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푸드가 특식이 된 사회
지난주 금요일, 둘째 아이 학교에 점심 방문을 했다. 학교에 미리 신청을 하면 부모가 30분 정도의 점심시간 동안 아이와 함께 학교 런치룸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첫째가 6학년이 되고 터울이 큰 둘째가 킨더가튼에 들어가니, 아직 아기 같은 마음이 들어 학교생활도 한번 들여다 볼겸 방문하기로 했다.
아침에 도시락을 쥐어 보내지 않고, 점심 시간에 맞춰 볶음밥을 준비해서 들고갔다. 볶음밥에는 양파, 당근, 피망, 돼지고기를 충분히 넣고 아이가 좋아하는 흑마늘 가루로 깊은 맛을 냈다.
체크인을 하고 방문자 패스를 받은 후 런치룸으로(카페테리아) 들어가는데, 이미 다른 부모들도 많이 와 있었다. 그런데 눈에 들어온 건 모두의 손에 들려 있는 종이봉지였다. 칙필래, 맥도날드, 웬디스…. 하나같이 패스트푸드였다.
각자 테이블을 하나씩 차지하고 부모와 아이가 마주 앉아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내 아이는 내가 싸온 볶음밥을 맛있게 먹었다. 다른 테이블에는 치킨너겟, 감자튀김, 탄산음료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토마토나 상추가 든 햄버거조차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미국 아이들은 고기와 치즈가 든 버거만 먹는다.) 아이들은 치킨너겟, 감자튀김 그리고 탄산음료에 열중했다.
첫째도 예전에 말한 적이 있다. “런치 방문 날엔 다들 패스트푸드를 사와.”
어쩌면 이곳에서는 그게 암묵적인 규칙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부모가 방문하는 특별한 날,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다고 여겨지는 음식으로 소중한 시간을 채우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두 아이를 길러본 경험으로는, 아이들이 반드시 튀긴 음식이나 달거나 짠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둘째는 그런 음식을 먹으면 배가 충분히 차오를 만큼 많이 먹지를 못한다. 금방 질리거나 자극적인 간 때문인지, 제대로 다 먹지 못하고 식사를 멈추곤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잘 먹는 집밥을 계속 만들게 된다. 신선한 재료로 조화롭게 간을 한 음식, 그것이 아이들이 끝까지 먹고 만족하는 음식이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예민한 미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인공적이고 과한 맛에는 쉽게 질려한다.
아이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언제나 피자, 버거, 치킨너겟이 ‘특별한 음식’처럼 등장한다. 학교에서도, 파티에서도, 특별한 날이면 늘 같은 메뉴가 반복된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런 음식을 기대하고, 먹고 싶어 하고, 특별하다고 믿게 된다. 반대로 집에서 만든 음식은 비교적 건강하지만 맛이 떨어진다는 이미지를 덧씌운다.
나는 가끔 미국 교외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음식의 다양성을 경험하지 못하고, 제한적인 부모의 식습관에 따라 여러가지 가공식품에 길들여져 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세상에는 치킨너겟과 감자튀김보다 훨씬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대부분 미국 교외의 음식 수준은 한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다양성이 떨어지고 단편적이며 자극적인 맛의 음식점이 주를 이룬다.
이번 런치 방문은 내게 다시 한 번 집밥의 중요성을 깨닿게 해주었다.
부모의 식습관과 주변환경이 아이들의 건강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사회 전반적으로, 리얼푸드를 소비할 수 있게 만드는 교육이 얼마나 필요한지...
아이들에게는 '집밥’이 단순히 건강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소중하다. 특별한 날일수록, 내가 직접 만든 음식을 아이와 함께 나누는 것이 진짜 특별한 경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