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원 18

바람

by 박종규


늘 자는 곳이 이층 다락방이라서 정원과 연결된 아래층 보다 바람이 더 세게 부는 걸 느낀다. 바람은 나무집을 때리고 나무 안으로 스며들고, 특별히 지붕의 난간을 부딪치며 자신의 위력을 과시한다. 그리고 곧 나무집 안으로도 스며든다.


폭풍 같은 바람이나 심지어 광풍이라도 무엇엔가 스며들 수 있는 그런 바람이 좋다. 가끔 나는 발코니에 나가 힘차게 계곡 아래에서 올라오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는다. 모진 바람에 꺼꾸러지는 허술한 기둥을 가진 집도 있고 잘 버티는 돌기둥으로 지은 집도 있을 것이다.


나의 인생에도 많은 바람이 있었다. 미풍에서부터 폭풍을 거쳐 광풍까지. 돌이켜 생각하면 차라리 바람이 부는 것이 나았다. 사방이 막힌 나의 정원은 바람이 불수록 초목들이 더 기운을 차리는 계기가 된다. 마치 누군가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이른 봄바람은 꽃가지를 흔들어 꽃망울이 솟아나게 한다. 바람은 무엇을 흔들기 위한 자연의 변화이고 무언가에 스며들기 위한 정령들의 움직임이다. 뒤뜰의 조릿대는 늘 푸르게 서서 이들을 흐름을 그들의 전 존재로 받아들인다.


푸른 대나무가 단체적으로 움직일 때 바람은 아름다운 힘을 얻는다. 먼지가 날리고 돌들이 튈 때 바람은 자기 존재에 대한 상실감을 느낄 것이다. 폭풍은 정원을 갈아 엎기 위해 부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서 존재하는 것이 외로워서 지상의 무엇인가가 단체적으로 응답하는 것을 바라보고 내려온 대기의 정령이다.


내 인생에도 몇 번의 광풍이 있었고 수많은 폭풍과 미풍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광풍은 때론 분노를 그리고 폭풍은 늘 애환을, 미풍은 어쩌다가 눈물을 주었다. 사랑은 광풍으로 왔다가 폭풍으로 살다가 미풍으로 사라진다.


껍질이 두꺼운 늙은 고목에 부는 바람은 광풍도 미풍이 된다. 연한 순에서 올라온 줄기에 부는 바람은 미풍도 폭풍이 된다. 그래서 정원사는 정원을 보호하기 위해 담을 친다. 방풍림으로 벽을 치던가 아니면 죽어서 방부목이 된 펜스로 벽을 치는 정원사는 정원과 교감하는 사람이다.


인간의 육체는 흙과 같고 그의 혼은 구름과 같고 혼 안의 영은 바람과 같다. 바람이 불면 구름이 움직이다가 곧 비가 되어 흙에 쏟아진다. 비가 내린 흙에는 다시 무언가 창조될 가능성이 생긴다. 이 봄에 온갖 허공을 떠도는 정령-씨들은 이제 마음-흙에 다시 떨어질 준비를 할 것이다.


씨의 탈영토화와 재영토화가 가장 극명하게 일어나는 시점이 봄이다. 내가 나의 영토를 이탈하는 것은 곧 나를 다시 어디엔가 영토화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어떤 바람이 없이 나의 의지와 본성만으로 이것이 가능할까?


바람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정원사는 가급적 봄바람이 불기 좋게 담장의 여러 빈 곳을 수선하지 않아야 한다. 허물어진 담장을 수리하는 때는 장마가 오기 전이다. 봄에는 아무것도 손을 대면 안 된다. 왜냐하면 바람이 꽃을 피워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