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만큼 성실하게
주말 동안 둘째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둘째는 만 다섯 살. 아주 가끔! 혼자 집중해서 잘 놀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누군가와 소통하며 노는 것을 좋아한다.
지난 주말은 첫째의 수영 대회가 토&일 양일간 잡혀 있었다.
따라다닐 누나가 옆에 없으니 아이와 놀아주는 일은 온전히 나와 남편의 몫이었다. 게다가 토요일에는 첫째의 대회 참관을 하며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쉽지 않은 난이도의 육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집 밖에서 하는 육아는 늘 더 힘들다...)
우리는 5시간 넘게 수영장에 있어야 해서 도시락 & 간식이며 놀이거리등을 바리바리 챙겨 갔다.
둘째는 만들기를 가장 좋아한다. 워크북에서 본 쉬운 숫자 문제를 따라서 만들기도 하고, 여러 가지 모양 그리기 문제를 비슷하게 만들어 내서 다시 풀기도 한다.
자기가 경험한 것들을 기억해 종이 위에 재현해 내는 걸 보면, 조금 귀찮다가도 '아이의 관찰력과 몰입을 내가 더 도와줘야 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토요일에는 도너츠가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전날에도 도너츠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걸 만들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넉넉히 준비해 간 흰 종이에 도너츠 모양을 몇개 그리더니, 모양을 잘라내기 위해 가위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중요한 가위를 안 가져왔다.
“어떡하지?”
남편은 당황하고, 아이는 살짝 실망한 듯 보였다.
근데 이런 순간에 내 장점이 참 쓸모가 있다. 야매기질.
“엄마가 손으로 찢어줄게.”
그렇게 우리는 도넛 가게 놀이를 시작했다. 나는 도넛 모양을 손으로 찢어 만들고, 아이는 여러 맛을 상상하며 색칠하고 장식했다. 남편은 그 도넛을 넣을 ‘박스’를 종이로 접어 만들었다.
그러다 남은 종이 조각들을 보면서
“이번엔 파스타를 만들어 볼까?”
긴 종이를 색연필에 돌돌 말아 꼬불꼬불한 모양을 만들자 아이는 눈이 번쩍 뜨였다. 곧이어 직접 여러 개를 만들어내고 다른 모양까지 도전했다.
집에서 종종 먹는 라비올리도 만들었다. 네모난 종이를 찢어달라 해서 만두피처럼 만들어 주었다. 아이는 작은 종이 조각들을 핑크, 노랑, 초록으로 색칠해 ‘고기,치즈,시금치’라고 이름을 붙여 라비올리의 속을 채웠다. 색칠하고 테이프로 붙여가며 자신만의 메뉴을 완성했다.
대회 중간중간 준비해 간 김밥을 먹으러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둘이 차에 앉아서 아이가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함께 들으며 휴식했다. 올라가 조금 놀다가 다시 내려와 과자를 먹고 또 이어서 듣고...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주위를 둘러보면 끝없이 태블릿만 들여다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무표정으로 몇시간이고 연속 시청한다. 그 옆의 부모들도 끝없는 스크롤링 중이다. 쇼츠 영상을 보거나 스포츠 뉴스를 넘기고 있다.
아이에게 태블릿을 보여주면 몸과 마음이 (귀와 입이) 조금 더 편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집중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소셜 미디어나 뉴스 페이지를 들락거리며 시간을 보낼 바엔, 아이와 좋은 관계라도 쌓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다섯 시간이 지나갔다.
도넛과 라비올리, 파스타를 가득 담은 박스를 들고 “집에 가서 누나랑 같이 먹자!” 하며 놀이를 마무리했다.
오늘 너무 재밌었어!!
아이의 이 말 한마디에 피곤함이 잠시 사라졌다.
다섯 살 내 아이. 보는 순간순간이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다. 기대하지 않았던 엉뚱한 말들은 우리 가족의 하루에 큰 에너지가 된다.
육아가 힘든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모든 힘듦을 상쇄하고도 남을 엄청난 에너지가 숨어 있다.
다음날엔 첫째와 아빠만 대회장에 갔다. 나와 둘째는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한시간 정도 아이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혼자서도 조금은 놀아보자고 이야기했다. 그 외의 시간엔 플레이도 찰흙으로 음식을 만들고, 서로 만든 음식이 무엇인지 맞추는 게임도 했다. 누나가 오면 차려줄 '플레이도 스테이크'도 만들었다. 보드 게임도 이것저것 시도했다.
솔직히..... 귀찮고 힘들다.
중간중간 너무 피곤해서 “엄마 잠깐만 누울게” 하고 도망치기도 했다.
그런데도 아이는 계속 찾아오고, 또 불러준다.
“아.. 좀 그만 불러!” 하면서도 그 목소리가 사랑스럽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속에 숨어 있는 즐거움을 찾는 데 집중하자.
할 수 있는 만큼만 성실하게 놀아주면 된다.
그게 다섯 살과 보내는 지금의 이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