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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니븐 Oct 13. 2024

여태까지 해온 게 아깝지 않아?

나는 신입사원에서 딱 1년이 되던 해에 퇴직서를 냈다.


나는 신입사원 3개월 차부터 퇴사를 계획했다.


내가 카메라 관련 프로그램을 만드는 연구소를 나올 때, 같은 분야는 아니더라도 내가 해왔던 전공과 관련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두리뭉실한 계획이 있었다. 나에게는 이게 당연했다. 다른 건 사실 상상한 적이 거의 없다.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7년이란 시간 동안 나는 '이과 체질'이라는 생각이 분명했고 이와 관련된 일만 생각했고 진지하게 다른 분야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 시간, 사교육비,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때 당시에는 당연히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SKY 명문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공대로 유명한 인서울 대학교 전자공학부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교 입학부터 졸업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4년이었다. 이 시간 동안 나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이 전공이 나에게 맞지 않다는 걸 학기 초반부터 느꼈고 전과, 재입학 등을 알아봤지만 이를 실행에 옮길 용기는 부족했다.


그리고 친구들과 부모님에게 얘기를 했을 때, 나를 이해했지만 결과적으로 반응은 한결같았다. 

여태까지 네가 고생한 게 아깝지 않아?
여태까지 잘 해왔으니깐 조금만 더 해보자.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하면 네가 나중에 뭘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참고 견디다 보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내가 공부가 힘들어서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가...라는 의심을 하며 나는 4년이란 시간을 버텨냈다. 과선배와 동기 친구들을 따라서 대학원 입학도 고려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의 내가 정말 어리석었다. 정말 웃기는 일이다. 


그렇게 싫어하던 전공을 더 공부하려고 대학원을 알아보고 지원도 했었다. 결국, 몇 달 있다가 나에게 맞지 않다고 느끼고 연구실을 빠르게 나와서 다행이지만 끝까지 참고 대학원까지 갔다면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용기를 얻기 더 어려웠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졸업 전 카메라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연구소에 취직을 하였고, 3개월 차부터 퇴사를 계획했다. 퇴사를 생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 일이 아닌 조금 더 재미를 느끼고, 잘하고 싶다는 의욕이 생겨나는 일을 찾고 싶었다.



나는 신입사원에서 딱 1년이 되던 해에 퇴직서를 냈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이과 관련 직업을 갖고 취직해서 잘 먹고 잘 사는 목표 하나로 달려온 내 인생이었는데, 이 모든 게 뒤 바뀌어버릴까 봐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마음 한편에는 '지금 회사를 그만둬도 전공 활용해서 관련된 일을 하겠지'라는 생각이 불편한 내 마음을 안정시켜주곤 했다. 완전히 내가 해왔던 일을 놓을 용기를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퇴사 후 1년이 지났을 때 준비하던 소리 공학 유학을 포기하고 호주에서 커피 만드는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손재주도 없고 평생 카페 알바 경험도 전혀 없던 내가 스페셜티 커피라는 걸 알게 되고 배우면서 이 일을 잘하고 싶어 졌고, 더 많이 공부하고 싶어졌다. 


이런 마음이 들기 시작하니
내가 당연히 내 길이겠거니 믿고 달려왔던 길, 그동안의 시간, 돈, 노력들을 뒤로하고 다른 길을 가는 것에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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