으로 권하였다. 전고전주의 시대부터 점점 변화된 이런 사회적 분위기로 여성들은 노래나 피아노, 하프, 기타 등 다양한 악기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서양의 고전 음악사는 고전 시대를 맞이하게 되며 음악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보통의 여자들에게도 음악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었던 중요한 시대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발을 들일 순 있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었다. 여자가 그 누구보다 노래를 잘 부르거나 악기를 잘 연주해도 이들의 음악은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여자들은 자신의 음악 실력을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지만 극장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연주를 하는 것은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갇혀버린 그들의 음악. 만에 하나, 여자가 극장의 무대에 오르는 순간, 훌륭한 연주에 대한 찬사 대신 부도덕한 행동에 대한 맹렬한 비난만이 그 여자를 반겨줄 것이다.
하지만 공적 세계로 나오려는 여성 음악가들을 향한 비난을 대번에 거두는 이례적인 예도 있었다. 모두의 존경을 받았던 요제프 하이든 Joseph Haydn이 인정한 젊은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는 그 특유의 재기 발랄함으로 ─호의적이든 적대적이든─촘촘히 엮인 거대한 인맥을 자랑하는 음악가였다. 모차르트는 특히 자신에게 감명을 안겨준 음악가들에게 특별히 자신이 직접 작품을 작곡하여 그들에게 헌정하기도 하였는데 이 중 두 작품은 그 당시 무대에 오르기 힘들었던 여성 음악가 2명에게 헌정하였다고 한다.
한 작품은 감미롭고 투명한 음색을 만들어내는 유리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연주자, 마리아네 키르히게스너 Marianne Kirchgessner라는 여성에게 헌정한 '유리 하모니카, 플루트, 비올라와 첼로를 위한 아다지오와 론도 Adagio and Rondo for glass harmonica, flute, oboe, viola and cello. K.617'라는 작품이다. 또 다른 작품은 당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귀족 여성 피아니스트 겸 가수,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 Maria Theresia von Paradis를 위해 헌정한 '피아노 협주곡 제18번 내림나장조 Piano Concerto No.18, K.456 B-Flat Major'라는 작품이다. 언급된 이 두 여성은 당시 집 밖으로는 내보내는 순간 부적절한 행동으로 비난받을 것이 분명한 자신들의 음악을 극장과 같은 공적인 장소에 당당하게 드러냈지만, 비난을 받기는커녕 큰 갈채를 받으며 많은 이들의 호평을 자아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답은 이렇다. 이들은 눈이 먼 시각장애 음악가들이었기 때문이다.
마리아네 키르히게스너는 4살에 천연두를 겪으며 두 눈으로 영영 세상을 담아내지 못한 아이였다.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의 음악적 자질이 얼마나 뛰어난지 라슈타트 궁정의 카펠마이스터인 요제프 알로이스 슈미트바우어 Joseph Aloys Schmittbaue의 눈에 띄어 하프시코드 연주자에서 유리 하모니카 연주자로 전향하여 유럽 전역의 무대 위에 올라 깨끗하고 청아한 연주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귀족가에 태어난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 또한 키르히게스너처럼 ─어떻게 시력을 상실하게 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남겨져있지 않지만─ 2살에서 5살 사이에 시력을 상실하였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당시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라난 이 아이는 여제의 가호로 오스트리아의 음악을 선도하는 대가들과 함께 음악 공부를 체계적으로 배우며 자신의 천재적인 음악 재능을 선보이게 된다. 성년이 된 파라디스는 이윽고 마리아네 키르히게스너와 마찬가지로 유럽 전역의 무대에 올라 대중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게 된다. 파라디스는 이에 한술 더 떠,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여성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금단의 영역, 작곡에도 손을 대 당시 집 안에서만 음악을 허락받은 여성들에게 얼마나 큰 파급력을 들고 왔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회에서는 이례적으로 시각 장애를 가진 여성들에게는 음악에 대한 분야만큼은 남성과 같은 권한을 부여하여 여성의 손으로 만들어 내는 음악이 집 밖에서 흐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그 이유인즉슨, 이들은 보통의 여자가 아닌, 소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여자들에게 사회가 음악을 권한 이유는 교양과 예의, 그리고 품격을 갖춘 현숙한 여자가 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즉 이 말인즉슨, 많은 남자들이 자신의 아리따운 신붓감을 간택할 때 요구하는 기본 덕목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시기의 여자들은 오직 집 안에서만 자신의 음악을 가두고 살아왔던 것이다. 음악은 결혼을 위한 수단일 뿐, 여자들이 본격적으로 누릴 수 있는 학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눈이 먼 여성은 역설적이게도 비록 신체적으로는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이러한 통상적인 사회적 굴레에서 자유를 얻어낼 수 있었다. 눈이 먼 이유로 오히려 사회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던 이 여성들은 사회에서 배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될 수 없었던 이들이 음악이라는 학문을 '배움'으로서 스스로 자신을 보살폈으니 사회에서 여성이 음악이라는 금단의 학문에 손을 댄 것을 눈감아주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시각장애를 가진 여성 음악가들은 무대 위에 오르는 순간 비록 볼 순 없지만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시선의 촉각을 자신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여성들에게는 좋은 음악적 자질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이 먼 '비정상인'이 선보이는 신묘한 재주로 치부해버리며 일종의 괴물 쇼 Freak show로 바라보는 시선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와 마리아네 키르히게스너는 무대 위에 오를 때마다 진정 자유로운 사람이 누구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친하게 지낸 이 두 여성은 모차르트 가의 또 다른 천재 음악가, 그의 누이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 여성들이라면.
가여운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 Maria Anna Mozart. 동생과 마찬가지로 당대 최고의 음악의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음악 경력을 쌓아가지 못한 그의 누이. 동생과 함께 신동이라고 불렸던 난넬*은 결혼 적령기인 18세가 되면서 아버지의 반대로 더 이상 무대에 오르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다. 그렇게 모차르트와 함께 음악으로 유럽을 발칵 뒤집은 저 여성의 음악의 재능은 그대로 사그라들며 사회 한편에 생매장당해 버린 것이다. 키르히게스너와 파라디스는 음악적 재능을 생매장당해 평범한 삶을 영위해가는 모차르트의 누이를 생각하며 몸은 부자유스럽지만, 인생은 자유로운 그들의 삶에 감사했을 것이다.
풍요로운 음악이 넘쳐난 고전 시대, 여자들은 눈이 멀어야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난넬: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의 애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