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진단 중입니다.

ADHD 검사 + 검사 결과

by 채뭉글

나는 대부분의 심리검사가 비슷한 줄 알았다.


적어도 우울증으로 정신과를 갔을 때까지만 해도, 그때 했던 검사만 해도. 내가 아는 정보들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정도였다. 내가 ADHD 검사를 따로 다루기로 한 이유는 생각보다 해야 하는 것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우선 검사 전까지 풀어가야 하는 것이 굉장히 많았다. (이하 숙제라 칭하도록 하겠다.)


6월 24일


병원에서 내준 숙제를 한 바가지 들고 나는 거의 온종일 숙제를 해야 했다. 원래 검사 예정일이 바로 다음날이었기 때문에 내가 그 많은 숙제를 할 수 있는 시간은 24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밀린 여름 방학 일기를 몰아 쓰는 기분이었다. (안타깝게도 병원 사정으로 검사가 1주일 미뤄져서 난 그냥 숙제를 일찍 끝낸 사람이 되었다.)


내가 했던 숙제의 주요 검사는

MMPI(다면적 인성검사)

SCI(Sentence Completion Test) - 문장 완성 검사

면담 설문지

바인랜드 적응행동 척도(Vineland Adaptive Behavior Scales)


크게 이렇게 4가지 정도였는데 나는 여기서 MMPI와 SCI는 2년 전에 이미 해봤었다. 시간이 꽤 지났으니 다시 한번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두 번째 해보는 검사였다. 해본 사람들은 아마 알 텐데 저 MMPI 검사는 문항이 정말 많아서 쉽지 않다. 하다 보면 하얀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자로다. 를 절로 외치게 만든다.


하루 만에 폭풍 같은 숙제들을 끝 맞히고 일주일이나 더 지나고 난 7월 2일, 나는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갔다.


7월 2일 - ADHD 검사


이 글의 첫 문장이 '모든 심리검사가 비슷한 줄 알았다.'인 이유는 이 날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전에 내가 들은 ADHD 검사의 정보로는 4가지로 나눠서 분석이 가능하도록 검사를 한다는 것과 검사의 총 소요 시간이 1시간 30분 정도라는 것뿐이었다.


우선적으로 내가 검사실에 들어가서 처음 했던 건 나무, 사람(남, 녀 둘 다), 집, 가족(무언가 행동을 하고 있는)을 그리는 것이었는데, 이건 이미 전에 해봤던 거라 열심히 그렸다. 그다음으로 했던 건 카드에 그려진 그림을 똑같이 따라 그리는 것이었는 데 따라 그린 뒤에 갑자기 기억나는 걸 모조리 다 그려보라고 하셔서 내 기억력을 원망하며 그렸다.


기억에 남는 검사들을 얘기해 보자면


상식 검사, 숫자 이어말하기, 수학 문제, 단어 뜻 설명하기( - 한국판 웩슬러 지능검사), 컴퓨터 - 특정한 도형이 나올 때만 스페이스 바 누르기, 로르샤흐 검사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상식 검사


- 사실 이 검사할 때 가장 많이 당황했는데, 나는 내 상식이 이렇게까지 없구나를 이 날 처음으로 체감했다. 대충 질문은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은 누구인가?] [브라질은 어느 대륙에 있는가?] [물은 어떤 것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올림픽은 어느 나라에서 처음 개최되었는가?] 이런 정말 말 그대로 상식 퀴즈 느낌이었는데, 나는 초대 대통령과 물에 대한 질문 말고는 다 대답을 못했다. 정말 몰라서 집에 와서 엄마한테도 물어봤는데 엄마도 잘 모르겠다고 그렇게 빨리빨리 넘어가야 하는 상황이면 엄마도 못했을 것 같다고 해서 약간 안심하기도 했다.


숫자 이어말하기


- 검사의 정확한 이름을 몰라서 대부분 직관적으로 적은 것인데, 이 검사는 앞에서 선생님이 숫자를 불러주면 그걸 그대로 따라 말하면 된다.

예를 들어 "1 2 3 4 5"라고 말하면 그걸 그대로 외워서 "1 2 3 4 5"라고 대답하면 된다. 초반에 이 검사는 문제 될 점이 없다. 적어도 6, 7 자릿수까지 그대로 따라 하라는 것까지 나에게 어려운 건 없었는데, 문제는 이다음부터 곧장 생성되었다. 선생님이 말한 숫자를 작은 순서대로 말하라던가, 아예 거꾸로 말하라고 하시는데 내 머리에 과부하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만약 "1 5 3 7 7 9"라고 하면 작은 순서는 "1 3 5 7 7 9"라고 말해야 하고 거꾸로 말하라고 하면 "9 7 7 3 5 1"이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이 검사는 종이가 없다. 적을 수 있는 것이라곤 내 손바닥과 머릿속뿐이라 정말 많이 헷갈렸다.


수학 문제


- 수학 문제는 정말 말 그대로 수학 문제를 읽어주시면 그걸 머릿속으로 푸는 문제였는데, 수학 과학이 젬병인 나는 암산하다가 포기해 버린 문제가 꽤 많았다... 이때부터 속으로 '아 망했다.' 생각했다.


단어 뜻 설명하기


-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나에겐 생각보다 할만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어수선하다"라는 단어가 있으면 그 단어의 뜻을 풀어서 말하면 된다. "불안정하고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이다. 몇 개의 단어들은 생각보다 재밌었는데, 분명 어떤 느낌인지 아는데 말로 설명이 안 되는 단어들도 있었다.


컴퓨터 - 특정한 도형이 나올 때만 스페이스 바 누르기


- 이게 뭐냐고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마 이게 집중력 검사이지 않았을까 싶다. 정말 직관적으로 무엇을 하냐는 질문의 답이 저 문장이다. 컴퓨터로 15분 동안 하는 검사였는데, 작은 주황색 사각형 안에 동그라미, 세모, 네모가 나온다. 그럼 이때 동그라미와 네모일 땐 스페이스바를 누르면 안 되고 세모가 나올 때만 스페이스바를 눌러야 한다. 초반에는 뭘 이런 걸 시키나. 싶었지만 열심히 했는데, 15분 동안 같은 행동을 반복하자니, 너무 지루한 것이다. 멍도 좀 때렸다가 주변에서 나는 다른 소리에 집중하다 보니 내가 그 단순한 행동에서 꽤 많은 실수를 하고 있었다. 나는 '어? 놓쳤다.'도 있었는데 '어? 잘못 눌렀다.'가 훨씬 많았다.


로르샤흐 검사


- 이 검사는 데칼코마니로 찍힌 그림을 보고 그 안에서 무엇이 보이는지 대답하는 검사다. 이 검사도 저번에 한 번 해본 적이 있어서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직관적으로 보이는 것을 말하기만 하면 되는 검사라 개인적으로 하기 가장 쉬웠다.


7월 10일 - ADHD 검사 결과


한국판 웩슬러 지능검사 결과


우선 내가 가장 먼저 충격을 받은 부분인데 나는 언어 이해와 처리 속도 차이의 간극이 엄청 컸다. 아마 이 결과가 앞서 말했던 상식 검사, 숫자 말하기, 수학 문제 등등의 점수라고 보면 된다. 이 검사들을 포괄하고 있는 검사의 통칭이 '한국판 웩슬러 지능검사'인 듯하다. 결괏값의 점수가 130점이 최대라고 했을 때 90~110점 사이에 들어가 있으면 평균, 지적 장애는 70점 이하라고 보면 쉽다.


내가 언어 이해와 처리 속도 차이의 간극이 크다고 한건 나의 언어 이해 점수를 보면 106점인데 처리 속도를 보면 72점이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이건 쉽게 말하면 상대방이 뭔 말을 하는지 어떻게 그 결론에 도달했는지 잘 알지는 못하는데 말발로 때우고 있는 거라고,,


엄청난 나의 언어 이해와 처리속도 차이...

다른 사람들이 앞에서 말할 때 다른 생각을 하고 있거나 멍 때리는 경우가 잦아서 이렇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셨는데, 딱 내가 그러했다...


다른 것보다 처리 속도 점수가 72점이라는 게 너무 충격적이라서 결과 듣고 집에 오는 길에 친한 친구들이랑 남자친구에게 열심히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의 문제점은 행동이 매우 느리다고 하셨다.


나는 되게 빠르게 움직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이것도 놀라서 친구들한테 물어봤는데

진짜 태어나서 처음 알았다..


나만 빼고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엄마한테도 이 말을 했는데


엄마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맞아 너 느려"라고...


가장 당황했던 순간이었다.

태어나서 가장 잘 받은 점수...


웃긴 건 난 저 상태로 이번 학기 올 A+을 받았다.


가능한 건가 싶기도 하지만


내가 직접 해냈으니 된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실 검사 결과를 보고 나니 이번 학기 성적이 정말 더 안 믿기기도 했지만 자랑하고 싶기도 해서 꺼내봤다! ㅎㅎ



KakaoTalk_20250713_113604840_03.jpg 스페이스 바 누르면서 했던 검사 결과


이 결괏값은 앞에서 말한 컴퓨터를 이용한 검사의 결과다. 선생님이 오경보 횟수를 보고 하셨던 말씀은 오히려 누락은 괜찮은데 오경보 횟수가 많으면 좀 더 집중력에 의심이 된다고 하셨다.


KakaoTalk_20250713_113604840_02.jpg ADHD 지수


이 결괏값을 보고 나서 나는 ADHD가 심각하진 않지만 약물 치료는 가능한 정도라고 하셨다.


KakaoTalk_20250713_113604840_04.jpg 로르샤흐 검사 결과


이건 로르샤흐 검사의 결괏값이다.


선생님은 나의 결과를 보고 평범 반응에 초점을 두셨는데, 평범 반응은 예를 들어 졸라맨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사람'이라고 답하는 것처럼 일반적인 반응을 뜻한다. 사진에서 보이듯 나는 그 반응이 저조했다. 이런 경우에는 약간 자신만의 세계 속에 산다고 볼 수 있단다.


KakaoTalk_20250713_113604840_05.jpg


집에 와서 다시 결과지를 읽어봤는데 나를 스스로 다시 알 수 있게 된 건 확실한 것 같다.


소수의 사람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그렇고 감정 전달에 서툰 것도 그렇고 생각보다 맞는 부분이 대부분이라서 신기했다.


어쨌든! 검사 과정과 검사 결과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결과적으로 나는 ADHD 약을 복용하기로 했고 ADHD약은 적은 용량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완벽주의가 심한 편이라 강박증 관련된 약도 같이 해보자고 하셨다. 선생님의 치료 계획은 이러했다. 약을 먹고 난 뒤 변화를 내가 잘 기억하고 생각했다가 한 1~2주일쯤 뒤에 어떤 부분이 변화했는지에 따라서 용량을 조절하든 하겠다고. 아마 나에게 가장 크게 나타날 ADHD약 효과는 내가 무언가를 빨리빨리 행동할 수 있게 할 거라고 하셨다. 앞에서 말했듯 행동이 매우 느림이었기 때문인 게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사실상 나에게 필요한 기록을 하기 위해서다.


ADHD는 스스로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이 생각보다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해서.


1일 차 복용 후에 변화에 기록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세상이 조용해졌다. 정확하게 나는 머릿속으로 매일 혼자 인형극 하듯 말을 하는 버릇? 같은 게 있었는데, 원체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은지라 당연하게 머릿속으로 말을 했는데 약을 먹고 약 효과가 도는 시간대에는 내가 그 생각을 일절 안 한다. 이걸 약효가 떨어진 저녁에 다시 하는 나를 보고 알았다.


앞으로 매일 기록이 힘들더라도 특별한 반응이나 변화가 있으면 꾸준히 기록해보려 한다.


[ ADHD호소인에서 진단받은 스물 하나가 기록하는 ADHD 복용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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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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