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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ul 04. 2024

발리에서 달린 일 #2

처음 경험해 본 해변 조깅(스미냑~꾸따)

파도와 함께 부서지는 햇살, 모래사장과 바닷물 사이를 이리저리 신나게 달리는 강아지, 저마다의 속도로 여유롭게 달리기를 즐기는 많은 러너들.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다. 그야말로 내가 꿈꾸던 해변 조깅. 숲과 논이 뿜어내는 대자연의 숨결로 가득했던 우붓을 떠난 아쉬움도 잠시, 새롭게 만난 스미냑에서의 첫 아침에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실행할 수 있었다.


전날 아침 우붓 조깅 4.5k에 스미냑 이동 후 맛집 탐방 등으로 2만 보 가까이 걷고서 해가 진 뒤 야간 수영에 컵라면까지 야무지게 즐기고서야 늦게 잠자리에 들었기에 아침에 일어날 수 있을지 조금 걱정했었지만 무사히 7시 알람 소리를 듣고 기상에 성공. 미리 꺼내뒀던 러닝 복장을 챙겨 입고 자외선 차단 지수 100짜리 선크림으로 얼굴, 목, 어깨, 팔, 무릎까지 꼼꼼하게 코팅한 뒤 방을 나섰다. 물론 달리기 전 스트레칭은 필수. 몇 가지 드릴 동작으로 동적 스트레칭을 수행해 주고 고관절, 무릎, 발목도 충분히 풀어준 뒤 호텔 정문 가드들에게 아침인사를 건네며 조깅을 시작했다.


스미냑에서의 숙소는 코트야드 발리 스미냑 리조트라는 곳이었는데 해변까지 대략 300~400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매우 가까운 위치였기에 달리러 나가기에 너무나 최적의 숙소였다. 가볍게 심박수를 올리며 몸을 데우기 딱 좋은 거리를 달려서 해변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탁 트인 시야를 가득 채우는 바다, 파란 하늘, 낮은 구름 떼를 만나느라 아주 잠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더라.

해변으로 들어가는 입구. 길게 이어진 해변 곳곳에 이렇게 출입구가 있다.
오른쪽은 맑고 파란 하늘, 왼쪽은 낮은 구름떼


이국적인 해변의 풍경과 바다 내음이 다시 한번 내가 해외에 있음을 상기시켜 주면서 평범할 수도 있는 조깅에 가벼운 긴장감과 설렘을 더해 주는 듯했고 어느 방향으로 뛸지 크게 고민 없이 순간 마음 가는 대로 몸을 왼쪽으로 틀어 바다를 나의 오른편에 두고 달리기 시작했다. 해변 입구는 우리나라 여느 해변과도 같이 푹푹 발이 빠지는 모래사장이었지만 파도가 들이치는 바다 가까운 쪽은 모래가 물을 머금어서인지 달리기에 불편함 없이 충분히 단단했다. 아침부터 바닷가를 산책하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서퍼들이 좋아할 법한 높고 강한 파도가 내는 소리를 플레이리스트 삼아 계속해서 달렸다. 최대한 천천히 달리려 했다. 대회 준비도, 개인 훈련도 그 어떤 것도 아니라 그냥 여행지에서 편하게 즐기는 조깅이었기에 일부러 더 천천히 달리면서 숨도 편하게 쉬고 사람 구경도 하고 시야도 넓게 가져가면서 풍경도 맘껏 담아가려 해서인지 달리는 내내 러닝화가 1~2cm 정도 모래에 살짝 파묻혔지만 발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가볍게 느껴지는 듯했다.


그런데 심박수만큼은 가볍지 않았다. 그나마 해가 본격적으로 뜨기 전이라 25도 정도로 현지에서는 낮은 편에 속하는 기온에서 700에 가까운 느린 페이스로 달렸지만 심박은 계속 170을 웃돌고 있었다.(평소 700 언저리 페이스에서 심박은 140 정도) 2시간 10여분의 저조한 기록을 낼 수밖에 없었던 지난 5월 하프마라톤 대회날의 기온이 21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마치 혹서기 훈련을 하는 기분이었다. 분명히 나는 최대치에 가깝게 천천히 달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다리는 가볍지만 숨은 차오르는 생경한 경험이었다.


최대한 힘들지 않으려 페이스를 조절하며 뛰다가 들려오는 3k 알람. 어느새 구름을 뚫고 강한 존재감을 뿜어내려 준비하고 있는 해가 느껴져서 서둘러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갈 때는 모래사장이 아닌 해변을 따라 조성되어 있는 상가들 앞으로 나있는 산책로로 달렸는데, 모래 위를 달릴 때는 두어 명 밖에 없던 러너들이 여기 다 모여있을 줄이야. 성인 두 명 정도가 낙낙하게 지나갈 정도의 좁지도 넓지도 않은 보도블록 위를 찬찬히 달려 나가다 보니 꽤나 많은 러너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한달살이 내지는 장기 체류 중인 것으로 보이는 편안한 차림새에 적당히 해진 운동화를 신고 익숙한 듯 제 갈 길만 가는 러너가 있는가 하면, 인스타 피드에 우연히 한 번씩 보이는 유명 운동 유튜버들처럼 고급지고 화려한 전문 기능성 의류에 고가의 러닝화와 헤드폰을 장착한 러너가 진한 향수 냄새를 뿌려대며 지나가기도 했고, 관광을 하는 것마냥 티 나게 좌우를 두리번거리는 것이 딱 봐도 나처럼 여행지 러닝을 즐기러 나왔구나 하는 러너도 있었다. 각양각색의 러너들이었지만 누구 하나 힘들어 보이지도(물론 온몸이 땀에 젖은 건 어쩔 수 없음), 조급해 보이지도 않았다. 저마다 자신만의 페이스로 본인의 달리기에 집중할 뿐 나를 포함한 모두가 여유롭게 자신만의 조깅을 즐기고 있었고, 그 여유로움은 더운 날씨에 조금은 가빠진 호흡에도 불구하고 마주치는 러너들과 부드러운 미소,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는 동시에 묘한 동질감과 친근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부부나 연인으로 보이는 한 쌍의 러너들과 마주칠 때면 서로 페이스를 서서히 낮춰 잠시 멈춰서는 여유와 매너를 발휘하며 더 환한 미소를 주고받기도 했다. 덕분에 페이스는 전반부보다 아주 조금 더 낮은 수준이었는데 심박수는 여전히 170 언저리, 한번 올라간 심박수는 마치 집 나간 포핸드처럼 돌아올 줄 모르더라.


무리하지 않기 위해서 심박수를 유지하면서 잘 닦여진 길 위로 편안하게 조금 더 달리다 보니 출발했던 해변 입구로 금세 도착, 조깅 마지막에 수행하면 그렇게 좋다는 짧은 질주 2회로 해변 달리기를 마무리 지었다. 호텔 100여 미터를 앞두고 걷기 모드로 전환, 호흡을 조절하면서 호텔로 들어서자 붉게 상기된 얼굴에 땀으로 범벅인 나를 보고 호텔 가드가 말없이 엄지척을 해주는데 내 귓가에는 그가 “You are the man!!” 하고 말해주는 듯했다.(그냥 내가 듣고 싶었던 모양) 발목, 햄스트링, 종아리 등 간단히 스트레칭으로 풀어준 뒤 방으로 들어가서 물 한잔 시원하게 들이켜자마자 테라스 쪽으로 다시 나와서 수영장 옆 샤워기에 땀을 닦아내고는 망설임 없이 입수!! 그래, 바로 이거지!! 휴양지에서만 가능한 러닝 후 곧바로 수영하기. 러닝 훈련 후에는 일부러 한다는 냉수마사지인데 여기서는 그냥 방 앞 수영장에 들어가서 참방참방 놀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좋으냐. 잔뜩 뜨겁게 달아올라있던 몸의 열기가 순식간에 기분 좋게 식어감이 느껴졌다.(우리 숙소는 풀사이드룸이라 테라스 문만 나가면 바로 앞이 수영장이었음)


수영장 물 위에 둥둥 떠 있으면서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보며 생각했다.

내일도 또 뛰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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