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이랑 비교했을 때) 딱히 없네요. 시즌을 치르다 보면 시간이 워낙 빨리 흘러가거든요. 아직도 제가 어리다고 느껴요."
2년 전 본지와 화상 인터뷰로 첫 만남을 가진 이의리. 그때와 비교해서 딱히 달라진 게 없다고 밝힌 그였지만, 겉으로만 봐도 성숙해진 면모가 확연히 눈에 띄었다. 밑에 첨부한 당시 영상만 보더라도 첫 만남 때는 어리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젠 한층 어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2년 전 인터뷰 당시 "소년은 그렇게 어른이 된다"라는 제목이 벌써 현실이 돼버린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본문에도 언급했다시피 인터뷰일 기준으로 이의리는 팀 내 최다승(6승), 최다 탈삼진(81K), 최저 평균자책점(3.55) 등의 기록을 남기며, 조금씩 '타이거즈의 에이스'로서 존재감을 펼치고 있었다. 거기다 0.189의 피안타율과 0.581이라는 압도적인 세부지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올 시즌 마운드 위에서 이의리의 공을 제대로 공략한 타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데뷔 시즌부터 주목받은 그의 뛰어난 구위가 한 단계 성장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23시즌을 치르는 그의 마음은 그리 편치 못했다. 앞선 성과들만큼이나 늘어난 사사구나 줄어든 이닝 등 아쉬운 면모도 있었기 때문이다. 더 성숙해지기 위해 이의리에게 찾아온 성장통이었다고나 할까.
"요즘 들어 살짝 힘든 시기라고 느껴요. 이 시기를 잘 극복하면 좋은 시즌이 될 거 같아서, 스스로 고민이 많습니다."
출처 - 더그아웃 매거진
사실 이의리가 홀로 감내하기엔 조금 버거울 수도 있는 시련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제 겨우 프로 데뷔 3년 차, 만 스물 한 살의 이 어린 투수는 만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소속팀의 마운드를 지탱했고, 너무 어린 상태에서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다행인 건 그가 이러한 아픔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배워갈 수 있을지 끊임없이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흔히 성장하다가 벽을 마주하는 경우, 그 벽의 높음에 매몰되어 성장을 지속하지 못할 때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의리는 야구가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조차 하나의 단계로 여기는 듯했다. 원고 제목에 쓴 것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으니까.
"잘 되다가도 갑자기 흔들리고 하다 보니까 답답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올해가 기억에 많이 남을 거 같아요. 아직 남은 경기도 적지 않으니까 최대한 잘하도록 노력 중이에요."
출처 - 더그아웃 매거진
출처 - 더그아웃 매거진
'국가대표'. 이는 이의리에게서 떼어 놓을 수 없는 단어 중 하나다. 그는 데뷔 시즌을 가진 2021년부터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 초엔 세계 최고의 무대인 WBC에도 당당히 선발되기도 했다. 특히 도쿄 올림픽 땐 2차례 선발 등판하여 10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4.50, 18탈삼진을 기록, 첫 국제대회에서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마치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김광현을 연상시키는 위력투였다.
물론 WBC에서는 올림픽에서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진 못했으나, 최고 155km/h의 직구를 뿌리며 구위만큼은 충분히 '국제용'이라는 걸 확인했다. 같은 연령대 선수들 중에선 단연 압도적인 잠재력과 성장 페이스를 보였기에 이의리는 23시즌 도중 열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도 당당히 선발됐고, 그렇게 큰 어려움 없이 점차 대한민국 대표팀 마운드의 미래이자 현재로 자리잡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대표팀 소집 당일이던 9월 22일, 전력강화위원회는 손가락 부상을 이유로 이의리를 엔트리에서 제외하기에 이른다. 대표팀 합류를 위해 모든 프로세스를 짠 KIA와 이의리로선 갑작스럽고 황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 과정에서 여러 설왕설래가 있긴 했으나, 인터뷰에서도 대표팀에 대한 의욕을 보인 그였기에 뉴스를 보는 나도 너무 속상했다. 결과적으로 대표팀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으나, 이의리가 받았을 상처는 그리 작지 않았을 것이기에.
그러나 이의리에게 국가대표로서 자신의 기량을 증명할 기회는 머지않아 찾아왔다. 바로 시즌이 끝나고 도쿄돔에서 열리는 APBC 대표팀에 선발돼, 예선 두 번째 경기였던 한일전에 선발 등판한 것. 그리고 그는 일본 현지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 분위기 속에서도 6이닝 6피안타 3K 2실점, 무려 베이징 올림픽 김광현 이후로 16년 만의 한일전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자신을 향한 수많은 '억까'를 불식시키는 최고의 호투를 보여준 것. 이번 대회 내내 영건 투수들의 호투가 빛났지만, 유독 이의리의 호투는 서사가 있어서 그런지 더 감격적이었다. 그의 호투를 직접 내 눈에 담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던 부분. 이날 2대1로 아쉽게 패배한 뒤 경기장을 나섰지만, 그 기분이 그리 썩 나쁘진 않았다. 태극마크를 단 이의리가 돌아왔으니까, 그리고 누가 뭐래도 이의리는 '국가대표 좌완투수'니까.
2년 전 인터뷰 당시 이의리의 답변 (출처 - 더그아웃 매거진)
보통 이전에 출연한 적이 있는 인터뷰이와의 만남이라면, 예전에 한 질문을 다시금 던져보곤 한다. 시간에 따라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은 바뀌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2년 전에 야구를 즐기고 있다고 답한 이의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그랬어요? (웃음) 근데 지금은 잘 못 즐기는 느낌이에요. 저도 이제 그런 선배가 돼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원고에도 쓴 부분이지만, 이렇게 답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아직 즐기는 법을 잊어버리기엔 너무 어리고, 앞으로 남은 야구 인생이 끝도 없이 남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스스로 야구를 재밌게 하고 있다고 답한 게 불과 2년 전이기에, 그동안 성장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생채기가 났을까 싶었다. 또 이 어린 투수가 그 상처를 입으며 얼마나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있을지 상상이 안 가기도 했고.
이런 소년 같은 미소를 더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출처 - 더그아웃 매거진)
다행인 건, 여전히 이의리에게 소년 같은 미소가 남아있다는 거다. 그리고 갸티비를 보신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카메라 속 이의리는 영락없는 개구쟁이다. 몰래 구단 SNS 맞팔을 시도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고, 김도영이나 윤영철 같이 어린 후배들과는 쉼 없이 장난치는 모습이 한가득이다. 이 정도로 밝은 에너지를 가진 그가, 야구 역시 예전처럼 즐길 수 있는 순간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처 - 더그아웃 매거진
출처 - 더그아웃 매거진
출처 - 더그아웃 매거진
벌써 2년째 에디터 일을 이어가고 있고, 그동안 참 많은 인터뷰이를 만났다. 하지만 이날 이의리와의 인터뷰는 내 에디터 생활에서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된 순간이었다. 원래도 난 선수들의 미래를 응원하고, 그들의 아픔이 덜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 사람이긴 하지만, 한 인터뷰이를 진심으로 '추앙'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게 이날부터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평소보다 원고의 마지막에 담는 맺음말에 진심을 꾹꾹 눌러담았던 기억이 난다. 지난 10월 말 광작가님과의 비하인드 이후로 이 에피소드를 올리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돌이켜보면 썼다 지우는 과정이 유독 많아서 그런 것일 수도. 그만큼 이의리에게 진심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출처 - 더그아웃 매거진
앞으로 이의리의 야구 인생은 한없이 펼쳐나갈 테다. 정말 많은 걸 이룬 그이지만, 여전히 20대 초반의 나이인 만큼 그가 보여줄 드라마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길 것으로 생각한다. 마치 과거 100부작이 훌쩍 넘는 대하 드라마 정도의 분량이 될 수도. 그리고 난 기꺼이 그 대장정을 모두 본방사수할 계획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드라마가 끝이 났을 때, 그 결말은 누구보다 빛나는 해피엔딩이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