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

by 최봉기

"배부른 돼지보다 차라리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란 말은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이 했던 말이다. 동물적인 쾌락보다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 질적인 쾌락이 진정한 쾌락이란 의미이다. 세상은 갈수록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의 영향을 받아 "자기 혼자 돈 벌어 배불리 먹고 즐기면 된다"는 풍조가 만연되어 간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남이야 밥을 굶든 죽든 나와는 무관하다"는 의미이다. 지금보다 다들 못살던 시절에는 좋은 일이 있을 땐 주변 사람들이 함께 축하도 해주고 예의 없는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꾸짖어주기도 하던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이었다. 지금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잘 알리지도 않는다. 혼자서 혹은 가족들 정도만 알면 됐지 괜히 주변에 알려봤자 피곤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애들을 꾸짖는 일도 요즈음은 잘못하면 험한 일을 당할지 몰라 두렵다. 어떤 이유인지 고령자에 대한 권위가 무너져 버리고 "당신이 뭔데 그래?"식이 되기도 한다.


현재 '배고픈 소크라테스'란 말은 무능한 사람이지 결코 지적이거나 고상한 사람이 될 수 없는 세상이다.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한마디로 노숙자와 다를 바 없는데 거기서 무슨 철학이 나올 수 있겠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배부른 돼지'보다는 인간적인 냄새가 난다. 암만 소크라테스라도 밥 정도는 해결해야 되지 않을까?


과거 '청빈한 선비'라는 말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말을 듣기도 어려울뿐더러 그런 걸 동경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다. 또한 지금 세상에 돈벌이와는 대개 무관한 예술, 음악이나 문학이 좋아 굶어도 아랑곳 않을 사람이 있을까? 또한 그런 남자를 사랑해 집안 반대에도 불구 집 나가 결혼을 결심할 여자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내가 어릴 때엔 방금 언급한 내용이 TV 드라마의 소재였다. 곧 예순이 될 나도 20대 때 순수란 이름의 병을 앓은 적이 있었다. 당시엔 순수함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고 순수하기만 하면 세상의 어떤 난관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살다 보니 순수함만 가지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세상과 등을 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도 아직은 배부른 돼지보다는 그래도 배는 고프지만 소크라테스가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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