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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ipark Apr 05. 2023

어떤 병은 이제 나를 설명한다


 어느 날부터 전자파가 찌릿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마 이것도 스트레스로 신경계 어딘가 고장이 난 게 아닐까 싶다. 회계법인에서 일한 이후였던 것 같다. 오묘한 감각이상이 오래 가동한 노트북이나 핸드폰에서부터 느껴지기 시작했다. 불쾌하게 저릿해서 마치 오염된 물질을 만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 시절의 나는 격무에 이제 막 시달리기 시작했을 뿐, 인생에 그늘 한 점 없었던 진짜 애새끼맨이었기 때문에 ‘오, 이건 흡사 스파이더맨의 빌런 일렉트로 아닌가?’ 이 지랄하면서 이 증상이 어딘가에는 쓸모가 있진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어쩌면 기계탐지인간 같은 걸루다가. 꽤 고민해 봐도 도무지 쓸모없는 일이기는 해서, 이 증상이 무엇인지 알아나 보겠다고 이리저리 인터넷을 뒤지기도 했다. 언젠가 병원에 가서 조심스레 물어본 적도 있다.


 “선생님, 제가 기계를 만지면 민감하게 반응하걸랑요”

 “그렇군요. 목이 붓지는 않았나요?”


그래봤자 신경전문의를 찾아갈 일도 아니어서, 기껏해야 비염 때문에 이비인후과에 가서 조심스레 운을 띄워본 게 다였고, 의사님께서는 당연히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셨다. 나도 딱히 아프거나 한 일도 아니기에 별 불만은 없었다. 다만 안타까운 일은 이 증상은 전신에서 일어나기에 전기장판 역시도 쓸 수 없다는 점이었다. 간혹 연인과 같은 밤을 보내기라도 하는 땐 나는 전신에 semi로 전기충격을 먹어가면서 잠을 청해야 했다.


 엄마 역시도 처음엔 이런 증상을 전혀 믿지 않았다가 끝까지 우기니까 그럼 온수매트라도 어떤지 권유하셨다. 신기하게도 실제로 온수매트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이때 더욱더 내 전기자극민감증후군에 대한 강력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심지어 지금도 이 글을 적느라 아이폰 화면을 무지하게 찍어대서 엄지손가락이 저릿하다. 대충 이 정도의 단점이 있다.




 이별을 하고 얼마 뒤엔가, 다 커가지고서야 뒤늦게 상실감을 처음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그 기간 동안 나는 또 다른 병을 얻었다. 지금은 완치가 되었지만, 3년이 가깝게 지속되었으니 포기하기 직전 일 법도 했다. 병명은 ‘영화를 보지 못하는 병’이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연애의발견도 봤었고, 제주도에서는 라라랜드를 관람당했지만 완독 하기도 했었다. 증상은 불현듯 찾아왔다. 어쩌면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보면서 내가 이상한 걸 보고 있다고 느낀 게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캡틴은 남들에게 강한 척하면서 무너진 자신을 감싸도는 군. 나타샤는 상실감을 채우려고 일에 미쳤어. 호크아이는 전부 부숴버리는구나. 토르는 자신을 죽이는 걸 택했군. 배너는 다시는 무언가를 잃어버리지 않을 각오를 다졌어. 토니는 남은 사랑을 위해서 아픔을 억지로 거세했나 봐. 다들 당신네들이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서겠지. 근데 이건 전부 지금 내가 하는 일이잖아?

하면서.



감독이야 의미를 부여했겠지만, 다들 그냥 지나갔을 초반 이 장면들에서 나는 일단 3 울음을 뽑고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토르 그 자체였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는 도무지 집에서 영화를 볼 수가 없었다. 심장을 깃털로 간지럽히는 듯한 느낌에 아무 영화도 볼 수 없었다. 노팅힐, 이터널선샤인에서부터 그냥 다른 어떤- 코미디를 포함해서도, 시작이 도무지 안 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일이었는데 말이다. 이 증상은 내가 기억하기로 2년을 넘겼다. 거의 3년이 조금 덜 되어서야 사그라든 것이다.


 감정의 지평이 불필요하게 벌려있던 그 시기는 다른 날들처럼 그렇게 지났다.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이제 말수는 썩 적어졌고 공간감은 너털웃음으로 채운다.




 텅 빈 거실 벽에다 빔을 쏴서 보면 영화관 같은 느낌이 든다. 더글로리를 봤다. 얼마 전에는 늘 궁금했던 시월애도 봤고. 대놓고 몽글몽글한 게 생각나기도 해서 감성이 잔뜩 들어간 일본 드라마도 봤다. 얼마 전에도 또 한 번 이별을 했다. 언젠가 나는 늘 17살 마음의 그대로인데 사람들이 나를 어른으로 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요즈음 나는 내가 이미 완연한 어른이며 때로는 늙어간다는 생각을 품기도 한다. 감정도 생각도 밖으로 뱉지 않으면 그저 없어지는 일이 아닐까 했는데.


 아무튼 나는 이 글을 왜 썼는가. 별 이유는 없다. 예전에 한창 영화가 보기 힘든 때 이런 병도 있는지 인터넷에 물어봤을 쯤, 이런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런 글을 쓰게 되면, 있는 염병- 없는 염병- 다 할 까봐서 당시 나랑 잘 합의를 봐왔다. 이제 다시 예전처럼 영화를 적당한 감정선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리모컨을 자유분방하게 누르면서 어떤 영화를 선택할 때쯤마다 매 번 그때가 떠오른다. 재생을 누르는 게 어려워서, 대체 어디가 뭐가 어떻게 망가진 건지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던 때가. 하지만 그렇게 그때마저도 이제는 떠올려야 하는 과거가 되었다. 아무튼 그때의 그 블로그는.. 마치 짝사랑에 구슬피 울던 옛 친구의 싸이월드 같았으니까.. 근데 다 쓰고 보니 뭐 별 달리 차이도 없는 글이 되어버렸구만. 또 지울까 하다가 비도 오겠다, 변덕스레 마무리해 본다. 아마추어같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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