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대신 절제
나는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매번 냉장고 안을 반짝이게 닦고, 정리통을 맞춰서 예쁘게 배열하는 그런 부지런함과 깔끔함은 나와 거리가 멀다. 대신 내가 택한 방법은, 애초에 덜 어지르는 것이다.
냉장고에 넣을 때부터 적당히 단정하게 넣는다. 열 맞춰서 예쁜 콘테이너에 정리하는 것 까지는 필요없고,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안에 뭐가 있는지 한눈에 보일 정도가 되면 그게 내가 원하는 상태다.
채소는 보통 일주일에서 열흘 안에 다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산다. 고기도 2~3일 안에 먹을 만큼만 사고, 3-10일 사이 먹을 것만 조금 얼려둔다. 냉동실을 열었을 때 고기와 생선 그리고 남은 음식들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가득한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음식에 압도되어서 머리부터 복잡해진다.
원칙은 단순하다. 냉동한 것 역시 한 달 안에 무조건 다 먹고, 오래된 것부터 꺼내서 사용한다. 되도록이면 당장 사용할 예정인 식재료만 쇼핑한다.(당연한 말인것 같아 보이지만 안 그런 사람들 참 많다. 언젠간 먹을거 같아서 일단 구입! 세일이라서, 좋아보여서, 남이 좋다니까..등등의 이유로.)
많은 사람들의 냉장고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는 건 소스류이다. 소스로 가득찬 냉장고 문짝은 쉽게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내 냉장고 문에 들어가있는 것들은 - 머스터드 (홀그레인, 디종, 옐로우, 브라운) 네 가지가 있고, 들기름, 매실액, 레몬·라임즙, 오이피클, 올리브, 케이퍼, 핫소스 한가지, 메이플 시럽이 기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케찹과 마요네즈도 작은 걸로 하나씩. 여전히 많지만 나름 기본 재료들이다.
샐러드 드레싱, 타코 소스, 바베큐 소스 같은 ‘조합형 소스 제품’은 거의 사지 않는다. 궁금해서 구입해 보았지만 질려서 끝까지 다 먹어본 적도 없고 결국 자리만 차지하다 버린 경험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대신 기본 재료를 두고 그때그때 필요한 맛을 직접 만든다.
이것저것 먹어보고 싶어도 (동일한 재료라면) 무조건 한 제품을 끝내고 나서 새 것을 산다. 특히 치즈처럼 변하기 쉬운 재료는 궁금하다고 한번에 많이 사는 것을 조심한다. 충동적으로 여러 개를 구입해 열어두면 금방 곰팡이가 펴서 버리게 된다. 코스트코 제품처럼 대용량은 정말 심사숙고해야 한다. 먹다가 버리게 되면 결코 싼게 아니다. 신선 재료는 구입 후, 재료중심으로 레시피 검색을 해서 10일 안에 모두 소진하는 걸 목표로 한다.
소셜미디어에 정리 잘 하는 사람들처럼 냉장고를 정리하려면? 너무 어렵다. 예쁜 콘테이너에 라벨링까지 깔끔하게 뽑아서 붙이는데..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
내 기준에 깨끗한 냉장고를 유지하는 비결은 ‘열심히 청소하는 것’이 아니다. 완벽히 '아름다운 정돈'도 아니다.
안이 다 보이는 컨테이너에 음식을 보관하고, 채소가 들어있는 봉지도 겹쳐둘 정도로 많이 갖고있지 않는 정도. 쓸데없이 쟁이지 않고, 다 먹고 새로 사는 것. 나의 기준에서 냉장고를 깔끔하게 유지하는 포인트다. 그 습관 하나로 냉장고는 늘 단정할 수 있고, 우리 가족의 식탁도 건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