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학에서 혁명적 이론과 반혁명적 이론: 게토 형성의 문제
저자는 '우리는 왜, 어떻게 지리학 사상의 혁명을 일으키려 하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이 의문에 대한 어떤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는 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혁명과 반혁명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고찰해 볼 가치가 있다고 한다. 과학사가 토마스 쿤은 대부분의 과학 활동은 정상과학(normal science)이라고 규정한다. 정상과학은 특정 패러다임의 모든 측면에 대한 탐구에 해당한다. 정상과학의 수행에서 어떤 이상(anomaly)들, 즉 기존의 패러다임 내에서는 해결될 수 없는 관찰이나 패러독스가 발생한다.
이 위기의 시기에는 이상들에서 비롯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림짐작의 시도들이 행해진다. 이 시도를 통해 결국 과거 패러다임의 유효한 측면을 유지하고 통합하면서도 기존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새로운 일단의 상호중첩적 개념, 범주, 관계, 방법이 등장한다. 이에 따라 새로운 패러다임이 탄생하고, 이어서 또다시 정상과학적 활동이 시작된다. 저자가 보기에 쿤의 도식은 몇 가지 이유에서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 1) 이상이 어떻게 발생하는가, 그리고 이상이 발생하면 그것이 어떻게 위기를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설명이 없다. 2) 쿤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채택되는 방식에 대한 질문에는 결코 만족스러운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러한 두 가지 비판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쿤에 대한 핵심적 비판은 과학적 지식 만들기를 그 사적 유물론적 배경으로부터 추상화했다는 점이다. 쿤은 과학의 발달에 대한 관념론적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버널은 과학적 지식 발달의 유물론적 기반을 탐구했다. 버널의 지적에 의하면 서구의 과학은 아주 최근까지 중간계급을 보호했으며, 심지어 최근에도 '능력주의'라고 하는 것이 등장하면서 과학자는 생애과정에서 중간계급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에 이끌리곤 한다. 이런 점에서 자연과학은 중간계급과 관련된 자연의 측면에 대한 조작과 통제를 위한 추동력을 암묵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쿤의 분석이 사회과학으로 확장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종종 제기됐다. 쿤은 사회과학을 '전(前) 과학적'으로 여긴 듯하다. 사회과학을 전과학적으로 보는 견해는 사실 과학철학자들 사이에 상당히 일반적이다. 사회과학에서는 사상운동을 혁명과 반혁명에 기반한 운동으로 생각하는 것은 당장은 그럴듯해 보인다. 반면에 자연과학에서는 이러한 사고가 당장 적용 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상의 혁명은 궁극적으로 실제 혁명과 분리될 수 없다. 이 점은 사회과학이 사실 전과학적 상태에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 결론은 잘못된 기반에 근거한다. 자연과학은 제한된 이해관계의 통제에서 한시라도 벗어나려고 해 본 적이 없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논지에 대하여 우선 독자들의 질문은 '어떻게 가치중립적 자연과학이 사회적 이해관계의 통제 안에서 발전하는가?'를 물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예산이 어떻게 배정되고 관리되는가를 연구해 본 사람들은 그것이 단순하게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한 순수한 투입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관세전쟁이 벌어진 현재 세계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정부의 투자는 국가의 생존 이전에 대기업의 생존과 기업과 밀접하게 결탁한 권력 집단(당이 표방하는 이념을 떠나서 실질적인 내부 관계)의 유지와 더 깊은 관련이 있다. GDP의 증가와 복지 예산의 증가가 실제로 다수 국민들의 안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200년간 자본주의를 연구한 학자들의 결론이다. 한국 사회의 경우 외향적으로는 풍요로우나 다수의 국민은 상대적 빈곤에 허덕인다.
다시 저자가 강조하는 미국 지리학계의 사정을 예를 들어보자. 1960년대 초 계량학자들이 그랬듯이, 야심 찬 젊은 지리학자들은 이제 인정받기 위해 허덕이고 있으며, 흥미로운 일거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리하여 계량학자들이 대학원생들의 배출과 여러 분야의 교과목을 장악함에 따라 지리학계의 구조 내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순수학문에 대한 투자가 가장 높은 미국의 경우가 이러한 데, 대학교육의 90프로 이상을 사학에 맡기고 국가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정부가 간접적으로 간섭하는 한국의 경우는 더 극단적이다. 도대체 사교육비가 세계 1위를 달리는 이 나라에서 다시 등록금이 비싼 사립대학에 진학할 수밖에 없는 이런 구조에 가장 이득을 보고 있는 집단은 어딜까? 교육개혁이 실패하는 이유는 이러한 근본 요인을 혁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발견한 사회 변혁을 위한 인문지리학적 전략은 우리가 처한 사회 현실을 합당하게 해석하기 위해 실증주의, 유물론, 그리고 현상학의 특정 측면들이 중첩되는 이해의 영역을 탐구하는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이 세 가지 단어 자체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아예 이러한 중첩을 가장 분명하게 탐구한 사례로서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든다. [경제학 철학 초고: 헤겔과 포이에어바흐 철학의 근간이 되는 고전 경제학에 대한 비판 하며, 근대 산업 사회의 조건에 의해 임금노동자가 그들 자신의 생산물로부터 또 그로 인해 그들 자신과 서로로부터 소외된다는 주장이 구체적으로 서술]와 [독일 이데올로기: 아무리 혁신적인 서구 사상도 그것이 낙후된 독일에 들어오면 그 사상을 낳은 사회 기반으로부터 유리되어 단지 이론적인 문제로만 취급되고 해석되는 문제를 비판]에서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 체계에 강력하고 매력적인 현상학의 기반을 부여했다.
사실 저자가 말하는 현상학이 후설의 현상학인지 아니면 그 이후 현상학적 흐름 전체를 이야기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현상학 자체는 어떠한 선입관 없이 '사태 자체'에 집중하여 '본질 직관'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적인 현실의 본질을 들여다보려는 마르크스의 작업과 연관이 있다고 저자는 생각한 것 같다. 다시 저자는 소위 게토(Ghetto: 유대인 거주 집단 혹은 도시 내에서 고립된 특정한 지역] 형성의 문제를 취급한다. 그는 2차 대전 당시의 게토가 아니라 1960년대 미국의 많은 도시에서 일어난 폭동 지역의 원인을 파고든다. 시카고학파의 사회학자들은 도시 토지이용론으로 이런 현상을 설명하려 했으나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한 저자는 오히려 엥겔스가 영국의 도시 동심원 지대 현상을 경제적 계급의 관점에서 설명한 것에 더 중점을 둔다. 엥겔스는 영국의 맨체스터의 중심부를 세밀하게 관찰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맨체스터의 심장부에는 꽤 넓은 상업구역이 있다. 교통이 집중된 큰 길가의 건물 1층에는 화려한 상점이 있다. 그러나 그 건물의 위층에서는 밤늦게까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머문다. 이 상업 구역을 빼면 맨체스터 전체는 순전히 노동자만 거주하는 지역이다. 이 허리 때 외부에 부르주아 상류층과 중간층이 거주하며, 중간층은 노동자구역과 인접한 번듯한 거리에 거주한다.... 나는 맨체스터만큼 큰길에서 노동계급을 체계적으로 차단하는 도시, 부르주아의 눈과 신경에 거슬릴 만한 모든 것을 세심하게 감추는 도시를 본 적이 없다." 이어서 엥겔스는 자본주의가 성장함에 따라 다시 도시의 중심부가 어떻게 재편되는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근대 대도 시의 팽창은 중짐에 위치한 지역의 토지에 인위적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므로 자본가들은 중심부에 위치한 노동자 주택의 건물들을 허물고 그 자리에 가게, 창고, 공공건물을 짓는다."
한국의 경우에 여러 대도시에서도 노동자 집단은 중심에서 주변으로 그리고 시 외곽 지역으로 밀려났다. 강남의 아파트 대부분은 일부 임대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실제로 저임금 노동자가 거주할만한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는다. 물론 이미 거주하던 아파트나 주택 가격의 급상승의 혜택을 본 저소득층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상류층의 자녀와 자기 자녀가 비교당하는 것을 꺼려서 대부분 다시 집을 팔고 유사한 경제 계급이 거주하는 대도시의 외곽지로 이주한다. 그러므로 중세와 근대에서는 어느 가문, 가족에서 태어나는가가 결정적이라면 현대에서는 대도시의 어느 지역에서 태어나는가가, 아니면 대도시 지역 이외에서 도시나 시골애서 태어나는 가가 그의 미래에 50프로 이상을 결정한다.
이렇듯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합하면 기회균등의 자유가 상승하여 많은 사람들이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환상은 점점 무너져가고 있다. 그 결과 세계의 대도시 내에서는 보이지 않는 장벽과 새로운 게토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민족 공동체 의식은 급격한 세계화로 말미암아 사라지고, 세계 각국에서는 민족주의 혹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집권세력들이 오히려 기득권을 강화하기 위해 좌파든 우파든 세습 자본주의를 활용하며, 토지 가격을 인상하는 데 암망리에 결속한다. 이는 중국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 진영이나 유사 자본주의 국가인 러시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의 서구 지성들이 하이퍼 자본주의 혹은 세계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공공의 적으로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는 실천적 변혁을 이야기하면서도 설명은 대단히 아카데믹하며 일반인이 보기엔 너무 관념적이다. 필자는 이 책을 보면서 미국의 강단 좌파 학자의 한계를 보게 된다. 일단 다음 장에서 저자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논지를 전개하는지 지켜보기로 하자.