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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남 Sep 27. 2024

나의 왕자님



끼이이이이익


꺄아아아아아악!



운전기사 아저씨는 만원버스로 묵직해진 브레이크를 급히 쥐어 밟았다. 기괴한 마찰음 그리고  출렁이는 승객들과 비명. 맙소사. 일주일 전 내가 그토록 바라던 일이 벌어지고 만것이다! 


아침 8시가 되면 집 앞 버스 정류장엔 같은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이 줄지어 서있다. 모두 학교 앞으로 가는 마을 버스 10번을 타기 위해서이다. 그의 존재를 알고 난 후부터 난 그 정류장을 신성시 여겼다. 그도 그 정류장에서 버스를 탄다. 그날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느라 줄을 서고 있었다. 난 살짝 고개를 내밀고 학생들이 만든 줄을 훑으며 그가 도착했나 안했나를 빠르게 스캔했다. 하지만 그는 없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어머나! 그가 내 뒤에 있었다. 남이 보면 놀랄 일도 아닌데 나는 괜히 놀라서는 홱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눌렀다. 나는 애써 그를 의식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헛기침을 몇 번 했지만 다짐과 달리 머리를 자꾸 뒤로 넘기며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애썼다. 머리카락이 그에게 말을 걸듯이 나는 샤랄라 휘날렸다. 그때였다.


“야 민정우!”


그의 친구로 추정되는 아이가 장난기 가득 담은 목소리로 그를 부르는 통에 그가 몸을 휙 돌렸는데 마침 그가 매고 있던 가방이 나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 바람에 나의 몸은 꽤나 크게 휘청했고 그 바람에 나의 머리카락은 또 한 번 샤랄라 휘날렸다.  나는 당황해 끽 소리도 내지 못했는데 그와중에 난 뒷통수의 찌릿한 아픔 보다는 그와 닿았다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그 ‘닿음’이 그의 가방일 지라도 나는 황송했다. 


“아이구 학생 괜찮아요?”

난데 없이 옆에 서 있던 아저씨가 나의 안부를 물었다. 비명이라도 지르지 바보 같이 왜 가만히 있냐’는 아저씨의 표정을 보고서 나는 돌연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더 어쩔 줄 몰랐다. 맞고도 가만히 있는 내가 당당하지 못해 부끄럽고 약간 초라해질 즈음이었다. 


“어, 미 미안.”


그는 부랴부랴 나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얼굴을 향해 몸을 굽히고 눈썹을 ‘ㅅ’자로 만들면서 걱정하는 그리고 그 걱정하는 눈썹도 잘생긴 얼굴로 다정하게 물었다. 나는 그제야 아저씨의 간섭이 감사했다.


“괜찮아.”


두군대는 심장과 달리 꽤나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나는 머리를 살짝 흔들어 긴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여전히 나의 시선은 아저씨를 향해 있었다. ‘아니, 아저씨가 괜찮다는게 아니라….’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오갔지만 그는 재빨리 내 뒤로 줄을 섰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좋아하는 티를 좀 내면 어떻겠냐마는 글쎄 나의 자존심이 그걸 용납하지 못했나보다. 오히려 그 잘생긴 얼굴을 향해 해벌쭉 대는 줏대 없는 여자애들 보다 그렇게 차가운 얼굴을 내비칠 수 있는 나를 나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건 줏대 없는 것과 상관 없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애들이 생각이 없어 보이고 가벼워보였다. 엄마가 그걸 신념이라면서 가르쳐 준 건 아니었는데 나는 그렇게 행동하면 위신이 낮아지는 것 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들이내밀 성격이 아니다 보니 나도 그도 어쩌지 못하는 극적인 수동적 만남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바로 그날이었다. 나는 더 드라마틱한 만남을 위해서는 내 머리카락이 그의 가방 지퍼에 끼기라도 했어야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만족했다. 그리고 마침 도착한 버스에 차례차례 올라탔다. 

버스 안에 올라 타고도 혼자만의 로맨스는 계속 되었다. 이미 만석이라 앉을 수가 없어 의자 손잡이를 잡고 서야 했다. 그는 나의 옆에 섰고 위에 달린 손잡이를 잡았다. 학교 까지는 여섯 정거장, 20분이 걸린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이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에 놀이공원에 있는 열차라도 탄 듯 나는 신이 났다.  어떻게 하면 그와 더 얘기 할 수 있을까? 그가 날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나에게 반하진 않았겠지? 

입학식날 학교는 그의 등장으로 난리가 났었다. 신입생 중에 대박인 남자 아이가 하나 있다더라. 아이돌 연습생 같다더라. 라는 소문이 이틀만에 돌만큼 파장이 컸다. 그는 아니나 다를까 안 좋아할 수 없는 면모를 다 갖췄다. 아이돌급 외모, 공부는 물론이고 운동도 잘하고 착하고 상냥하기까지. 여자애들은 삼삼오오 모여 민정우 얘기로 꽃을 피우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나중엔 다리를 동동 구르며 작은 비명을 지르곤 한다. 나라고 다를것이 없다. 나도 예나와 수빈이만 만나면 그의 동정을 파악하는 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하니 말이다.

버스 안은 두 발로 중심을 잡기 딱 좋은 적당한 덜컹 거림이 있다. 그런데 난 이 잔잔한 덜컹 거림이 좀 야속했다. 갑자기 급발진하거나 갑자기 서기라도 해서 내 몸이 그의 몸으로 날아갔으면 하는, 그래서 정우, 나의 민정우가 나를 안아줬으면 하는 영화같은 그림을 소망했다. 그러면 난 마치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하는 동안에도 난 단 한 번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그냥 잡고 있던 의자 손잡이를 놓아 보았다. 그런데 의자 손잡이를 잡지 않고도 두 발만으로 굉장한 발란스를 유지했다. 중심을 얼마나 잘 잡는지 내가 운동신경이 이렇게 좋았나 싶었다. 

그의 옆에 서있게 되는 날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마치 데이트라도 하는냥 즐거워했다. 하지만, “야 민정우, 오늘 2교시 영어 숙제 했냐? 졸라 어렵던데 문장 만드는거. 씨발.”이라고 걸걸한 목소리의 친구가 산통깨는 질문을 하자 나의 상상은 미친년 싸이코같이 돌연 둔갑하며 나의 기분을 망쳐들었다.  그래, 그런 상상만 골백번 하면 뭐해, 말을 걸어서 친해지던가! 아니야 싫어! 말걸기 싫어! 

변덕같은 나의 마음을 추스르며 아무도 모르게 작은 한 숨을 쉬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렇게 난 그를 모르는척 했지만 굉장히 의식하며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학교 앞에서 내리면 그는 마치 나 따위는 그의 인생에 들여 놓지도 않겠다는 듯 교문으로 휘리릭 뛰어갔다. 

그리고 오늘. 내가 늘 상상하던 그 날이 벌어진 것이다. 


끼이이이이이이익


꺄아아악.


드디어 나의 두 발이 중심을 잃고 허우적 대며 민정우를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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