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DUGOUT MAGAZINE> 137호 (2022년 9월호)
코너 : DUGOUT Inside The Park
인터뷰이 :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터 광작가
일자 : 2022년 8월 16일
형식 : 대면 인터뷰
장소 : 더그아웃 매거진 스튜디오
10월이 끝나간다.
벌써 연말이라는 단어가 입밖에 나오기 시작했고
간혹 어떤 식당이나 가게에서는 조심스럽게
캐롤(혹은 비스무리한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이 말은즉슨 곧 내가 에디터 생활을 시작한 지도
벌써 2년째가 다 되어간다는 뜻이다.
그동안 참 많은 인터뷰와 원고를 경험했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진 않다.
(그게 이 비하인드들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고
제일 큰 영향을 준 인터뷰이가 누구였냐고 한다면
난 망설이지 않고 이 분에 대해 말할 생각이다.
<DUGOUT Behind> 열한 번째 주인공,
스포츠에 담긴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터 광작가다.
내가 작가님을 인터뷰했던 건 작년 8월.
벌써 1년하고도 두 달도 넘은 날이지만, 작가님을 처음 뵀던 순간만큼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인터뷰를 준비하던 중 작가님의 블로그에서 작가님의 사진을 미리 본 적이 있었는데, 내가 블로그에서 상상한 작가님의 이미지와는 조금 반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찾아본 작가님의 블로그. 난 작가님이 목소리도 좀 굵고, 다소 마초스러운 이미지의 소유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왠걸. 작가님의 목소리는 내 상상보다 (저녁 라디오에서 들을 법한 정도로) 부드러웠으며, 상당히 젠틀하면서도 과감한 애티튜드를 갖고 계신 분이었다. 역동적인 스포츠 그림 뒤에 이런 부드러운 매력을 갖고 계셨다는 게 정말 재밌었을 따름.
그리고 작가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 점은, 화보를 찍을 때 정말 포즈를 잘 취하셨다는 점이다. 위에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쑥쓰러움이 1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능숙한 표정 연기는 덤. 카메라 앞에만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내 표정과 손발을 생각하면 작가님의 이런 과감함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알고 보니 예전에 광고를 촬영한 경험이 있으셨다고. 근데 그걸 감안해도 정말 멋있었습니다 작가님.
사실 인터뷰 전부터 어떤 주제로 운을 띄워야 할 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화제가 됐던 작가님의 "40인의 레전드" 일러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었다. 일러스트가 공개되면서 팬들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달리다 보니, 그 피드백에 대한 작가님의 기분이 궁금하기도 했고.
"솔직히 생각할 겨를이 잘 없어요. (웃음) 지금도 작업을 하고 있다 보니 워낙 바쁘게 지내고 있거든요. (중략) 또 아직 남은 선수가 많잖아요. 40명의 선수가 다 공개되고 나서 40장의 그림을 쭉 모아놓으면, 그땐 정말로 만족감이 느껴질 것 같아요."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숨가쁘게 결과물을 만들어낸다고 말한 작가님. 자칫 기계적으로 작업하게 되시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건 정말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전설이 된 선수들을 그려내며 팬들에게 추억을 선물하는 작가님은, 누구보다 자신의 그림이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 본 야구가 정말 재밌잖아요. 저도 어렸을 때 선동열, 이종범, 이승엽과 같은 선수들은 진짜 슈퍼히어로 같은 존재였어요. 특히 김재박 선수가 개구리 번트를 했을 때는 마치 전설 속 신화 같았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림을 그리면서 과거에 우릴 설레게 한 영웅들을 상기할 수 있었는데, 팬분들도 비슷한 감상을 받으신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당장 나만 하더라도 초등학교 시절 최고의 영웅이었던 이병규 선수의 일러스트를 보며 추억에 잠긴 적이 있었다. 아마 나 말고도 더 오랜 시간 야구를 본 이들에게는 작가님의 일러스트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왕좌의 게임> 드라마에 이런 장면이 나와요. 맨 마지막에 왕을 정하면서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힘도, 권력도 아닌 스토리가 제일 강하다"라고 얘기하거든요."
일러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작가님의 대답. 앞서 레전드 40인 일러스트에 관한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작가님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건 다름아닌 "스토리"였다.
마치 작년에 공개된 레전드들의 그림에 수많은 팬이 겪은 저마다의 스토리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의미와 감동을 주는 그림에는 분명히 뚜렷한 스토리가 담겨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만약 서사가 담겨있지 않는다면, 그건 결코 좋은 평가를 들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 그림이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림일지라도 말이다.
어떤 그림을 봤을 때,
그게 "왜 좋은 그림인지"는 잘 모를 수 있지만
"왜 나쁜 그림인지"는 확실히 알 거 같아요.
서사가 없는 그림은 나쁜 그림이에요.
"Illu-Storyteller (Illustration+Storyteller)"
스토리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작가님을 한 단어로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에, 원고 마지막에 만들어 본 합성어다. 원고를 쓴 당시에도 꽤 마음에 들어 제목에까지 갖다 쓴 단어인데, 개인적으로 작가님의 마음에 들어 하셨으면 싶었다.
살짝 민망하고 쑥쓰럽긴 하지만, 어떠셨냐고 언젠가 한 번 여쭤보고 싶다.
이건 일러스트레이터를 지망하는 후배들에게 전할 한 마디를 남겨달라는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지만, 곧 대학교 졸업을 앞둔 내게도 꽤나 의미있게 다가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 미약하고, 아직 누가 봐주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라는 것이다.
"딱 한 구절만 기억이 나요. "3할을 치는 타자는 어디서든, 누구든 데려간다. 방어율이 좋은 투수는 버려지지 않는다"라는 이야기였어요. (중략) 진정으로 누군가 자신을 데려가 주길 원한다면, 본인 스스로 3할 타자가 돼야죠."
언젠가 내가 누군가의 눈에 띌 3할 타자가 된다면, 작가님의 말씀이 문득 떠오를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역시 지금부터 열심히 노력해야겠지.
"사소한 거에 기뻐하고 환희가 가득한 삶은 아닐지 몰라도, 이쪽 업계에서 바쁘면서도 고만고만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게 행복할 따름이에요."
초반에 언급한 것처럼, 작가님은 특유의 꿀성대로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근데 그 내용들이 너무 재밌는 바람에, 어느 순간부터는 에디터가 아니라 그냥 토크쇼에 초대된 관객마냥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하마터면 인터뷰를 이끌어가야 하는 에디터로서의 본분을 잃어버릴 뻔 했을 정도였으니.
그리고 그렇게 작가님의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로웠던 만큼, 이 비하인드를 쓰는 것 또한 가장 긴 시간이 걸렸다. 어느 단편만을 소개하기엔 비하인드에서 빼놓을 주제들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아직 원문을 안 읽으신 분이 있다면, 한 번쯤은 꼭 찾아보시는 걸 강력하게 추천한다.
오늘 에피소드는 작가님의 정성이 담긴 사인 엽서 사진으로 마무리해보고자 한다.
원래는 기념으로 주신 엽서에 내 볼펜으로 사인을 받았는데, 굵은 사인용 마커로 다시 해주신다고 해서 얼떨결에 두 장씩이나 기념 엽서가 생겨버렸다. 이 엽서들은 파일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중.
작가님은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수들을 포함해 여전히 여러 선수들의 일러스트를 그리시면서 계속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는데, 앞으로도 작가님이 더 좋은 작업물을 만들어내고 더 많은 이야기와 감동을 전달하기를 응원해본다.
또, 나 역시 많은 이의 눈에 띄는 3할 타자가 되서 언젠가 다시 작가님과 대면하는 날이 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