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때 늦은 폭설이 내렸다. 꿈에서는 늘 기다렸는데 꿈이 깨어서 맞이하고 보니 당황스럽다. 현실은 도로와 택배 그리고 문 밖 고양이들, 가냘픈 대나무 줄기, 곧 올라올 새 풀들의 싹들..
하늘이 나를 이렇게 사랑했던가. 모든 고민의 피어남을 잠시 그리고 일시에 덮어 줄 수 있다니, 모르긴 해도 눈을 사랑하는 사람은 성령이나 알코올 그리고 조금 지나치지만 감기약을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눈의 발생은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자연 현상이지만 그것을 접하는 우리 마음속에는 아주 복잡한 생화학적 반응이 일어난다. 내가 보기에 이것이 인간의 특권이고 권리이다. 당신은 눈을 아니 정원에 갑자기 내린 폭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감정은 폭설과 같다. 이성은 그 사이로 빗질을 하는 정원사의 낡은 좌뇌의 오래된 기능일 뿐이다. 정원사의 우뇌는 감동하고 어퍼지고 개와 고양이는 춤추고 아내는 노래를 부르지만, 정원사의 좌뇌만 빗을 집어 들고 힘든 삶을 지속한다.
화롯불이 꺼질까 봐 걱정하는 사람은 쉬 잠들지 못한다. 이건 순전히 나의 경험이지만 신혼 적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출근하는 나와 매일 출근하는 아내는 연탄불을 때는 전세방을 얻었다. 새벽이면 탄을 갈아야 하기에 밤잠이 적은 내가 늘 갈았다. 그래서 잠들기 전 불이 꺼질 것을 걱정하는 습관이 생겼다.
정원사에게는 묘한 습성이 있다. 꽃이 피기도 전에 지는 것을 상상하며 때론 울기도 하고 때론 웃기도 하는. 이게 정원사의 문제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우리 인생의 문제이기도 하다. 꽃이 피면 피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볼 수 없는 무대 연출가 혹은 스태프들의 비애가 바로 이것이다.
왜 나는 꽃이 되면 안 되는가? 정원사의 본질적 고민은 아니 가끔 위치를 이탈한 고민은 그것이다. 꽃은 차라리 고민이 없다. 정원사의 고민은 자신이 꽃이 되지 못함이 아니라 꽃을 피우지 못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꽃이 되는 거나, 꽃을 피우는 것이나 무엇이 다른가?
인생의 파생적인 문제는 내가 이 인생의 주역이나 조연이나 하는 문제일 수도 있고, 본질적인 문제는 내 삶이 곧 인생의 진실을 표현하는 실재이냐 아니면 반사체이냐 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폭설에 고립된 정원사에게 젊은 시절 사랑했던 헤세의 시가 한 편 다가온다.
눈 속의 나그네
한 밤 자정에 시계 소리 산골을 울리고
달은 헐벗고 하늘을 헤매고 있다
길가에 그리고 눈과 달빛 속에
나는 홀로 내 그림자와 걸어간다
얼마나 많은 푸른 봄길을 나는 걸었으며
또 타오르는 여름날의 해를 나는 보았던가!
내 발길은 지쳤고 내 머리는 회색이 되었나니
아무도 예전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
지쳐서 가냘픈 내 그림자 이제 걸음을 멈추나니--
언젠가는 나그네 길로 끝이 나리라
세상 화려한 곳에 나를 이끌던 꿈도 사라지나니
꿈이 나를 속인 것을 이제 알겠다
시계 소리 산골에서 자정을 울리고
오, 달은 저 하늘에서 차갑게 웃고 있다!
흰 눈은 내 이마와 가슴을 차갑게 안아 준다!
죽음은 내가 알던 것보다는 무척 깨끗하다.
어차피 눈은 녹고 꽃은 떨어진다. 녹는 눈을 슬퍼하며 드러날 황토의 진실을 고백하기보다, 꽃이 지고 남은 앙상한 가지의 진실을 드러내기보다 곧 돋아날 풀들과 초원의 빛의 찬란함을 자랑하자. 그게 하루만 사는 모든 생물들의 진실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