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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ipark Mar 19. 2022

공황


하나만으로도 버거운 일들이 몇 개씩이나 동시에 몰려오던 때가 있었다. 회계법인 생활이 격해지면서 나는 주기적으로 심장 부근이 조이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 기간은 조금씩 잦아지다가, 3년 정도를 일한 이후로는 조금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야근이 연속되던 법인의 라운지에서, 몇 일날인가 밤늦게까지 야근을 한 다음 날의 ifc 라멘집 앞에서- 나는 등이 땀으로 흠뻑 젖고, 현기증으로 의식이 잦아드는, 마비감,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불현듯 찾아온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심장병에 대한 작은 공포가 생겼고, 사실은 병원에 찾아갔어야 하지만 막연한 두려움에 쉽사리 가지도 못했다. 2년이 흘러서 이번 직장에서의 건강검진 때 몇십만 원을 더 내고서야, 드디어 심장을 포함한 몇 가지의 정밀진단을 더 진행했다. 이상증상은 아무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았고, 심장이 아팠던 일은 이미 2년이 넘게 흘렀기 때문에 그때 운동을 너무 안 했나 정도로만 생각하게 되었다.




회계법인의 시즌이 시작되었다. 그저 회사 일, 정말 아무리 확장해서 해석해도 그저 회사 일, 그저 일 뿐인 이 1년의 한 번씩 기필코 다가오는 악몽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정신을 잠식시키고 있다. 이 시기의 회계사 커뮤니티에서 알게 되었는데, 당시 내가 느꼈던 -맥박이 빨라지고, 심장박동이 심하거나 통증이 느껴지는, 땀이 많이 나고, 현기증을 느끼거나 머리가 띵한,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들고, 담과 같은 근육통이나 마비감 등의 각종 감각이상이 일어나는 그 현상은- TV에서 자주 나오는 공황장애의 파편적인 특성인 “공황발작”이라고 한다. 마음이 아파서 신체가 비명을 지르는 단계에 돌입했다는 신호였다는 것이다.




도망치고 싶었다. 나는 성실하지 못했다. 내가 해낼 수 있었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침식하고 나를 몰아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겉으로 보이는 나는 스마트해야 했고, 여유로워야 했다. 나는 당연히 해내야 했다. 해내야만 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다. 내가 더 곧게, 더 깊게 심지를 뿌리내리고 버티어낸다면 나의 모두는 행복할 수 있다. 그때의 나는 그랬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때의 나처럼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트랙에서 벗어나는 것이 도망자이자 비겁자인 것 같고, 해결되지도 않을 일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상황이 가져다주는 환상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그 회사가 아니더라도 나의 삶은 계속되고 있고, 심지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저 몇 년 전에 나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해주고 싶다. 비틀린 삶이 주는 깨달음도 있다.


2021. 1. 3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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